왜구로부터 호남 방어한 주요 요새

▲ 석주관 칠의사. 전남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에 있다. 정유재란기에 의병활동을 하다가 순절한 왕득인 등 7명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사당 앞 계곡 건너 맞은편 언덕에는 이들을 모신 칠의사 묘가 있고, 사당 뒤 능선으로는 돌로 쌓은 석주관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코로나19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모쪼록 이 몹쓸 병이 하루빨리 치유되어, 우리들의 삶에 다시 평온이 깃들게 되길 빈다. 2월 하순이 시작될 무렵, 전남 구례의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를 찾았다. 며칠 전 내렸던 큰 눈의 흔적마저 사라져버린 이곳의 지리산 산자락은 어느새 봄의 풍경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1597년 4월 26일 구례읍 손인필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 이순신 장군은 다음날 권율 도원수를 만나기 위해 순천으로 향하였고, 지금의 선평삼거리로 추정되는 ‘송원’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도원수는 장군의 숙소로 휘하 군관을 보내 모친 별세에 대한 조문을 하는가 하면, 당분간 나오지 말고 몸을 추스르고 있으라며 배려를 해준다.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이 사실상 시작되었다는 의미이다. 장군은 부체찰사 한효순, 전라병사 이복남 등의 고위직 지휘관과 순천부사 등 옛 부하장수들을 만나며 17일간 순천에 머물다가 구례로 되돌아온다. 구례읍~순천부를 잇는 백의종군로는 대체로 국도 17호선(순천로)과 나란히 이어지는데, 황전면에서 송치에 이르는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강변으로 길이 나있다. 거리는 편도 약 38km에 이른다.

5월 14일 장군은 정사립 등 가깝게 지내던 옛 부하들과 함께 순천을 출발하여 잔수강을 건너 구례로 돌아오게 된다. 잔수강은 지금의 전라선 구례구역 맞은편에 있는 구례군 신월리 인근의 섬진강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이곳에는 예전 잔수역과 나루(잔수진)가 있었다. 그래서 이순신장군 백의종군로는 현재 구례구역을 이으며 나있다.

이순신 장군은 구례에서 12일을 머물다가 다시 백의종군길에 나서는데, 아마도 도원수의 일정에 맞추어 합천까지 동행하기 위하여 그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도원수는 남원성 방어를 위해 한양에서 내려온 명나라 장수 양원을 전주에서 맞이하고는 곧장 운봉을 거쳐 합천으로 가버리고 만다. 이 소식을 접한 장군은 오랫동안 하릴없이 구례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자신의 처지에 낭패감을 느끼는 모습을 난중일기에 남기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구례에 머물던 중, 장군은 의미 있는 만남의 시간을 갖게도 된다. 당시 조선군 총지휘관이라 할 수 있는 체찰사 겸 우의정 이원익이 장군을 만나러 온 것이다. 이원익은 이순신 장군을 한결같이 신뢰하고 지지하였던 인물이다. 이때 체찰사는 소복차림으로 나와 조문을 겸해서 장군을 만나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난중일기에는 ‘음흉한 원균의 일은 기만함이 심한데도 임금이 살피지 못하니, 장차 나랏일을 어찌할꼬’라는 이원익의 걱정스런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5월 26일, 장군은 큰 비가 내리는 중에도 구례를 출발하여 길을 나선다. 이번 구간의 백의종군로는 구례읍을 출발하여 석주관을 들른 뒤, 경남 하동군 경계에 이르는 노정이다. 거리는 약 21.2km이다.  

구례읍에서 출발하여 ‘지리산 둘레길’과 함께 이어지던 백의종군로는 오미리 하죽마을에서 둘레길과 잠시 헤어지는데, 하천(토지천)을 따라 진행하여 단산마을을 지나면 다시 둘레길을 만나게 된다. 이 길에서 송정마을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의승재) 아래 삼거리에서 백의종군로는 둘레길과 헤어진다. 석주관 0.9km를 알리는 ‘남도 이순신길’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 계곡으로 내려서면 ‘석주관 칠의사(石柱關七義祠)’와 ‘칠의사 묘(七義士墓)’를 만나게 된다. 이 길에는 기도처와 살림집 마당을 지나는 곳이 있으니 통행에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석주관은 섬진강으로 뻗어 내리는 지리산 왕시루봉과 백운산 산줄기가 협곡을 이루는 곳으로, 고려 때부터 왜구들로부터 호남을 방어하는 주요 요새였던 곳이다. ‘칠의사’는 정유재란 때에 이곳에서 의병활동을 하다 순절한 왕득인 등 7명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사당이다. 사당 맞은 편 언덕에는 칠의사의 묘와 남원성전투에서 순절한 구례현감 이원춘의 무덤을 포함한 8기의 묘가 모셔져 있다.

칠의사묘에서 하동으로 이어지는 길은 국도 19호선을 걸어야 한다. 갓길도 없는 2차선 도로에는 차량통행도 많아 걷기에 매우 위험하다. 전남의 ‘남도 이순신 길’은 남아있는 6km를 ‘연계구간’이라는 이름으로 슬쩍 미루며, 석주관에서 길을 마무리하려는 듯하다. 하지만 백의종군로는 이곳에서 끝나지 않으며, ‘수군재건로’도 이곳에서 시작할 수 없는 일이다. 부디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이어지게 되길 기대해 본다. 약 6시간 30분 소요되었다. 

/조용섭 협동조합 지리산권 마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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