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지난 1월31일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민선 6기 회장에 선출된 이성희 회장이 취임 한 달을 맞았다. 농협 안팎으로 변화의 요구가 높은 가운데 “농협을 새롭게 바꾸겠다”고 약속한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농협중앙회장은 조합과 농민조합원을 대표해 농협 조직 전체를 이끌고 농민을 대변하는 자리다. 농협은 농민이 만든 협동조합이고, 농협중앙회는 조합의 공동이익 증진과 건전한 발전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장은 협동조합 정신에 입각해 농민 조합원과 조합을 중심에 두고 농협을 바르게 이끌어야 할 책무가 있고, 그럴 만한 힘도 있다.  

농협중앙회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회장은 법적으로 중앙회를 대표하고, 업무를 집행할 권한을 갖고 있다. 210만 농민 조합원, 1118개 일선 조합을 이끌며, 농협중앙회와 경제지주와 금융지주, 은행을 비롯해 30여개의 자회사, 수백조의 자산을 거느리는, 거대 조직의 수장이다. 

이성희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농업이 대우 받고 농촌이 희망이며, 농업인이 존경 받는 ‘농토피아’ 구현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하여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며,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된 ‘농협법 제1조’를 가슴깊이 새기겠다고 했다. 

그동안 농협은 농민의 협동조합이라는 설립 목적에도 불구하고, 중앙회는 조합 위에, 조합은 농민 조합원 위에 군림하면서 조합원의 농산물 판매는 뒷전이고 신용사업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또한 무차별 자유무역협정(FTA), 개도국 지위 포기 등 농민을 위협하는 현안 앞에서 제대로 농민을 대변하기는커녕 정부의 눈치를 보는데 급급했다는 평가다. 이런 현실에서 그가 임기를 시작하며 농협의 역할을 규정한 농협법 1조를 되새긴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렇다면 그가 앞으로 농협을 농민의 협동조합이라는 정체성을 되찾아 제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이성희 회장의 공약을 톺아보자.     

그의 공약을 보면, 중앙회장 직선제 도입, 지주회사·자회사 이사회 조합장 2/3 참여로 지배구조 개혁, 지역본부 대표기능을 조합장이 수행, 경제사업을 품목별 축종별 연합회 중심으로 개편 등이 눈에 띈다. 또 올바른 유통위원회 구성과 현장 중심 유통 혁신, 유통손실보전자금 1000억원 이상으로 확대, 소매유통은 조합 하나로마트 중심으로 개편, 농협 재단을 조합원 복지기관으로 개편한다는 내용도 있다.   

이들 공약은 예전에 비해 진일보한 것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의 개혁요구에 따라 농협중앙회를 농민조합원과 조합을 위한 진정한 협동조합 연합조직으로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이 회장의 공약 중 경제사업을 품목별 축종별 연합회로 재편한다는 내용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현 체제를 두고서는 실효성이 없는 만큼 그 이전에 경제지주회사를 경제사업연합회로 재편하는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조합장 보수를 대의원회가 아닌 이사회가 의결하고 퇴직연금보험을 도입한다는 내용은 가뜩이나 조합의 민주적 운영이 미흡하고, 조합장 권한과 보수가 과다하다는 조합원들의 비판과 거리가 멀다.  

이성희 회장의 1호 공약인 중앙회장 직선제는 올해 중 법 개정을 통해 실현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이호중 (사)농어업정책포럼 상임이사는 “지난해 직선제 전환 법 개정 논의과정에서 정부가 조합 규모에 따른 부가의결권 도입을 선결조건으로 제시하는 바람에 법 개정이 무산돼 이번 선거도 토론회조차 없는 대의원 간선제로 진행됐다”면서 “또 시기를 놓치지 말고 이번에는 중앙회장 직선제를 위한 농협법 개정, 조합장 선거제도 개선을 위한 공공단체위탁선거법 개정에 농협이 앞장서 올 9월 정기국회에서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지역본부 대표기능을 조합장이 수행한다는 이 회장의 공약과 관련, “향후 지역연합회, 품목연합회를 지향하되, 우선은 자치분권 시대인 만큼 광역시도조합장협의회에 중앙회 권한 일부를 이양해서 조합장이 대표기능도 수행하고, 사업권 같은 것을 줘서 시도지사와 파트너로 자치농정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번 선거과정에서 정책협약에 응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좋은농협만들기국민운동본부와 한국농축산연합회, 농민의길 등 제 단체가 회장 후보자 10명을 대상으로 추진한 정책협약에서 6명은 협약에 응했고, 2명은 이견으로 협약을 못했으나, 이성희 회장은 협약에 응답하지 않은 2명의 후보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향후 농민시민사회와의 소통과 협력은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좋은농협만들기국민운동본부는 이 회장에게 회원농협과 농민단체, 소비자, 시민사회,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중앙회혁신위원회를 가동, 함께 협동조합다운 농협을 만들어 갈 것을 제안했다.   

이 회장이 거론한 ‘농토피아’와 ‘100년 농협’은 농민조합원을 기반으로만 가능하다. 주인인 농민조합원이 갈수록 줄어들고 삶이 어려워지는데, 이와 무관하게 100년을 갈 수 있다면, 그것은 협동조합이 아니라 공공기관이거나 주식회사일 뿐이다. 농토피아와 농협 100년은 농협이 농민의 농협으로, 조합의 중앙회로 거듭나야만 실현될 수 있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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