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과실주제조면허 허용 앞둔 과실주업계

[한국농어민신문 주현주 기자]

▲ 정제민 회장이 예산사과와이너리에서 '추사 애플와인', '추사 로제 스위트' 등 사과와인과 품종을 소개하고 있다.

‘소규모 과실주제조면허를 허용’하는 ‘주세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이 오는 4월 1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과실을 원료로 한 고품질 과실주 개발을 확대하기 위해 도입된 이번 주세법 개정안에 국내 과실주업계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과즙을 원료로 해도 과실주제조면허를 취득할 수 있도록 주세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려 했으나 당시 과실주업계의 반발로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과실즙 등을 제외한 과실을 사용해 과실주를 제조하는 경우’라는 문구로 교체했기 때문이다. 이는 값싼 수입산 농축액이나 완성된 와인 등을 들여와 국내에서 병입만 하는 형태의 과실주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여기에 시설기준과 원료 선택 등에서 다양성을 주고 있어 이번 법 개정에 기대를 거는 업체도 많다. 주세법 시행을 한 달여 앞둔 지난 12일 충남 예산에서 사과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는 정제민 한국와인생산자협회장을 만나 업계의 기대와 함께 과제를 짚어봤다.


1~5kl 담금·저장조 구비 땐
다른 지역 농산물 등 재료로
다양한 과실주 생산 가능해져
주세법 개정안 4월부터 시행 

과실주업계 반발로 ‘과즙 제외’
값싼 수입 농축액 사용 등 막아

정제민 와인생산자협회장
“사과·블루베리·복분자 등 활용
각종 와인 만들 수 있는 기회
가공 적합 품종 개발 노력해야”


충남 예산의 사과와이너리는 40여년간 사과농원을 가꾼 서정학 은성농원 사장과 캐나다에서 아이스와인 양조를 배운 사위 정제민 협회장(은성농원 부사장)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연간 40톤의 예산 사과로 와인을 생산하는 예산사과와이너리는 지금까지 2만5000여명이 방문하는 등 지역의 관광지로도 자리매김했다. 이날도 정제민 회장은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장 실습을 위한 사전회의가 한창이었다. 정제민 회장은 “작년 소규모주류제조면허에 과즙을 원료로 하는 과실주도 포함된다는 입법예고 소식을 신문 기사를 통해 접했다"며 "당시 그 법안을 못 막았다면 지역특산주는 꽃도 못 피우고 끝날 수도 있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아찔하고 식은땀이 난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 (왼쪽)예산사과와이너리 맞은편에 위치한 사과밭. 이날 정제민 회장은 양조용으로 적합한 품종 개발을 주문하기도 했다. (오른쪽)예산사과를 가공하고 있는 모습. 예산사과와인은 한달의 발효와 1년간의 숙성을 거쳐 완성된다.


다행히 지난 1월 기재부는 주세법 시행령을 수정해 다시 입법예고했다. 수정된 시행령에선 과즙은 제외하고 과실만 허용했다. 외국산 반제품이나 완성품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미다. 과실주 소규모주류제조면허 허용에 ‘과즙제외’ 한 줄로 국내 과실농업과 과실주업계가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이번 주세법 개정이 국내 과일 소비에도 일정부분 도움이 될 것으로 정 회장은 전망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내산 과실을 사용하는 와이너리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그동안 과실주는 43.5kl의 담금·저장조를 갖췄을 때 일반주류제조면허로만 생산할 수 있었다. 지역특산주면허로는 해당 지역에서 생산된 과실만을 사용해야 했다. 반면 이번 주세법 개정으로 소규모주류제조면허로는 1~5kl의 담금·저장조만 구비하면 다양한 지역의 농산물을 활용한 과실주를 생산할 수 있다.

정 회장은 “예산사과와인에 경상도 오미자도 넣어보고, 전라도 복분자도 넣어보고 다양한 우리 농산물을 활용한 와인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주류업계에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친구들이 다양한 와인에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고 전했다.

실제 정 회장은 한국와인의 장점으로 여러 가지 과일을 원료로 할 수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외국에선 포도만을 와인으로 여기는 인식이 강한 데 반해 국내에선 머루, 다래, 복분자, 오미자, 블루베리, 사과, 복숭아, 딸기 등 다양한 과일을 활용한 여러 가지의 과일와인이 움트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국내 유명 호텔이나 레스토랑의 소믈리에들도 한국 음식에 어울리는 한국와인을 찾는 추세다. 떪은 맛과 오크향이 강한 외국 와인을 기준으로 ‘한국와인은 틀렸다’라는 잣대에서 벗어나 국내산 과일의 원료적인 특성과 기후 조건을 고려한 한국와인의 상큼하고 깔끔한 맛과 향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

▲ 와이너리 숙성실엔 지난해 우리술품평회에서 증류주 대상을 탄 '추사40'이 담겨 있다.

정 회장은 “세계에서 우리나라 과일만큼 맛있는 과일도 드물다”며 “포도 이외에 다양한 과일의 와인을 맛볼 수 있는 한국와인. 결국 가장 한국적인 와인이 세계와인시장에서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시행령 개정으로도 아직 우려되는 부분이 존재한다. 외국에서 수입한 과일 중 유통기간이 지나거나 상품성이 떨어지는 수입산 과일을 과실주로 가공해 판매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만큼은 아니라는 게 정 회장의 의견. 과실주 제조를 위해 필요한 전처리 과정(세척·파쇄·착즙)은 큰 비용과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소규모로 술을 제조하는 데 큰 이점으로 작용하진 않을 것이라고 그는 귀띔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국내 과수 농업과 과실주업계의 동반 성장을 위해서 가공에 적합한 품종을 개발하고 재배하는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회장은 “먹다 남은걸로 가공한다는 인식이 점차 바뀌어야 한다”며 “과실 역시 식용이 아닌 양조용으로 적합한 품종을 개발하고 재배 방법을 연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주현주 기자 joo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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