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강용 학사농장 대표

농업 생산·유통전략 변화 요구
고도화되고 지혜롭고 치밀한
우리 농식품 홍보전략 모색해야


2000년 초, 어느 날부터 농장에 소비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유기농으로 건강을 다시 찾고 싶은 절박한 분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분들과의 대화는 건강한 외식의 필요성을 깨닫게 했다. 이에 외식 소비는 점차 늘어나는 대신 가정 소비는 줄어들어 유기농 소비가 감소될 것으로 보고 유기농 외식 프랜차이즈 붐을 조성해 시장을 확대키로 결심하면서 2006년에 처음으로 식당을 개업했다.

‘친환경 원료, 원산지표시, 無화학첨가물, 無GMO, 반찬 재사용 금지’를 원칙으로 경험도 없이 시작한 외식 사업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를 깨닫는데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5가지 원칙이 전부 쉽지 않았지만, 특히 원산지 표시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던 식당은 수입이 국산으로 둔갑되는 경우가 많았고, 국내산 친환경 식재료의 사용은 도저히 원가 경쟁이 되지 않아 적자를 감당하며 고객들에게 식재료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참으로 힘이 들었다.

그러던 2008년에 미국산 소고기 문제로 나라가 혼란스러웠다. 원산지 둔갑 문제를 심각하게 겪어봤던지라 농식품부 최고 책임자에게 해결 방안으로 ‘소고기 등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도’의 시행을 강력하게 건의를 했다. 그 전에도 정부에 몇 차례 건의했지만 보건복지부와 관련 단체들의 반발로 번번이 묵살됐고, 또다시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당시의 심각성에 눌려 결국 소고기부터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도가 시행됐다. 당시 약 75%의 국민이 원산지 제도에 관심을 가질 정도였고, 현재까지도 소고기를 포함한 국내산 농산물의 소비와 가격 지지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 시행 후 11년이 지난 지금 원산지 표시제도는 우리 농업을 성장시키기에 기력이 조금 약해졌다. 국내산이 부족할 때 자리를 메우던 수입 농산물들은 고정적 자리를 확보했고, 해외여행과 1인가구의 증가, 한명도 안 되는 출산율, Z세대, 밀레니얼, 오팔세대 등 급격한 트렌드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단지 국내산이라는 이유만으로 소비되는 비율을 점점 더 낮추고 있으며, 아울러 우리 농업의 생산과 유통 전략의 새로운 변화와 세분화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소비자는 저렴해서, 특별해서, 건강을 위해서 또는 지구를 위해서 등 다양한 이유로 농식품을 소비한다. 외식이나 간편식 등 주로 저렴한 원료가 요구되는 시장에서는 국내산이라는 프리미엄이 수입 원료와 가격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국내산의 소비는 더 감소할 것이고, 외식업체들과 대책회의를 한다고 해도 증가하기는 어려을 것이다. 최근 품목별로 늘어나는 자조금의 홍보와 역할이 중요하지만 국내산 프리미엄의 홍보 전략은 ‘고도화되고 지혜로운 치밀한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심각한 우한 폐렴의 코로나바이러스처럼 911명의 사망자를 기록한 2003년 중국발 사스(SARS)의 공포는, 한국 사람들은 김치를 먹기 때문에 감염되지 않는다는 소문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돼 지금 우리 김치가 세계 5대 건강식품이 됐다. 사실 그 소문은 우연이 아니라 당시 농수산유통공사(aT) 베이징 주재원의 지혜롭고 치밀한 전략의 결과물로 알고 있다.
이렇듯 특별하고 건강한 시장을 위한 세분화 전략도 필요하다. 특별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존재할 특별한 것이 아닌, 풀만 먹여 사육한 소고기나 살균하지 않는 우유 로밀크, 방목한 닭, 유기농산물 등 특별함을 유지하면서도 평범해 질수 있는 상품 개발과 산업화에도 힘써야 한다. 실제 그 많은 이베리코 돼지가 어디서 다 오는지는 몰라도 국내산 육류 소비 감소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놀랍게도 곡물회사의 영향력이 큰 미국도 며칠 전 축산물 표시규정을 개정했다. 풀만 먹인 소에게 ‘목초급여(grassfed)’를 표시하거나 곡물·목초 혼합율 표시, 호르몬제 미투여, Non-GMO 등 특별함을 세분화시켜 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나라도 무농약 가공식품인증과 식품의 기능성 표시규정이 개정되는 등 차별화된 변화도 있지만, 그 많은 농식품 인증의 특별함이 무엇인지 심각한 성찰도 필요하다.

곧 다가올 인구감소로 인한 시장축소의 현실을 대비하기 위해 국내를 거점으로 해외 K-FOOD 프랜차이즈 육성과 함께 꼭 사용해야 하는 특별하고 건강한 한국산 원료와 중간재의 수출을 통해 시장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원산지 표시제도’처럼 하나의 정책만으로 우리 농축산물의 소비 확대 등의 판을 뒤집기가 사실상 힘들다. 세분화된 생산과 유통의 산업적 전략 그리고 공익형 직불제와 Blue Box 등 지원책이 병행돼야 한다. 우리 농업·농촌의 미래를 과거와 기억에만 가두지 말고 ‘지구’라는 공간속에서 다양한 상상의 앱을 현실로 바꾸어 가는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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