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위원, 농정전문기자

[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 가치를 임금으로 받아 생활한다. 농사를 짓는 농민의 노동 가치는 시장에서 거래된 가격이 결정한다. 복잡하게 얘기할 필요 없다. 농민이 적정한 소득을 보장받으려면 농산물의 제값을 받는 게 핵심이다. 농산물 가격이 곧 농업소득으로 연결된다. 땀 흘려 농사를 지어 생활하는 농민의 입장에선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문제는 농산물의 가격 불안정성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주식인 쌀의 가격이 겨우 회복되는 듯싶더니 고추·마늘·양파·무·배추·소·돼지·닭·사과·배 등 10대 주요 농산물 가격이 줄줄이 하락하고 있다. 농산물이야 그 특성상 어느 정도 등락을 반복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요즘엔 상승은 드물고 하락이 빈번하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자유무역협정(FTA) 등 시장개방의 확대로 수입 농산물이 시장을 잠식한 것을 꼽을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날씨로 인한 작황호조를 들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일부 품목은 생산량이 전년과 비슷해도 폭락하는 사태가 빚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비위축을 농산물 가격 하락의 원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저성장 기조의 고착, 1인 가구의 증가, 최저임금 인상을 핑계 삼은 요식업계의 음식 값 인상 등이 소비 감소를 불렀다는 것이다.

농산물 수급 및 가격안정은 농업문제 해결의 첫 걸음이다. 농산물 가격의 폭등이나 폭락은 농민과 소비자 모두에게 손해이기 때문이다. 올해 마늘 양파 가격이 폭락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국무회의에서 농산물 가격을 안정화하는 근본 대책을 주문하기까지 했다. 사실 문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농민이 안심하고 농사짓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하면서 쌀값 해결, 유통개혁을 약속한 바 있다. “쌀값 문제 반드시 해결하겠습니다. 쌀 목표 가격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여 인상하겠습니다. 대체작물과 사료작물 재배, 휴경 등 강력한 생산조정제를 시행하겠습니다. 품목별 생산자조직 육성과 유통개혁으로 가격과 판로 걱정을 덜어드리겠습니다.” (2017년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 후보 농어업정책 발표문)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아직까지 혁신적인 것이 나오지 않았다. 역대 정부로부터 이어온 물가 안정 위주의 수급조절 정책, 산지폐기, 수매비축, 수출촉진 등의 임시방편적인 정책을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이대로 가다간 쌀값 회복으로 다소 늘었던 농업소득이 올해는 다시 뒷걸음 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와중에 정부여당이 ‘공익형 직불제 개편’ 추진을 명분으로 지난해 말부터 변동직불금을 폐지하자는 법안을 들고 나오면서, 2018년산부터 적용했어야 할 쌀 변동직불금의 목표가격이 2019년산 수확기가 다 되도록 아직까지 국회에서 결정되지 못하고 있다. 사실 대통령의 공약은 쌀값 보장과 목표가격에 물가인상률을 반영하고 공익형직불제를 확대하는 것이었지, 변동직불금과 목표가격을 폐지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의 공약과도 다르고, 예산도 이전의 직불금보다 별반 늘리지 않으면서 변동직불금만 없애려 하니 농민의 저항감이 당연한 것이다.

공익형직불제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농정전환을 위한 하나의 방향이지, 농가소득까지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공익형직불제만 가지고는 쌀을 비롯한 농산물 가격 하락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 추곡수매 폐지 대신 도입된 쌀 목표가격과 변동직불금은 쌀값 하락 시 농가의 소득을 보전, 주식인 쌀농사를 지키면서 우리 농업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던 제도다. 정부가 ‘검토 한다’는 자동격리제나 수입보장보험 같은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기능이다. 정부는 이 문제에 분명히 답을 해야 한다.

농가소득 안정을 위해서는 직불 예산의 대폭적인 확대와 함께 수급 및 가격정책의 혁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계약재배를 비롯한 수급안정 정책을 강화하고, 주요 농산물에 대해 생산비 수준으로 최저가격보장제를 시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야만 농민들은 가격불안에서 벗어나 제값 수준, 또는 가격 하락 시 최저가를 보장 받으면서 시장가격과 직접지불을 통해 농가소득의 안정을 기할 수 있다. 가격정책은 WTO에서 없어진 게 아니라 그 한도 이내에서 하면 된다. EU나 미국, 일본도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직접지불과 가격정책이 병행된다.

농산물 제값 받기는 농민이 땀 흘려 일한 대가를 정당하게 인정받는, 농민의 기본권이다. 농민의 소득 안정과 농산물 가격안정은 국가의 책무다. 농산물의 수급과 가격안정 문제를 빼놓고 농정 전환을 운위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농정을 전환하겠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같이 추진해야 할 것을 쏙 빼고 한 가지만 밀어붙여서야 되겠는가.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