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강용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장

미생물 등 일본에 의지하는 경우 많아
장기적 원천기반 기술 국산화 필요
개발된 기술 현장 적용도 서둘러야


한여름 뙤약볕에서 땀을 흘리고 나면 딱~ 시원한 막걸리 한잔이 생각난다. 막걸리는 고려시대 이전부터 백성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해왔다. ‘술 한 잔 하자’는 말은 부담될지라도 ‘막걸리 한잔하자’는 말은 정겹게 들리는 가장 오래된 우리 전통주 막걸리, 그런데 그 막걸리를 빚는 종균은 아쉽게도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이 오래전부터 빚어 왔으니 막걸리 종균들은 당연히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불행히도 소수의 양조장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일본에서 수입하는 ‘종균’을 사용한다.

일제 강점기 이후 일본인들이 사용한 것을 계속 사용하거나 누룩이나 빵의 발효 미생물을 사용해서 막걸리를 빚기도 하지만, 자가 소비용이나 소규모 발효와는 별개로 대량의 막걸리를 균질하게 만들 수 있는 미생물이 우리에겐 없었으니 어쩔 수 없이 일본에서 수입해왔다. 과실주에 사용되는 효모 역시 북미나 EU 등에서 대부분 수입한다. 어디서부터가 우리의 술일지 가끔 애매 할 때도 있다.

식초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도 역시‘미생물’이다. 일반적으로 자연 상태에서 수제로 만드는 식초는 사용가능 균과 그렇지 않은 균들도 섞일 수 있는 복합 균이고, 식약처에 사용가능 한 것으로 등록된 종균은 겨우 3종이고 그 중 변변한 우리 종균하나 없는 실정이다.

기타 유제품, 퇴비, 의약품, 심지어 스피커 증폭기, 방탄복, 인공피부 등 우리 산업 전반에 다양하게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미생물들은 지금 우리가 숨 쉬는 허공에 떠 다니기도 하고, 내 손에 묻어 있을 수도 있지만, 정작 막걸리나 식초 하나 제대로 만드는 ‘우리 미생물’을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붓 뚜껑에 씨앗하나 감춰 와서 목화를 키운 문익점 선생처럼, 지금도 뒤로 살짝 들여와 사용하는 미생물들도 많다. 그러나 그 미생물로 생산된 상품의 수출은 불가하고 FTA가 체결되면 원천개발자에게 전부 로열티를 주어야 한다.

몇 년 전 한국 농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모 재단의 수상 후보 심사위원으로 참여 한 적이 있다. 그 때 만난 수상 후보자 중, 일본의 국립대학에서 연구를 하던 중, 우리나라가 막걸리 종균까지 일본에서 수입해서 사용한다는 것이 자존심 상해서 귀국해 우리 미생물을 연구하는 분을 만난 적이 있다. 평소 ‘한국농업 독립운동’을 외치던 나로서는 참 인상 깊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연구자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 박사는 일본의 균주보다 우수한 막걸리 균주를 찾아내고 국산화에 성공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반도체의 공정에서 보았듯 대부분의 기업들은 공정이 변화되는 새로운 인프라 구축보다 로열티를 내더라도 당장의 안정을 더 선호한다. 그 문턱을 넘는 것은 기술만으로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사례다.

식초는 ‘발효식초’(산도 4%이상, 감식초 2.6%이상)와 빙초산을 물과 희석한 ‘희석초산’(산도20%)두 가지로 나눠진다. 선진국들은 식용을 금지하는 빙초산을 사용하는 희석초산도 식초라고 불리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지만, 희석초산의 강하고 센 맛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3배 식초까지 발효시킬 수 있는 미생물과 공정, 장치가 개발되어야 한다. 현재 산도 10%의 2배 식초는 개발되었고, 3배식초의 개발을 진행 중에 있다고 한다. 성공하면 건강과 환경에 수많은 논쟁이 되는 ‘희석초산’ 대체는 물론 수출까지 겨냥할 수 있을 것이다. 수입 종균을 대체할 수 있는 국산 식초 종균도 5종이 개발 등록 중이라고 한다.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을 예로 들었지만, 농업과 식품에도 핵심과 원천 기술을 일본에 의지하는 것이 꽤 많다. 모든 것을 국산화 할 수도 없고 그것이 꼭 경제적인 것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반도체산업에서 보듯, 가장 핵심적인 원천 기술이 부족한 채 성장하는 산업의 문제점을 우리는 지금 직접 겪고 있다. 우리 산업에서 꼭 필요한데 당연히 우리의 기술이나 소재라고 생각했던 것들 중 우리 것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산업 전반적으로 찾아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잠시 반짝하는 관심보다 지속적이고 긴 호흡으로 ‘원천기반 기술’의 국산화 노력과 함께 그동안 개발된 기술도 왜 현장 적용이 잘 안되는지의 문제점을 잘 파악해서 실제로 빠른 변화가 있는 세상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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