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성수 한국식품연구원 박사

어린잎부터 건강기능성 물질 풍부
영양학적 가치 높아 주식으로 충분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상품화 시급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박화목 시인이 작사하고 윤용하가 작곡한 우리의 정다운 가곡이다.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지금 50대 중후반 이상 연령대의 농촌 출신 서민들은 대부분 보리에 대한 아련한 향수에 젖게 될 것이다. 1950년대에 동족 간의 긴 전쟁을 치른 한반도는 남북으로 양단되고 국토는 폐허가 됐다.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였지만 식량을 제대로 생산할 수 있는 농업생산기반이 모두 무너진 상태였고 국가 경제도 외국의 원조를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지경이었다.

국민 학교 시절에 미국이 지원해주는 우유 가루, 옥수수 가루 등 보급품으로 만든 빵이나 죽을 복도에서 배급해주면, 학생들은 그걸 먹기 위해 줄을 서던 가난하고 슬픈 기억이 난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보릿고개는 지난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바닥이 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6월(음력 4~5월), 농가 생활에 식량 사정이 매우 어려운 고비를 말한다. 춘궁기(春窮期), 또는 맥령기(麥嶺期)라고도 한다. 최근엔 경제성장과 함께 농가 소득도 늘어나 보릿고개라는 말이 실감이 나지 않지만, 일제강점기에서는 두말할 나위 없고 8 ·15광복 후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연례행사처럼 찾아들던 농촌의 빈곤상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이 시기에 쌀 생산량은 너무 부족해 쌀은 부잣집 사람들이나 먹을 수 있는 식량이었고 그나마 보리밥이라도 충분히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이후 경제발전이 시작되고 국가 경제가 조금씩 나아지면서 농업생산도 증가해 1960년대에는 쌀의 생산이 점차 증가했지만, 여전히 쌀 생산량은 턱없이 부족해 밀가루 분식, 보리 혼식 장려운동 등이 학교급식, 단체급식에서 시행됐다. 이것 모두가 우리나라의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절의 이야기들이다.

이처럼 보리는 그 당시 쌀을 대체하는 주곡으로 국민들의 배고픔과 영양을 해결하는 주요  식량자원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주곡으로서의 입지가 점점 좁아져 국내 1인당 연간 보리 소비량은 1.3kg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리의 소비량이 거의 없을 정도로 감소해 재배한 보리가 남아돌고 농업인들은 농사의 보람과 소득이 없고 정부도 식량정책에서 보리를 주요 작물로 취급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현황을 그대로 방치해 보리 산업이 이대로 소멸해 간다면 향후 우리의 주식 식량자급률 저하에도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국민건강과 영양공급도 우려된다.

최근 비만 인구의 증가에 의한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 대사성질환의 발생률이 많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서 주식으로서 보리의 섭취와 영양을 재조명하고 나아가 가공기술과 제품개발을 통한 다양한 제품을 상품화해 보리의 소비를 많이 증가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보리는 어린잎에서부터 유숙기(乳熟期)의 보리, 완숙된 보리 모두 식품으로서의 건강 기능성 물질들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 주식이나 가공식품의 원료 소재로도 좋다. 보리 어린잎에는 엽록소 함량이 매우 높고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의 함량도 우수해 항산화성, 면역력 증강에 매우 좋은 식품으로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유숙기의 보리는 각종의 유리당과 아미노산이 풍부해 적당한 볶음 처리를 통해 향기와 색깔이 매우 좋은 보리차나 음료를 제조할 수 있다. 또한 완숙 보리에는 베타글루칸이라는 물질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비만 방지, 혈중 콜레스테롤 저하, 변비 방지 등 좋은 기능성을 나타내는 건강 주식으로 충분하다.

이처럼 보리잎이나 보리싹, 유숙기 보리, 완숙기 보리 및 도정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보릿겨 등 부산물의 건강 기능성 성분 특성들을 새롭게 다시 과학적으로 탐색하고 그것을 이용한 고부가가치의 제품들을 개발해 상품화해야 한다.

보리는 현재 우리나라의 주곡으로서의 위치는 잃어가고 있지만, 식품의 영양적 가치는 매우 높게 평가할 수 있어 농업정책이나 식품 산업 혹은 식품 연구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은 도외시하지 말고 중요한 식품소재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보리는 추운 겨울 견디고 우리의 삭막한 겨울 들판을 봄과 함께 푸른 들판으로 춤추게 하는 환경과 국민 정서의 지킴이기도 하다. 보리밭 사잇길을 걸어가면서 즐겁게 추억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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