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냉정한 시선으로 양극화의 극단 조명
‘리틀포레스트’의 판타지 농촌 말고
도시로부터 배제된 농민의 삶에 관심을


빈부격차가 커져 양극화된 사회를 심도깊게 영상으로 만들었다는 호평을 들으며 세계 최고의 영화로 꼽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봤다.

글로벌 IT기업 사장 가족에게 사기를 치면서 기생충처럼 파고든 송강호네 가족과의 가장 격렬한 대비는 내가 보기로는 ‘공간’과 ‘냄새’ 두 가지였다. 사장 가족이 캠핑가는 날 사장 집을 제 집처럼 즐기던 송강호네 가족은 사장 가족이 폭우로 캠핑을 취소하고 돌아오자, 우여곡절 끝에 눈을 피해 자기네 집으로 돌아온다.

성북동 산꼭대기에 있는 사장 집에서 저지대 반지하 집으로 돌아오는 5분 가까이 수직으로 끝없이 낙하하는 공간을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걸어내려가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양극화”라는 추상적인 단어에 묻어 있는 우리네 하층민의 삶이 얼마나 우울하고 힘겨우며, 바닥인가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 준다.

그렇게 반지하 방에 가면 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송강호네 가족은 높은 곳에 있을 때는 ‘운치있다’고 즐기던 비가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목숨을 위협하는 무서운 존재로 변해 있다는 것을 몸으로 겪는다. 반지하 방은 이미 물로 가득차 있고, 천장까지와는 한 뼘 남짓 남아 있을 뿐이다. 고단한 몸을 누이는 방바닥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변기는 이미 역류하여 다른 사람들의 똥오줌까지 뿜어낸다. 낮은 데에 있는 자들은 조그마한 변화도 모두 삶의 터를 빼앗고 목숨을 위협하는 흉기가 된다.

송강호네 가족이 사장네 가족을 잘 속여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의외의 곳에서 그들의 연결고리가 드러났다.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 특유의 냄새’를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 스스로는 느낄 수 없었던 그들의 ‘가난한 냄새’는 결국 이후 파국을 부르는 열쇠가 된다. 부자들에게 아무리 행동을 조심하고, 합리적인 방어체계를 갖춰도, 감각적인 것까지는 속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가난한 자들은 가난한 익숙함에 젖어 있다’. 그렇게 부자와 빈민은 뼛속까지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영화는 천연덕스럽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양극화의 극단을 냉정한 시선으로 다양한 상징을 활용해 다각도로 보여주는 ‘기생충’의 대비 구조를 우리 농민들의 삶과 연결하면 어떻게 될까?

농민들은 반지하 인생과 비교해 보면, 부자에게 사기도 칠 수 없을 정도로, 달라도 너무 다른 상황에 놓여져 있다. 반지하 인생이 가까이 가야만 맡을 수 있는 냄새로 부자들과 섞일 수 없는 격차를 드러낸다면, 농민들은 멀리서 보기만 해도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색(色)으로 엄청난 격차를 드러낸다. 백인보다 하얗다는 한국 부자 미녀들의 피부색과 달리, 한낮 뙤약볕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농민들은 얼굴부터 손등까지 구리 빛으로 물들어 있다.

피부가 갈색으로 그을린 명문대 대학생이나 미국에서 유학하고 온 화가를 자처하기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얼굴과 손이 온통 그을리고 힘줄이 돋아 있는 사람이 십여 년 넘게 자가용 기사를 했다고 하다면 누가 속아줄까? 농민은 처음부터 사기조차 치지 못할 정도로 우리나라 부자들과 너무 먼 외모를 하고 있다. 사실 황인종인 우리 민족의 대다수가 수천년 동안 가지고 있던 피부색에 가장 가까운 피부색을 가지고 있는 농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도시의 부자 곁에 조차 가기 어렵게 되었다.

도시의 반지하 인생이야 성북동 고급주택가를 나와 걸어서라도 집으로 갈 수 있지만, 농민들이 사는 곳은 걸어서 수십 킬로미터를 가야 나온다. 수직적일 뿐만 아니라 수평적으로도 부자와 농민의 삶터는 머나멀다. 도시 안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체계적으로 배제되는 것의 문제점이 이 영화를 통해 재조명되고 있지만, 농촌과 농민은 이미 2~30년 전에 도시로부터 배제되었다.

영화와 드라마, 6시내고향으로 대표되는 연예프로그램에 나오는 농촌은 리얼한 농촌이 아니라, 도시의 중산층 이상의 입맛에 맞게 판타지로 포장된 농촌이다. 작년에 개봉되어 화제가 된 바 있는 “리틀포레스트”의 주인공들은 농사를 짓는다는 설정이지만, 하얀 피부에 농촌과 농업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스트레스가 거의 없이 말하고 먹고, 생활한다.

농민이 반지하에 사는 서민보다 더 어렵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도시 서민의 인생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그 삶의 전체를 예술로 빚어 내는 그런 친구가 농촌과 농민의 곁에 단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그냥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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