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정문기 농산전문기자]

정문기 논설위원·농산업전문기자

문재인 정부 들어 정부 차원의 대규모 첫 대북 인도적 지원이 이뤄졌다. 지난 11일 북한의 영유아와 임산부 등 취약계층을 돕는 국제기구에 800만 달러(94억여원)를 송금한 것이다. 북한 식량사정 악화로 영유아 등 취약계층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발 빠른 지원은 시의적절 했다. 더욱이 지난 2월말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남·북, 북·미 관계가 교착돼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인도주의적 지원은 다시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지원이 대북 식량지원, 즉 쌀 지원 등 인도적 지원의 시발점 및 촉매제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하루라도 빨리 추진돼야 한다. 이는 대북 쌀 지원에 대한 명분과 의의가 충분해서다.

우선 알려진 대로 북한의 식량 사정이 매우 심각하다. 지난 2월 북한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직전 UN에 149만톤의 식량지원을 공식 요청했다. 2005년에 국제사회에 식량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14년 만이다. 그만큼 북한의 식량사정이 더 이상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실제 지난 3월 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 공동조사단의 실태 조사에서도 159만톤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식량 수요량이 연간 576만톤인 것을 고려할 때 28% 정도가 부족하다. 이렇다보니 이번 국제기구를 통한 800만달러 지원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비핵화 협상과는 별개로 심각한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의 생존권 문제를 도와주는 것이야 말로 같은 동포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이자 가치 있는 일이다.

또한 대북 쌀 지원은 우리에게도 긍정적인 효과가 많다. 우선 양곡 관리비용이 줄어든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보관비는 물론 보험료, 훈증소독비 등의 직접비용과 양곡의 가치하락에 따른 간접비용 등 쌀 10만톤 당 연간 373억 3100만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김연철 통일부장관도 “현재 남는 쌀이 130만톤 정도로, 창고보관료만 1년에 4800억원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북한에 쌀이 지원되면 자연스레 양곡 관리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의 쌀 재고량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권고하는 국내 적정 재고량은 70만~80만톤이다. 그런데 3월말 기준 정부가 보유한 쌀은 131만톤에 달한다. 적정 재고보다 두배 가까이 많은 것이다. 대북 지원으로 적정수준을 유지하게 되면 앞으로의 수확기 쌀값 형성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무엇보다 쌀 대북지원은 본격적인 남북 농업협력 및 교류의 단초가 될 수가 있다. 현재 우리가 제안해 놓은 아프리카돼지열병 남북 공동방역 성사 등 후속적인 농업협력 및 교류가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들도 인도적 차원의 대북 식량지원을 조속히 추진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때마침 문재인 대통령도 ‘오슬로 선언’을 통해 남·북한 간의 적극적 평화를 언급하면서 본격적인 남·북 교류 및 협력을 펼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따라서 지금까지 변죽만 울렸던 대북 쌀 지원문제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도 인도적 대북 지원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혔고, 정부 역시 한 달여간 각계각층의 여론을 수렴했다.

다만 지원방식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현재 정부는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자칫 식량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를 넘기게 되면, 지원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그만큼 속도가 중요한 것이다. 조속한 대북 쌀 지원이 북한의 식량문제는 물론 남한의 농업문제까지 해결하고, 평화와 통일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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