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3.13 제2회 전국 동시조합장선거가 마무리됐다. 4년 전 1회 전국 동시선거에 비교하면, 현직 조합장과 직원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900명의 현직 조합장 가운데 71.4%인 643명이 당선됐다. 1회 때는 재선율이 63.5%였다. 또한 농협 직원 출신의 비율도 1회 때 16.9%에서 이번에는 17.6%로 증가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농협중앙회는 “농가소득 5000만원을 달성하고 국민의 농협으로 거듭나려는 현직 조합장들의 노력을 조합원들이 높이 평가하여 재당선율이 높게 나타났다”고 분석한다. 직원 출신이 늘어난 것을 두고는 “최근 협동조합 이념이 재조명되면서 조합원들이 실무경험을 갖춘 협동조합 운동가를 선호한 것”으로 농협 관계자는 해석한다. 농가소득 5000만원, 국민의 농협은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이 제시한 목표다.

과연 그럴까? 농협중앙회의 주장은 생뚱맞은 아전인수다. 현직 조합장과 직원 출신이 대거 당선된 이번 선거 결과는, 조합원의 알 권리, 후보자의 선거운동 권리를 틀어막는 ‘깜깜이’ 위탁선거법 때문이다. 조합장 선거를 규정하는 위탁선거법은 공직선거법과 달리 예비선거제도가 없고, 겨우 2주간의 선거운동 기간에만 선거운동이 가능하며, 토론회, 연설회까지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협동조합 전문가인 이호중 농어업정책포럼 상임이사는 “조합장은 마을별 운영공개 좌담회 등으로 선거 직전 까지 조합장의 지위를 활용한 조합원 접촉이 가능하기 때문에 현직 조합장이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직원 출신의 경우 90일 이전 사퇴하면 출마 가능하므로 상대적으로 내부 정보 활용에서 농민보다 유리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자유로운 토론과 정견발표를 막으니 정책 공약 선거는 언감생심이다. 새로운 인물보다는 평소 조합원을 접촉하고 관리할 수 있는 현직 조합장이나 직원 출신이 유리하다. 바로 이것이 현직 조합장들과 직원 출신이 많이 당선된 이유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조차 “현직 조합장은 직무활동을 통해 선거운동기간 전에도 선거운동의 효과를 누리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어 신인후보자와의 선거운동기회가 불균등하다”고 판단, 1회 선거 직후인 2015년 7월 ‘위탁선거법 개정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선관위는 이번 선거가 끝난 14일에도 “위탁선거법 상 선거운동 방법이 지나치게 제한적이어서 후보자의 선거운동과 유권자의 알 권리가 제약된 점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라고 보았다.

사실이 이런데도, 농협중앙회가 김병원 회장이 추진 중인 농가소득 5000만원이니, 국민의 농협이니 하는 것을 현직 우세의 이유로 들이대는 것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는 ‘지록위마’의 행태에 다름 아니다.

농협 직원 출신을 ‘협동조합 운동가’로 부르는 것은 낯 뜨겁고 황당하다. 그동안 직원들이 운동가로서 협동조합 원칙에 맞게 농민을 조직화하고, 농산물을 제값에 팔아주며, 조합원들에게 최대 봉사해 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 농민 조합원을 위한 경제사업보다는 은행업에 치중해오다가 이제 스스로를 ‘협동조합 운동가’라고 부르는 떠세가 어이 없다.

사실 위탁선거법이 이 모양이 된 데는 농협중앙회의 입깁이 있었다. 2014년 위탁선거법 제정 당시 애초 법 제정안에 있던 ‘언론기관 등의 대담 토론회’ 조항이 국회 법안심사과정에서 농협중앙회와 농림부 반대로 삭제됐다. 농민시민단체는 이를 바로 잡으려고 2014년 정청래 의원을 통해 위탁선거법 개정안을 냈지만, 19대 국회 기한만료로 폐기됐다. 2회 선거를 앞두고도 2017년과 2018년 주승용, 김현권 의원 등이 개정안을 냈지만 법안은 국회 행정안전위도 통과하지 못해 ‘깜깜이 선거’가 재연되고 말았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선관위, 농협중앙회는 뒤늦게 위탁선거법의 개정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2014년부터 위탁선거법 개정 요구가 빗발쳤는데도, 그동안 무엇을 하다가 선거가 끝난 뒤에야 법 개정을 거론하는 지 답답하다.

지금 위탁선거법 이상으로 시급한 것은 2009년 농협중앙회장 선출을 대의원 간선제로 개악한 농협법을 고쳐 다시 조합장 직선제로 돌리는 일이다. 이번에 새로 선출된 조합장들이 내년 1월이면 농협중앙회장을 새로 뽑기 때문이다. 중앙회장 간선제는 군사독재 정권 시절의 체육관 선거에 비견되는 역사의 후퇴다. 

민주화 이후 1988년부터 조합장을 조합원이, 농협중앙회장을 조합장들이 직접 뽑는 농협 선거제도는 그나마 농민 조합원이 농협의 주인임을 상징하는 제도였다. 중앙회장 간선제는 농협 회장을 농민과 조합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중앙회의 비민주적 운영을 심화시킬 뿐이다.

문제는 시간과 의지다. 현재 국회에는 중앙회장 간선제를 다시 조합장 직선제로 환원하는 농협법 개정안과, 조합원의 알 권리와 선거운동의 자유를 확대하는 위탁선거법 개정안들이 계류돼 있다. 20대 국회 임기가 1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인 만큼 이들 법안을 빠른 시일 내 처리하지 않으면 하반기 들어 국회가 총선 체제로 전환되면서 관심 밖으로 밀려날 우려가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그리고 국회는 현 농협 선거제도의 문제에 대해 모두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다. 시간이 별로 남지 않은 마당에 말로만 개선을 말할 것이 아니라 당장 법 개정이라는 실천으로 의지를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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