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강용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장

연월차·시간외 수당·퇴직금 규정 등
논밭에선 지킬 수 없는 법규정 수두룩
농업현장에 맞는 제도 찾아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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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열정만 가지고 무일푼으로 농업을 시작한지 26년이 됐다. 큰 농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소비자들이 기억이라도 하는 농장으로 성장했으며, 위기도 많았지만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친환경 농가들과 직원들 그리고 정년이 훨씬 지난 분들까지 비록 높지 않은 임금이라도 함께 하며 나름대로의 공동체를 꾸려왔다.

그런데 작년 연말 연세 드신 몇 분의 식구들과 원치 않은 이별을 했다. 언제 부터인지 새로운 식구를 맞는 것은 물론 함께 해온 직원들조차 유지해 가는 것이 솔직히 좀 버거워졌다. 너무 급격하게 오른 최저임금에 작년까지는 더 아끼며 버텨봤지만 올해는 도저히 자신이 없어 부득이 근로 계약을 연장하지 못했다.

요즘엔 최저임금에 힘들어도 마치 악덕 업주처럼 보일까봐 힘들다고 말하기도 눈치가 보인다. 최저임금도 못줄 것 같으면 문 닫으라는 SNS의 비난이나. 아프다는 하소연에 실제보다 과장된 엄살이라거나, 과거 정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냐는 정치적 프레임으로까지 갈 때는 자괴감마저 든다.

‘아프니까 아프다’고 말한 것뿐인데…. 모두가 정치적으로 아프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지금 아프니까 아프다고 하는 것이다.

농업도 품앗이나 동네 사람들끼리 서로 노동을 나누던 시대는 진작 지났다. 어느덧 법으로 규정된 상품이며 규칙이 됐다. 그런데 최저임금 등 노동 규칙의 결정에 농업계는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다. 비농(非農) 기간이 길고, 휴일에도 작물은 커가고,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매일 같은 시간을 지키기도 어렵다. 농번기 때는 최저임금을 넘어 2~3배를 지급해야 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농산물의 최저 가격이나 기초소득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20년 전 가격으로 폭락해도 하소연 할 곳 없이 손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부족한 농업 인력을 공급하는 업체도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불법이며, 근로계약서나 서류 하나만 빠져도 법적으로는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현실적으로 논밭에서 지키기 어려운 규정들도 타 산업을 기준으로 결정된 것을 무조건 따라야만 한다.

1998년 IMF가 시작되면서 많은 도시민들이 귀농을 시작했다. 노동부에서 급여를 지원해주며 도시 실업자를 농촌에 취업시키는 사업도 진행했고, 채용 계획이 없었지만 관계 기관의 집요한 권유와, 무엇보다 유기농업을 꼭 배워서 자식들에게 직접 농사지은 건강한 농산물을 먹이고 싶다는 말이 마음에 닿아 대기업 근로자 출신 1명을 1년 계약으로 채용을 했다. 그런데 채용 후 3개월이 지나니 그 사람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무단으로 사라지거나 결근하고, 가족처럼 함께 일하는 할머니들을 선동하는 등 언론에서나 접한 대기업 노조들이 하는 일들이 우리 밭에서 벌어졌다. 마침내 1년이 다 되가는 몇 일전, 사라졌다가 나타나서 그동안 시간외 수당, 연월차와 퇴직금을 요구했다.

농사 짓는데 무슨 연월차가 있고 퇴직금이나 시간외 수당이 뭔 말이냐고 따져봤지만 노동부와 노무사까지 농민도 사업자이니 돈 주고 해결하라는 답변 뿐 이었다. 당시 농업계에서 노동법이나 근로기준법이 농업과 관계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한사람도 만나지를 못했다.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아 노동관계 서적을 구입해 열심히 공부한 결과, 결국 법적으로 이길 수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논밭에서는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노동관계법의 울타리 속에서 우리 농업의 성장이 가능할까 하는 우려가 되었고,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지 8년여의 우여곡절 끝에 2009년 경에 노동부에 TF팀이 만들어졌다.

약 1년여 간 전국의 농촌 현장을 실사하여 농업에 맞게 근로기준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정비하고, 관계법령에 관한 해설집을 전국에 배포하여 농업 노동의 기준을 제시했던 적이 있다.
농업은 땅과 자연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한, 일반 제조업처럼 기계적인 제도를 따르기가 사실상 어렵다. 정부 부처인 농식품부 외에는 농민은 단지 ‘사업자’ 일뿐이며, 사업자를 중심으로 타 부처에서 만들어 놓은 수많은 법과 규정들을 다 알 수도 없다.

그러나 어느 날 문제가 생기면 그것은 온전히 우리 농업인들이 책임져야 한다. 농업이니 사회적 책임을 면제하거나 피하게 해달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농업 현장과 맞지 않는 수많은 제도들을 스스로 찾아내어 우리에게 맞게 바꾸지 않으면 아무도 바꿔주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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