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재욱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소장

노숙 단식농성으로 끌어낸 대통령 면담
대화·소통 없는 형식적 자리에 ‘실망’
농특위 꾸려지는 올해엔 달라지길 기대


지난 해 말인 12월 27일 대통령과 농업계 인사들의 간담회가 있었다. 이 간담회는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뒤 농업에 대한 무관심과 소외에 대해 그동안 농업계가 강력히 항의하고 요구한 결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 바로 인천공항으로 달려가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만나 정규직화를 약속하고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약속했다. 취임 이후 각계각층의 지도자들과 간담회 혹은 국정설명회를 하였으나 농민들과의 만남은 쏙 빠졌다.

지난해 신년사에서는 소외받고 상처받는 국민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어루만졌으나 농민들에 대한 언급은 없었으며 농정의 최고책임자인 농식품부 장관이 5개월이나 공석인 상태였어도 이렇다 할 변명 한마디 없었다. 쌀 값이 5년 전의 가격으로 회복한 걸 두고, 폭등했다고 쌀값대책을 세우겠다는 등 무너져가는 농업을 외면하고 농민들을 져버리는 국정이 이어졌다.

그래서 작년 9월 말부터 네 명의 농업계 인사들이 청와대 앞에서 노숙 단식농성을 시작하였고 농업계와 소비자단체들의 지지농성으로 확대되었다. 농성자들의 요구는 농정적폐의 청산과 무너져 내리는 농업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대통령과 농민단체 지도자들과의 면담이었다. 간담회는 이런 강력한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다.

당초 11월 11일 농업인의 날에 맞춰 이루어질 계획이었으나 두 차례나 연기된 끝에 연말을 앞두고 이루어졌다. 지난 달 필자는 이 지면을 통해 ‘대통령은 해가 가기 전에 농민과 농업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달라고 요청했었는데 이루어져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만남은 이루어졌지만 형식과 내용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140여 명이나 되는 농업계 인사들을 초청한 것은 많은 농민들과 다양한 현안을 주고받는 소통과 대화의 자리로 준비하였다고 이해하고 싶었지만 정부와 농업계가 어떤 대책을 세우고 이를 협력할 지에 대한 실제적인 대화는 없었고 소통은 턱없이 부족했다. 농업계 인사 여덟 명으로 발표를 제한해 사실상 한번 만나줬다는 정도의 형식적인 자리였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과 사진 한 장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농민들의 불만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자리가 되어 버렸다.
농업계 지도자들 일부는 이번 면담이 ‘대화도 소통도 없었던 정치쇼’라고 혹평을 했는데 중학교 3학년의 소년이 학교 다니는 틈틈이 농사를 지어 생산한 쌀을 대통령에게 선물하고 이 소년에게 노래를 부르게 해 참석자들을 방청객이 되게 했다는 것이다.

중3 소년이 틈틈이 농사를 지어 쌀을 생산하고 대통령에게 선물을 했다는 것이 미담이고 훈훈한 얘기인가? 우리나라의 농업인구는 초고령화가 진행되어 65세 이상의 농민이 60%가 넘는 게 현실이다. 농촌에는 20대는커녕 30대 농부도 찾아보기 어렵다. 청와대의 소년 농부는 앞으로 커서 대농이 되겠다는 꿈을 얘기했다고 한다. 나중에 커서 대학도 가고 군대도 갔다 오며 대농의 꿈을 키우는 10여 년의 시간에 이 소년의 꿈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한국의 농업은 다 무너지고 만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농업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 밖에 안되나 싶은 생각들은 다녀온 사람과 이를 들은 사람들 대부분이 하는 걱정이다.

이번 만남이 이런 우려가 듦에도 한편의 다른 기대를 갖는 건 17개월이나 농업을 잊고 살았던 대통령에게 아직 우리 농업이 살아있다, ‘농민은 식량안보를 책임지는 공직자’라고 했던 후보 시절의 말을 상기시키는 계기는 되었을 테니 그것으로라도 위안을 삼고 싶은 것이다. 이제 물꼬가 트였으니 계속해서 농업과 농촌과 농민에 대한 관심을 가지겠지. 때때로 농업비서관에게 농정에 대한 질문과 관심을 보이겠지.

지난해 말의 농업계와 가졌던 간담회의 결과인지 올해 신년사에는 다행히 농업에 대한 언급을 하였다. ‘농업도 국민경제의 근간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농촌과 어촌의 생활환경을 대폭 개선’하겠다고 하였다. 문재인 정부가 농업을 살릴 수 있는 전환의 시간(터닝 포인트)은 올해가 마지막일지 모른다. 농어업특별위 설치에 관한 법이 작년 말 통과되어 올해 4월에는 농특위가 신설될 것이다. 구성될 농특위는 농업의 회생방안을 찾아내는데 전력을 다해주길 기대한다. 민간과 국회와 행정의 각 부처 및 공기업의 농업 관련 분야를 칸막이 없이 협력하게 하여 농업과 농촌에 새로운 살길을 찾아내는 게 농특위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청와대와 농식품부와 농특위가 잘 협력하여 올해 안에 새로운 농정과 농업회생의 패러다임을 설계하기 바란다. 또 남북 관계의 진전에 따라 남북 농업교류도 활성화되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남북의 농업이 상생하고 남북의 먹을거리가 풍부해 질 것이다.

올해 마지막으로 거는 기대에 연말에는 풍성한 응답이 돌아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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