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차를 맞는 2019년, ‘문재인표 농정개혁’의 원년이 될 수 있을까. 농정공약이 얼마나 실현될 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따라붙지만, 2019년이 문재인 농정의 성패를 가늠할 중요한 시기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제까지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농정 현실은 농업계의 기대를 무색케 했다. 하지만 올해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부활하고 13년 만의 쌀 직불제 개편 작업이 본격화되는 등 기존 농정 패러다임의 변화가 예고돼 격동의 한 해가 될 전망이다. 한국농어민신문은 2019년 새해를 맞아 ‘문재인 정부 농정 2년 평가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농업계 전문가들과 함께 신년좌담을 진행했다. 좌담은 2018년 12월 20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2시간가량 진행했다.
 

#참석자
문광운 한국농어민신문 편집국장(좌장)
김호 단국대 교수
김홍상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양승룡 고려대 교수
이정환 GS&J인스티튜트 이사장
이헌목 (사)우리농업품목조직화지원그룹 공동대표


"이전 정부 농정철학·목표 답습…출범 초 기대 전혀 못미쳐"


김호
농정 추진 시스템 등 ‘그대로’  
헌옷 입고 제대로 일할 수 있나
정부 사업·예산 지방 이양해야

김홍상
농특위 통해 일하는 방식 재편
핵심의제 사회적 합의 끌어내야
농업인 주체역량 제고 급선무

양승룡
쌀 목표가격 설계 자체가 문제
형평성 이유 변동직불 폐지 비겁
농업회의소 법제화 서둘러야


|문재인 정부 농정 총평

▲ 문광운 편집국장

▲문광운=지난 2년여 동안 문재인 정부의 농정 정책에 대한 총평을 부탁드린다.

▲이헌목=현 정부가 농정에 너무 무관심하고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출범 초기에는 농업·농정에 대해 큰 관심을 가져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그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한 것 같다. 농림축산식품부 수장 공백은 단적인 사례이며 정부 정책 중에서도 새로운 것이 보이지 않았다.

▲김홍상=문재인 농정의 지난 21개월을 되돌아보면 ‘공백’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주무부처 장관 및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의 공백이 길었다. 특히 ‘개혁’을 얘기하면서도 의제를 정확하게 못 찾았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좋게 말하면 ‘모색기’ 정도이고, 그렇지 않게 말한다면 ‘과도기’ 같은 느낌이다.

▲김호=시대가 바뀌면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되는데, 헌옷을 입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나. 문재인 정부 이전 8~9년 동안의 농정철학과 목표 등을 그대로 두고 정책을 펴고 있으니 전혀 변함이 없다. 농정철학도 바뀐 게 없고, 목표도 마찬가지다. 농정 추진 시스템 자체가 변화되지 않았고, 그래서 새로운 농정이 추진될 수 없었다고 본다.

▲이정환=정부가 농업농촌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것에 대해선 충분히 생각을 했고, 그 부분이 청와대발 헌법 개정안과 ‘2018~2022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에 나타났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굉장히 큰 변화였는데, 많은 논의 과정을 통해 결정되지 못했다. 대통령 직속 농특위도 정권 초기에 만들었다면 정부의 추진 방향과 정책 목표가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되겠지만,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동력을 잃었다.

▲양승룡=문재인 정부 출범 2년이 가까이 돼가는 상황에서 ‘맹탕’, ‘유명무실’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문재인 정부 첫 농식품부 장관의 농정개혁위원회에서 1년 가까이 활동을 하며 많은 논의를 나눴지만, 이 논의가 실제로 정책이나 제도에 반영된 것이 거의 없다. 그것은 역시 ‘정권의 무관심’이라는 단어가 제일 적합하다고 보인다.


|농정공약 평가·향후 과제

▲문광운=문재인 정부의 핵심 농정공약인 농특위 설치와 푸드플랜 수립, 농업회의소 법제화의 진행 상황에 대한 평가와 향후 과제는.

▲양승룡=2002년 농특위 경험을 떠올려 보면, 위원장이 부총리급인 데다 당시 정부가 농업에 굉장히 관심을 가졌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농특위 역할과 기능이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농특위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감과 우려가 든다. 충분한 권한과 역할을 부여해 농업 문제를 풀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그냥 통과의례나 보여주기식의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지역단위에서 지역 농정 참여해서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농업회의소의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본다.

푸드플랜은 최근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지역 간의 수급균형을 맞추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굉장히 우려스럽다. 푸드플랜은 수요 단계에서 세분화되고 차별화된 수요와 지역 단위의 식량안보에서 소외되는 계층에 대한 수요를 국가 단위에서 어떻게 충족시켜줄 것인가가 핵심이 돼야 하는데, 지금 접근 방식은 지역 로컬푸드나 지역 단위의 공공급식 등 공급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푸드플랜 개념 정립부터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헌목=2019년 문재인 정부 출범 3년차에 들어간다. 개혁은 초반에 되는 것이다. 지금부터 개혁이나 변화의 방향을 잡아서 간다고 하면 사실상 개혁은 끝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농특위도 형식적으로만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농특위에 정책 집행권 자체가 없다. 결국 농식품부 등 행정부로 넘길 수밖에 없다. 농식품부 장관을 비롯해 다른 부처의 장관들이 형식적으로 참여하지만, 실제적으로 차관들이 와서 협의를 하면 무슨 특별한 얘기가 나올 수 있겠나. 농특위가 농업 농촌의 근본적 문제 해결을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푸드플랜은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기 힘들다. 전체적으로 농정공약은 선거 공약으로 끝났을 뿐 실체나 실현 가능성 없이 지나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김홍상=농특위 설치 부분은 과거 1994년 김영삼 정부 때 발족한 농어촌발전위원회(농발위)가 짧은 시간 내 개방체제 하에 새로운 농정 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탄생했다. 변화의 방향에 대한 합의였는데, 이런 과정에서 범부처적인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시점의 농특위는 2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지금 농업농촌 문제가 기본적으로 먹거리나 농촌지역 소멸 등 농식품부 단독으로 풀어내기 힘든 범부처적인 의제인데, 농특위라는 것이 하나의 개혁보다는 거버넌스 재편, 일하는 방식 재편 측면의 모티브가 돼야 한다고 본다. 다른 하나는 새 정부가 무엇인가를 바꾸겠다고 하는 철학은 내놓았는데, 사회적 담론과 구체적인 실천전략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얼마나 담아낼 것인가가 농특위의 가장 큰 역할이다. 출범 초기에는 핵심의제 2~3개에 초점을 둬서 이를 실천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농업계의 내부 반성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농업 패싱’의 근본원인은 농업 의제가 사회로부터 멀어지고 괴리된 것인데, 이를 회복하는 활동이 급선무다.

국가 푸드플랜은 이제까지 식량안보와 농업생산 소득에 초점을 뒀다면 폐기, 순환 과정 등 먹거리 전체를 종합적으로 보자는 관점이다. 농특위에서 푸드플랜 개념과 필요성에 대해 국민에게 설득하고, 지역 단위의 다양한 조직화라든지 공공급식 부분은 새로운 경로를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보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농업회의소는 궁극적으로 농민들의 주체적인 역량이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농업회의소가 농업인 중심의 토지 이용 체계를 구축하고 그 속에서 영농활동을 객관화시켜 나가는 절차상의 공정성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번에는 농특위 위주로 법제화됐지만, 농업회의소는 앞으로 법제화돼야 할 필요가 있다.

▲김호=농특위라는 것은 민관 협치 거버넌스 체제다. 지금까지 농정이 관주도로 하향식으로 돼 있던 것을 민관 협치로 바꾸자는 것이다. 실질적인 운영이 되려면 역할과 기능에 대한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농특위가 농식품부 농정개혁위원회처럼 간다면 있으나마나 한 형식적인 기구가 될 것이다. 농특위는 구성부터 철저하게 민간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고, 역할도 소통을 통해 같이 결정해야 한다. 국가 푸드플랜은 식량자급률 제고, 먹거리 복지 실현, 음식폐기물 문제 등에 대해 국가 단위에서 목표를 정해 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문제는 실천력이다. 실행 가능한 계획이 나와야 하고, 이것을 실천할 수 있느냐에 성패가 달렸다. 지역과 국가 간의 계획을 조화시키는 과제도 남아있다.

농업회의소 경우 지역에서 보면 ‘옥상옥’이라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지역에 있는 농민 단체별 의견들을 수렴하는 하나의 기구로 봐야 한다. 지역 단위의 거버넌스 체계로서 농업회의소를 통해 지역 농민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또 농업회의소를 운영하기 위해선 지자체 예산을 받게 돼 있다. 이 과정에서 시장·군수나 의원들이 정치적으로 이용할 우려가 있다. 이 부분이 또 하나의 과제다. 농업회의소가 지역 단위부터 만들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인데, 농민들이 농업회의소를 만들자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농업회의소가 실질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전제 조건이라고 본다.

▲이정환=농특위는 농업계, 전문가, 시민, 소비자, 언론들이 같이 모여서 농업농촌 문제를 공감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역할 정도로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 정부 들어 농식품부 농정개혁위원회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도 있었는데, 국민들이 농업농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역할로 초반 활동을 한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푸드플랜은 수급계획을 세우는 것처럼 되서는 안 된다. 먹거리라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어떻게 조달되고 어떻게 소비되고 있느냐를 리뷰하고, 이에 따라 무엇이 필요한가를 파악하는 역할로 봐야 한다. 농업회의소의 경우 국가가 법에 의해 국가적 목표를 가지고 새로운 조직을 만든다면 그야말로 ‘옥상옥’이 되고, 비용만 들고 부작용이 클 것이다. 농민단체들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공식적인 루트를 만드는 정도의 수준으로 생각을 해야 한다. 이런 틀을 만들고 나서 농민 단체들이 스스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지 정부 주도로 해서 조직을 중앙과 지방에 만들면 득보다는 해가 클 것이다.

▲양승룡=농업회의소 법제화의 의미는 굉장히 크다고 본다. 현재도 정부가 농정을 추진할 때 농민단체들과 의견 조율을 하지만, 대부분 형식적이고 통과의례다. 법제화가 되면 농업회의소와 합의를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농업회의소의 역할을 관이 기획하고 집행하는 정책에 대해 평가하는 업무라고만 해도 굉장히 중요하다. 법제화라는 것이 모든 지역에 다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 아니고, 이런 요건을 만들어서 한다면 법적 지위를 부여한다는 식으로 가야 한다.

▲이헌목=농업회의소 운영과 관련해서는 농민 단체별로 의사가 나눠질 때 그것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협동조합을 보면 협동조합법을 가지고 있지만, 협동조합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협동조합에 대한 기본 인식이 제대로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회의소도 결국은 운영 주체인 농민들의 이해도를 높이는 노력을 먼저 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농특위 가동·농업회의소 법제화…농민 정책 참여 보장해야"


이정환
변동직불금 없앤다는 것은
손 벤다고 부엌서 칼 치우는 것
가격 안정장치 넓게 해 놓아야

이헌목
대선 농정공약 지켜질지 의문
농산물 제값 받고 팔수 있게
생산자 중심 품목조직 육성을


|쌀 목표가격·직불제 개편

▲문광운=쌀 목표가격 재설정, 이와 연계한 직불제 개편 문제에 대한 의견도 제시해 달라.

▲이정환=5년 전인 2013년 현행 목표가격을 18만8000원으로 올린 것부터 굉장히 잘못된 것이다. 직불제가 생길 당시의 목적이나 정신을 살려 목표가격이 정해지고 운영돼야 하는데, 이런 측면은 훼손되고 정치적으로 정해졌다. 

정부가 직불제 개편을 통해 공익형 직불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우리 농업이 농산물 생산에만 너무 치중하다보니까 환경과 생태계에 문제가 생겨서 다원적 가치가 언급되는 것이지 그것이 농업의 본령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불제가 다원적 기능으로만 간다는 것에 대해서는 큰 오류라고 본다. 농업 생산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환경과 생태를 보전하는 쪽으로 가고, 이런 관점에서 정부가 직불로 보장하지 않으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방향으로 가야지 ‘공익형 직불제’라는 것은 과도한 발상이다. 개방화 여건과 맞물려 농업 환경이 급변하는 속에서는 가격 리스크가 가장 크기 때문에 그것을 적절히 흡수하는 장치가 최소한 10~20년 정도 우리나라에서 중요하다.

▲김호=목표가격 재설정하고 직불제 개편 방안은 관련 이해관계자들과 만나서 대화와 소통을 했으면 한다. 밀실에서 합의하고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서 합의해서 결정하는 방식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까지 목표가격은 계산식대로 결정되지 않고, 정치적으로 돼 왔다. 그러면 왜 산출식을 정해서 목표가격을 발표하느냐를 봐야 하는데, 그것은 대농민 협상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왜 이해당사자인 농민을 제외하고 협상을 하느냐, 농민들과 합의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가 변동직불금을 없앤다고 한다. 변동직불금은 가격 리스크를 커버해 주는 것이 때문에 가격 리스크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 것인지 보완대책이 필요하다. 또 몇 가지 직불제 개편안을 보면 통합 직불 형태가 기본형, 가산형으로 돼 있다. 기본형 안에 공익형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기본형이라는 것은 식량안보 등의 식량 생산 부분이고, 공익형이라는 것은 농업 생산 활동을 하면서 결합 생산물로 나오는 생태보전 측면이기 때문에 이 두 개를 구분해서 추진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현재 직불금 예산보다 더 많은 예산이 확충돼야 할 것이다.

▲김홍상=공익형 직불이라는 부분은 영농활동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가격위험 해소 부분’과 ‘영농활동 방식의 변화’를 어떻게 조화롭게 할 것인가가 이번 직불제 개편의 가장 핵심이라고 본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부분은 농정의 틀 자체를 시장 지향적 틀로 바꾸자는 데 있다. 그래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농정개혁TF가 ‘직불제 확대 개편’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직불제 중심의 농정’이라는 용어를 썼다. 정부가 개입해 일일이 간섭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장질서에 맞게 시장 리스크를 줄이는 접근방식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력한 수급 계획은 정부 개입이었고, 격리였다. 하지만 수급에 대해 정부가 주도하면 반드시 시장가격은 틀어질 수밖에 없다. 농민들의 책임이 보장되지 않은 수급 안정은 될 수 없다는 것이 직불제 개편을 논의해 온 이들의 생각이다. 결국 직불제 개편은 논의 과정에서 농민들의 인식 변화가 나타나야 가능한 부분이다.

▲이헌목=예를 들어 농업 분야에 직불금 예산을 3조원 주고, 농업 부분에 적정히 나눠서 쓰라고 문제를 던졌다면 농업계가 어떻게 썼겠나. 과연 그 절반인 1조5000억원을 쌀에 몰아줄 수 있겠는가는 의문이다. 예전에는 쌀이 매우 중요했지만, 지금은 중요도가 줄었고 많은 품목이 있는데 쌀에 지원이 편중되는 것은 맞지 않다. 직불금 예산이 늘어나는 것 자체도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렵다. 농업예산이 과연 얼마나 늘 것이며, 그것을 갖고 농업인들이 품목별로 나누라고 한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런 관점에서 직불제 문제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승룡=목표가격과 관련해 정치적 판단의 옳고 그름을 떠나 시행령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모든 후보들이 목표가격에 물가반영률을 반영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시행령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도입 취지는 쌀값 하락에 따른 소득의 안정적 보장으로 돼 있다. 그런데 쌀값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게 돼 있으니 가격을 지속적으로 떨어뜨리는 것을 염두에 두고 시행령을 만든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소득의 안정적 보장이 안 되는 것이다.

소득직불 설계 당시 가격을 낮춰서 구조조정을 빨리 추진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소농 위주로 ‘하후상박’을 하겠다고 한다. 변동직불을 주지 않고 고정직불만 주겠다는데, 그 이유가 형평성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뜬금없고 비겁한 얘기라고 본다. 또 소득직불을 처음 설계할 때부터 쌀 농업 위주로 설계를 했다. 그만큼 쌀 농업이 중요했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만약 개편을 한다면 논 농업과 밭 농업을 비교할 때 논 농업의 공익적 가치 등이 훨씬 작아졌느냐에 대한 논의나 합의가 충분히 있어야 된다.

변동직불을 없애는 것은 ‘조삼모사’라고 본다. 농민들 입장에서는 고정직불을 일부 받고, 불확실한 변동직불을 받는 것보다 변동직불을 고정직불에 얹혀서 주면 좋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쌀값이 떨어지게 되면 보험 보장이 안 된다. 분명히 또 다른 대책을 요구할 텐데, 그것은 조삼모사식 방편이지 해결이 아닌 것이다. 변동직불을 없애는 것은 답이 아니고, 변경이나 수정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이정환=비유적으로 얘기하면 부엌에서 요리를 하면서 칼로 손을 자꾸 벤다. 손을 벤다는 것은 칼질을 잘못한다는 것인데, 칼을 치워버리고 손으로 요리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가격 안정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먼저이고, 손을 안 베고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쌀 면적이 줄면 이는 곧 다른 작물 생산이 늘어난다는 것이고, 이렇게 될 경우 다른 작물의 가격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쌀이 80만ha 농지를 잡아주기 때문에 다른 농산물의 가격이 유지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다른 작물이 확대돼야 하지만, 가격이 떨어져도 농가들이 큰 손실을 보지 않도록 가격 안정장치를 넓게 해 놓아야 한다. 변동직불이라는 것은 부엌의 칼 같은 것이다.


|지방농업 활성화 방안

▲문광운=농업 소외와 농촌소멸 방지, 의료·교육·복지 등과 관련해 지방분권, 지방농업 활성화 방안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김호=지방분권과 지방농업 활성화는 결국 중앙농정의 지방분권, 자율농정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중앙정부의 사업과 예산이 지방으로 많이 이양돼야 한다. 그래서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지역 농정에 맞는 사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중앙정부나 외부에선 지자체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 이는 ‘돈을 주지도 않고 합리적으로 못 쓸 것 같으니 안 주겠다’는 말과 똑같은 것이다. 충분한 사업과 예산을 주면 지방의 역량이 커질 수 있고, 충분히 시행할 수 있다. 교육·의료·복지 부분은 통합해서 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고, 혁신적으로 통합 추진 기구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김홍상=농식품부가 농촌정책의 주무부처가 된지는 꽤 됐다. 하지만 여전히 지역개발정책 위주이지 농촌공간의 산업 정책 등의 관점이 체계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은 기초소득 얘기도 나오고,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사회에 살고 그 곳에서 산업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중요한 부분이 됐다. 농촌지역소멸 문제도 그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농업 관련 예산이 지역으로 가면 지자체를 거쳐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 그리고 농촌 지역 공간에 대한 디자인이 더 약화될 것이 아니냐는 사고는 기존 프레임에 갇혀 있는 사고가 아닌가 생각한다. 오히려 과감하게 그런 부분을 지방으로 이양하고, 지역이 다양하게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헌목=농업 문제의 성격을 완전히 시장 원리로 접근해야 할 문제들, 지역 문제로서 접근해야 할 것들, 중간적인 정책적인 접근 등 크게 3가지로 나눠 접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농산물 가격은 완전히 시장의 문제다. 이는 지역에 맡겨서 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농산물 가격 및 수급 문제는 국가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보고, 지역개발과 농촌관광 등은 지역에 맡겨야 한다. 교육이나 복지는 지역과 중앙 모두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성격을 나눠 지역에 맡길 것인지 중앙이 할 것인지를 구분해 접근해야 할 것이다.

▲양승룡=앞으로의 농정은 농업이 아니라 농촌이 중심이 돼야 한다. 농업은 농촌을 유지하는 산업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핵심은 농촌에 사람이 살고 유지되는 것에 방향을 맞추면 산업으로서의 농촌 정책이 아니라 농촌 중심의 정책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은 농촌이 반 이상이다. 그래서 농촌정책이 지역정책의 핵심일 수밖에 없다. 지역 농정의 인력들이 잘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런 점에서 농업회의소가 지자체 농정과 함께 기획과 평가, 견제와 감독을 같이 하게 되면 지역농정이 확대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이정환=지역농업이 곳곳의 특색을 갖고 발전해야 농촌 활성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중앙정부 예산의 상당부분은 포괄보조금으로 해서 지역에 주고, 구체적인 세부사업은 지방이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앙정부가 예산을 많이 써야 하는 부분은 가격 리스크 부분이다. 이것은 중앙정부만 할 수 있는 영역이며, 그것을 변동직불이라고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중앙정부가 방역, 검역, 안전, 인증 등 시스템을 관리하면 중앙정부가 기본 농업을 일정 부분 책임질 수 있고, 지방정부는 지역에 맞는 특색 있는 농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농업의 안정적인 틀을 만들 수 있다. 지방농정의 권한과 자율성을 확대하는 것은 능력 여부에 달린 것이 아니라 확대해야 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역량이 길러지는 것이다.


|2019 농정 과제 열쇠

▲문광운=마지막으로 2019년 농정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되는지 의견이 있다면.

▲이정환=중앙정부의 역할은 가격 리스크를 어떻게 할 것인지와 방역, 안전, 환경 시스템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집중을 하고, 지방정부는 특색 있는 농업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런 틀을 만드는 데 농특위가 됐든 농업회의소가 됐든 농민을 비롯해 시민, 소비자들이 활발한 논의를 통해 합의를 이뤄내고 관심을 이끌어내야 한다.

▲김호=‘우문현답’이란 말이 있다. ‘우리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얘기다. 현장 농정이라는 것은 현장을 직접 찾아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결국 농민이나 농민 단체들의 의견을 듣는 농정 거버넌스 체계에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농정을 잘 이끌어 가느냐에 달렸다. 농특위나 농정회의소가 제대로 운영이 돼서 문재인 정부의 농정공약이 실질적인 성과를 냈으면 한다.

▲김홍상=직불제 개편이나 목표가격 등 추진 과정에서 결국은 정부의 역할, 그리고 정책 대상 농업인의 주체 역량을 키워야 한다. 농업인의 정의 문제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이와 함께 정책의 구체적인 자료와 통계 분석을 통해 사회적 합의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 농지 문제를 놓고 봐도 기초통계가 상당히 취약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국가가 기초 작업을 다지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 2019년은 그런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헌목=농업 부분의 문제를 결국 풀어가기 위해선 농업이 잘돼야 한다. 개방화 시장에서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 수 있어야 한다. 제값을 받는 길은 단기적으로 생산 과잉에 따른 가격 폭락을 막아주는 것이고, 중장기적으로 가공, 수출할 수 있는 부분이 되지 않으면 농업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세계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고, 생산을 조정할 수 있는 생산자들의 협력조직, 그것이 품목조직이라고 생각한다. 각자 품목을 풀어나갈 농업 주체들이 확실히 육성하는 것이 농업 문제를 풀어나가는 기본이다.

▲양승룡=문재인 농정의 지난 2년을 ‘무관심’, ‘공백’, ‘맹탕’ 등으로 표현했는데,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농업의 정치력이 굉장히 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급히 농업의 정치력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농업회의소는 그런 관점에서 정치력 회복의 실천방안이라고 보고 있다. 농특위도 세부정책이 아니라 범부처에서만 다룰 수 있는, 제도적인 틀을 움직일 수 있는 의제를 설정해 농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운영됐으면 한다.

▲이정환=정치력, 무관심 같은 얘기가 나오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우리 농업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우리 농업이 국민 질을 향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 농특위든 농업회의소든 많은 고민을 해 나갔으면 한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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