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조영규 기자]
 

“그래서 우리나라 비료가 북한에 들어갔어요? 아니면 이제 들어간다는거에요?”

지난달 말 한국토양비료학회 주최 국제심포지엄이 있던 날, 우연치 않게 만난 한 농업인이 대뜸 물었다. ‘토양 살리기가 미래 농업을 위한 최우선 조건’이라는 당시 발표 요점을 두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와중에 ‘북한’이 화두로 던져졌다. “북한 토양도 살려야지요”라고 운을 뗀 농업인은 “한동안 북한에 비료가 지원될 것처럼 얘기하다가 갑자기 조용하길래 으레 ‘지원됐겠지’했는데, 생각해보니까 진짜 보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라고 설명했다. 10여분 이어졌던 대화는 “아직 전입니다”로 끝났다.

남북정상회담(4월 27일)을 전후해 남북경제협력사업이 재개될 것이란 전망이 일제히 쏟아졌다. 내일 당장이라도 진행될 듯한 장밋빛 기대도 많았다. 농업계, 특히 농기자재업계도 마찬가지였다. 남북경제협력사업의 물꼬를 ‘농업’이 터왔던 경험에서, 농기자재가 또다시 남북농업협력사업 시작점에 설 수 있다는 예측이 우세했다. 그래서 무기질·유기질비료, 농기계, 친환경농자재 등 우리나라 농기자재업계는 자체 토론회를 열며 남북농업협력사업을 위한 역할을 고민했고, ‘대북비료지원협의회’나 ‘남북 농업기계 교류 위원회’, ‘농자재 남북경협단’ 등 ‘창구 일원화’ 의견을 각자 모으기도 했다. 그렇게 남북농업협력을 둘러싼 농기자재업계 분위기는 뜨겁게 끌어올랐고, 이를 지켜본 농업인들도 같은 분위기를 느꼈을 터다. 문제는 딱 여기까지였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남북농업협력사업을 위한 농기자재업계의 뚜렷한 움직임은 없다. 올 상반기에 있었던 농기자재업계 토론회의 후속 논의는 물론, 대북지원을 주제로 한 토론회도 하반기에는 없었다. 이러다가 ‘남북경제협력’에 관심이 모아지면 또다시 농기자재업계는 남북농업경제협력사업의 청사진을 그리다가 수그러드는 ‘다람쥐 쳇바퀴’를 돌 가능성이 크다. 결국 남북경제협력사업의 물꼬를 농기자재산업이 뚫겠다는 야심찬 다짐도 허공의 메아리에 그칠지 모른다.

‘물꼬’란 ‘논에 물이 넘어 들어오거나 나가게 하기 위해 만든 좁은 통로’다. 남북농업협력사업의 ‘물꼬’를 농기자재가 트려면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또 어떻게 파낼지를 검토해야 한다. 우선 북한의 영농환경을 분석하고, 북한 토양에 맞는 비료와 북한 지형에 적합한 농기계가 무엇인지를 연구해야 한다. 기존 경험은 경험에 불과하다. 이미 비료와 농기계를 포함한 농기자재를 통해 북한을 도왔던 때가 까마득한 옛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때와는 북한 영농환경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때문에 대북지원을 향한 지속적인 관심과 함께 북한 농업에 적용 가능한 농기자재를 검토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종료된 가운데 남북관계는 여전히 개선되는 과정에 있다. 지금이라도 농기가재업계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온전하게 통일농업을 위해 농기자재의 대북지원 방안을 들여다봐야 할 때다. 물꼬가 한 해 농사를 좌우하듯, 농기자재가 남북경제협력사업의 향방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조영규 기자 농산팀 choyk@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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