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경미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도시농업과 농업연구관

농업이 가진 교육과 치유의 기능 주목
마을과 지역사회 건강하게 가꾸면서
사회적 약자들과 따뜻한 동행 시작할 때


이탈리아 사회적 농업 전문가인 프란체스코 디 이아코보 교수(Francesco Di Iacovo)를 초청하여 우리나라에서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농업을 실천하고 있는 농가들을 방문하였다. 이탈리아는 2015년 사회적 농업 지원 법률을 제정해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농업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좋은 사례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에 대한 개념 이해도 다양하고, 2013년 농촌진흥청에서 정의하여 제시한 치유농업(Agro-healing)과는 또 어떤 차이가 있는가에 대한 혼란이 있다.

치유농업은 그동안 농업이 가진 여러 다원적 기능 중에서 특히 교육과 치유의 기능에 주목한다. 나라마다 사회적 농장(social farm), 돌봄 농장(care farm), 녹색치유(green care) 등 다양한 활동을 포함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산림치유, 원예치료, 동물매개치료 등으로 소재에 따라 소개되기도 하였지만 세분화된 시장의 한계로 여러 소재(식물, 동물, 음식 등)의 통합적 접근에 제약이 있고, 제도적 기반 조성에 필요한 정책 개발도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치유농업이란 용어로 정의를 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도시농업이 확산되면서 농업에 참여한 학생들의 정서적 변화, 직장인들의 스트레스 완화, 노년기 어르신들의 활기찬 생활이 바로 농업활동에서 오는 것이라는 자각이, 국가가 치유농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농업활동을 국민의 건강관리체계와 연계하고 있는 선진모델로 꼽히는 네덜란드에서도 치료와 치유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하여 ‘치유와 돌봄(care)’의 개념으로 정의를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국민이 쉽게 받아들이는 ‘힐링(healing)’이 좀 더 편하게 다가가고 농업의 역할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과 협의하여 지금의 ‘치유농업(agro-healing)’으로 정의하게 되었다. 이 정의는 지난 2017년 국회 황주홍 의원 등이 발의하고, 2018년 8월 30일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여 개정된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 제43조의 2(치유농업의 진흥)’에 반영되었다.

농업이 가진 치유의 힘은 심신의 회복과 질병의 예방(건강)뿐 아니라 아동, 청소년 등에 대한 학습과 교육적 효과, 사회적 약자의 재활과 고용, 사회적 통합 등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농업의 역할과 치유의 힘이 사회적 농업으로 이해되든 치유농업으로 이해되든, 우리 사회에서 그 논의가 확산되는 점은 반갑고 바람직한 계기라고 생각한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이탈리아조차 사회적 농장이라고도 하고 윤리적 농장이라고 부르는 농가들도 있다. 일본도 복지농원이라고도 하고 소셜팜(social farm)이라고도 한다. 농업과 복지가 결합한 농복연계사업이라고도 하는데, 의료계와 협업을 하여 농의(農醫)연대를 적극 추진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의 경우도 인문의학교실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의학적 진단과 처방이 과연 그 사람의 질병을 제대로 진단하고 필요한 조치를 다 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이들도 농업이 가진 치유의 힘에 주목한다. 약물과 처치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건강한 삶의 방식으로서 말이다. 반가운 일이다. 이는 우리 사회 시스템을 재 설계해가는 과정이라고 프란체스코 교수는 강조한다.

완주에서 만난 청년농업인은 다른 곳보다 유난히 조손가족이 많아서, 복지기관에서 수용하는 인원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할머니들과 살아가고 있는데 그 아이들에게 농업을 통해 다양한 학습과 생애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자존감도 높이고, 지금 아이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행복하고 즐거운 곳으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도시에서 만난 중년 도시농업전문가는 아이들뿐 아니라 청년, 노인까지 마을 도서관에 와서 작은 텃밭을 들여다보며 책도 읽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서로를 알아간다고 한다.

농업이 가진 치유의 힘은 개별적으로 건강해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을과 지역, 국가까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다. 농업은 각자의 속도에 맞추어 나아갈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장애인이거나 약자거나 우리 사회에서 숨기고 싶거나 숨고 싶어 하는 이들도 함께 갈 수 있는 마당이기도 하다. 농업으로 건강해지는 사회, 그 따뜻한 동행을 시작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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