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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女담] 남편의 꿈위점숙
   

2300평의 땅에 하우스 열 동을 거느린 남편은 고추 농사로 최고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15년간 유기농만 고집한 남편은 직접 효소도 만들어 써보고 비싼 약제도 사용했습니다. 학교에 납품하는 급식 업체에 일괄 납품했는데 대금은 늘 나중에 받거나 심지어 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저러한 사정으로 늘 적자를 면치 못하던 차에 올해는 유기농을 포기하고 일반 농사로 전환했습니다. 나도 회사를 퇴직하고 본격적으로 고추 농사에 뛰어들어 남편을 도왔습니다.

꽃샘추위가 기승인 3월 말에 고추 모를 이식했습니다. 고추 모가 땅 내를 맡으며 자리를 잡자 쑥쑥 잘도 자랐습니다. 이른 새벽에 따온 싱싱한 곁순을 바로 삶아 무쳐 먹는 것은 돈을 버는 것과는 다른 재미지요. 이웃과 나누어 먹는 재미 또한 쏠쏠하답니다.

이때부터 고추를 수확하기까지는 4개월이 걸립니다. 나는 그새를 못 참고 집에서 가까운 식품회사에 계약직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사실은 그래야 고추 수확할 때 인건비라도 보탤 수 있기 때문이지요.

칠월 말이 되자 고추를 따기 시작했습니다. 올해는 전화 한 통으로 베트남 일꾼을 구할 수 있어서 수월했습니다. 다만 100년만의 더위 때문에 오전 여섯 시부터 열 시까지만 일을 시키고 인부들은 퇴근시켰습니다. 내가 조금 번다고 취직을 했으니 남편 혼자 뒷일을 마무리해야 합니다. 수확한 고추를 선별하고 꼭지를 따서 세척한 다음 건조기에까지 넣어야 그날 일이 마무리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남편이 자꾸 어지럽고 머리가 아파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일사병이었다고 합니다. 고추 농사짓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 더럭 겁이 났습니다.

기록적인 폭염으로 일하기는 힘들었지만 고추 값은 고공행진을 했습니다. 유기농 농사를 지으면서 빚진 외상값도 다 갚을 수 있겠다는 기대로 힘든지 모르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고추를 선별하고 세척해 건조하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찍어 초등학교 동창회 카카오톡에 올리고 본격적으로 판매에 나섰습니다.

반들반들 윤기 흐르고 탐스러운 붉은 자태를 보면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남편은 어둠이 걷히자마자 나가 한낮의 열기가 최고조에 이를 때까지 그 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오후에 나가서는 어두워 안 보일 때까지 고추밭에서 살았습니다. 나도 퇴근하면 바로 고추밭으로 달려갔습니다. 돈도 좋지만 고추가 이쁘지 않다면 그렇게 못할 것 같습니다. 그 즐거움은 더위도 잊게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고공 행진하던 고추 값이 안정되고 수확한 고추가 창고에 쌓였습니다. 물론 친구들의 도움으로 많이 판매했지만 모종값이며 인건비를 제외하면 큰 소득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차츰 여기저기 아픈 곳이 늘어나는 남편이 과감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내년에는 1500평 하우스의 고추 농사를 접기로 했습니다. 한때는 최고의 농사꾼을 꿈꾸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소일거리로 800평, 다섯 동만 농사짓겠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비록 재배면적은 줄이지만 최고의 고추 농사꾼이 되고 싶은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열심히 응원하려고 합니다.

아닙니다. 어쩌면 남편은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힘든 고추 농사를 온갖 주변 사람들의 우려 속에서도 15년 동안 묵묵히 해냈기 때문이지요. 노력한 만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했다는 자부심은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동네 어른들이 고추 모 이식할 때마다 나서서 도와주셨고, 벼농사를 짓지 않는 우리에게 햅쌀을 주시기도 하고, 내일처럼 걱정해주는 이웃이 있으니 성공한 삶이라 생각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춤추는 서울의 아파트값으로 재산을 불리는 사람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농사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 가을이면 아내를 위해 화분에 국화꽃을 가꾸어 집안을 꽃 속에 가두고, 봄이면 내가 좋아하는 옥수수를 심어 옥수수로 집안을 가두는 사람입니다. 나도 이제 그를 위해 열심히 회사에 다니면서 일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비록 유기농에서 일반농사로 바꾸었어도 최소한의 농약을 사용하고 꼼꼼하게 세척해서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드는 유기농으로 성공하는 이웃이 넘쳐나기를 기대해봅니다.

/위점숙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원, 전북 익산에서 고추농사 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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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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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며루치 2018-10-20 21:33:32

    참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한편으론 코끝이 찡해옵니다.

    남편께서 건강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노력한만큼 행복할 수 있어야 건강한 시회일텐데 말이죠..
    늘 건강하시길 소원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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