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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연구자의 시선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
   

김경미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도시농업과 농업연구관


무엇을 보고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농업 연구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어
농촌에 사는 사람을 담아내는 연구여야


2004년 여름, 미국에서 열린 북미농촌사회학회에서 농촌지도 공로상을 수상한 Dianne L. McSwain씨는 연구 활동도 열심히 했지만 30년 이상 농가 기술지도에 헌신해왔다고 한다. 수상소감을 말하기 위해 나선 그의 첫 말은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였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바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 우리는 서로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연구자가 무엇인가에 대해, 누군가에 대해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연구자는 항상, 문제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누구의 관점에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제대로 보고 이해하려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서로 다른 견해를 받아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토론하고 발전시켜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서로에게 꼭 필요한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역할과 자세를 조언하고 바로 세우기 위해 서로의 협력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니 여러분께서는 각 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영어에 서툰 나조차도 감동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섰고 다른 참석자들도 모두 기립박수를 보냈다.

대학교보다는 현장이 가깝고 늘 현장을 다닐 수 있다고 여겨 농촌진흥청을 선택했던 나로서는 과연 연구자의 시선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언제나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작물 연구가 중심이 되는 농업연구분야에서 사람을 연구하는 일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농업정책 측면에서도 품질을 향상시키고 생산을 통해 수요자가 필요한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관심은 많지만 누가 그 농산물을 생산하고 그들은 또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궁금함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될까? 시장에서 만나는 농산물이 맛있는지, 잘 생겼는지, 싼지, 안전한지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건강한지, 안전한지, 행복한지, 즐겁게 살아가게 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그들이 수도권에 사는 일반 국민과 같은 기회를 누리려면 얼마나 많은 비용을 더 지불해야하는지 말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소외되어 있는 여성농업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농업인, 특히 여성농업인을 왜 연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에 80%이상의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조직의 안정성이 약하여 연구가 지속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하기 일쑤다.

일반적으로는 소득이 올라가면 나머지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여성연구의 대상도 주로 여성들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부부를 같이 묻거나 가족들을 같이 조사하였다. 왜? 그 어느 누구도 혼자 살고 있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벌써 20여 년 전이기는 하지만, 여성들이 농기계 교육을 받고 싶다고 하지만 막상 교육과정을 만들어도 수강생이 많지 않아 고민이라면서 조사를 해보라고 한다. 그래서 농가의 여성들을 만나 들어보니, 그렇지 않아도 할 일이 너무 많은데 농기계까지 내가 다룰 줄 알면 노동부담이 너무 늘어난다는 것이다. 사실 농기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농촌에서 젊고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편인데, 이 경우 대부분의 남편들도 농촌에서 역할이 많다. 그러므로 부인에게 농사를 전적으로 맡겨두는 사례들도 많기 때문에 여성들은 농기계 교육을 받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이 조사를 통해 단순히 교육요구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결과로 올 수 있는 장면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또 영농교육에 여성들이 소극적이라는 시선이 있어서 그 점도 확인을 해보니, 농촌에 사는 여성들도 드라마에 나오는 여성들처럼 취미생활도 즐기고 싶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교육도 하나의 사회활동인 것이다. 그리고 농사지은 결과에 대한 성과를 나눌 수 없으니, 남편이 하라는 대로 하는 편이 가족간 불화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체념하면서 농업교육에 대한 의욕도 약화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만약 농기계 교육에 대한 요구가 있는지만 물었다면 이런 답은 얻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교육받고 싶은 것에 비해 실제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가 하는 교육 수혜율을 조사해보니 농촌에서도 소득계층에 따라 그 수혜율이 달랐다. 여성농업인들이 앞으로 농사를 계속 지을 것인지? 10년 후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물었을 때 의외로 시군 정책의사결정직에 진출하고 싶어 했고, 더 배우고 싶어 하는 공부의욕도 높았다. 그들에게 묻지 않았으면 나오지 않을 답이었다. 농업인이란 농산물만 잘 길러내면 되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벌써 20여 년 전 국제미작연구소(IRRI)에서는 새로운 품종이 나오면 농가가 새로운 품종을 선택하는 데 필요한 기술뿐 아니라 농가들의 사회적 관계, 농가의 경제여건 등 농업인들의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요소까지 함께 조사하고 있었다. 우리는 농가의 성공을 지원하고자 하지만 정작 농업에서 성공이란 어떤 것인지? 농가에서 무엇을 성공했다고 생각하는지 묻지 않는다. 여성과 승계자인 청년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농촌에서 농업을 영위하는 그들이 어떤 요구를 가지고 있고 한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이 땅의 국민으로서 어떤 기회를 원하는지 물어야 한다. 진솔한 질문과 답을 듣는 과정에서 농가도 조사자인 나를 이해하고, 그 농가에서 하룻밤 지새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이 부지기수다. 농업을 연구하는 많은 이들이 아마도 그렇게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농업인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밤을 새우고 그렇게 모은 자료들이 오늘날 농업기술의 발전을 가져왔으리라.

농가마다 채록한 3~4시간의 인터뷰를 글로 풀어내면 A4 용지 몇 십장은 족히 넘어간다. 그 각각의 현장에서 살아온 이들의 치열한 시간들과 열정을 놓치기 아까워 한 자 한 자 의미를 발견하는 작업을 또 하게 된다. 조사에 참여한 팀원들과 토론을 하면서 때로는 다른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의미 있는 결과들을 도출해내기 위해 조바심을 낸다. 그 과정에서 연구자의 시선에 따라 어떤 내용은 사라지고 어떤 내용은 클로즈업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한 번 Dianne L. McSwain씨의 조언을 떠올리곤 한다. 그들이 내어준 그 소중한 시간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는가? 내가 조사하는 비용에 대한 국가의 예산 투자가 낭비되는 것은 아닌가? 그럼에도 사람을 담아내는 연구는 참으로 어렵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연구자인 내 스스로 묻는다. 연구자의 시선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무엇을 찾아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사회 변화에 기여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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