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 1년을 맞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다양한 평가가 있지만, 지지율이 80%를 넘어 역대 최고를 기록한 것은, 국민들이 그만큼 신뢰와 기대를 보내고 있다는 증거다.

무엇보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정세를 전쟁에서 평화무드로 바꿔낸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커다란 성과다. 24일 트럼프의 북미정상회담 취소로 난기류가 형성됐지만,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하지만 나라다운 나라로 가는 길은 아직 시작일 뿐, 이 사회 곳곳에 구조적 결함과 흑막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갈 길은 멀다. 주변 열강 사이에서 꼬일 대로 꼬인 한반도 정세, 재벌과 1% 부자 위주의 경제사회 질서, 정부와 정치권에 도사린 적폐세력 등 이 나라를 추락시킬 요인은 널려있다. 이런 정세에서 국민들의 지지는 국민주권을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의 개혁이 성공하도록 밀어주기 위한 것이지, ‘이만하면 됐기 때문’은 아니다. 만일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민심을 외면하고 개혁을 중단한다면 ‘촛불정부’는 순식간에 내외부의 공격을 받아 ‘적폐정부’로 전락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개혁 실패의 징후는 하필 농업과 먹을거리 분야에서 도드라진다. 문재인 정부 농정 1년을 평가하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토론회에서는 ‘농업분야는 이전 정부와 다를 것이 없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농정공약을 바꿔놓는다고 해도 일반 국민들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그나마 차별화되는 것은 농어업특별위원회 설치, 경자유전원칙 확립, 공익형 직불제 도입, 농업회의소 등인데, 이 역시 별반 진전이 없어서다.

지난 1년 동안 대통령은 단 한 번도 국정연설, 대국민 담화에서 농업과 농민, 농업개혁을 거론하지 않았다. 대선공약인 농어업특별위원회는 이행되지 않고 있고, 심지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청와대 농업비서관이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사표를 내는 바람에 초유의 농정공백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보다 못한 농민단체와 시민사회는 지난 3월부터 농업적폐청산과 농정대개혁을 요구하는 긴급행동에 들어갔다. 지난 5월21일부터는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가 청와대에 농정공백 사태를 조속히 해결하고 농특위 설치를 서둘러 달라는 국민 청원을 냈다.

이에 앞서 서명자가 21만명을 넘겨 국민청원이 성사됐지만, 박근혜 정부 때와 다를 바 없는 청와대의 답변 때문에 큰 실망을 낳은 경우가 GMO 완전표시제 청원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물가 인상, 경제적 능력에 따른 계층 간 위화감 조성 우려, 통상 마찰 가능성 등을 들어 향후 사회적 협의체를 통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이전 박근혜 정부의 식품표시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란 비난이다. 유럽, 미국, 호주 일본 등 한국보다 강화된 GMO 표시를 하는 나라들도 물가인상과 통상마찰이 없는 마당에 청와대 논리는 사실왜곡과 과장이라는 비판이다. 게다가 공정성 논란을 빚어 온 식약처 주도의 협의체에서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은 공약 불이행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의도란 것이다.

GMO 청원에 앞장섰던 단체들은 지난 19일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었다. 매년 5월 셋째 주 토요일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몬산토 반대 시민행진’의 날을 맞아 GMO 완전표시제를 요구하고,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GMO 반대 연대선언을 채택했다.

GMO 표시 강화와 학교급식에서의 퇴출은 다름 아닌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사항이다. 이를 청와대가 성실히 이행하기는커녕 국민 20만명의 청원을 받고 나서야 마지못해서, 그것도 이전 정부의 논리를 되풀이 하는 모습을 보고 자괴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자본과 관료를 넘어 국민 주권을 되찾기 위해 촛불을 들었건만, 정권이 바뀌어도 강고한 적폐의 구조를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문 대통령과 정부가 촛불민심의 힘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제 1년이 지났고, 4년이 남았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을 세워준 촛불민심 위에서 교만하지 말고 누구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지 초심으로 성찰해야 한다. 농업회생의 골든타임이 흘러가는 이 시간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여부를 결정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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