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선 농민의 표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역동적이고 시시때때로 바뀌는 ‘산토끼’가 아니라 조금만 ‘립서비스’하면 언제든 표를 끌어올 수 있는 ‘집토끼’라고 보는 거죠.”

지난해 대선 당시 유력 후보의 선거캠프에서 활동을 했던 한 인사의 얘기다. 농업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던 이의 말이라 유독 뼈아프게 다가왔지만, 한편으론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부와 정치권이 언제부턴가 농업을 효율과 규모, 경쟁력 위주의 경제적인 관점으로, 농산물을 생산재가 아닌 소비재의 개념으로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인식 속에서 농업이 다른 산업에 비해 홀대를 받고 있다는 정서가 농업계에선 꽤 곳곳에 퍼져 있다.

안 그래도 급변하는 기후변화와 시장 개방 등의 영향으로 영농활동이 어려워지고 있는 환경이다. 불과 1년 전, 문재인 정부 출범에 ‘농정패러다임의 전환’을 바라는 기대들이 많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난 농정은 기존 농정 틀을 조금도 깨지 못하고 있다. 아니 변화하지 않은 채 ‘겨울잠’에 빠졌다. 의지도, 동력도 사그라들고 있다.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청와대 농정 라인은 사상 초유의 공백 상태다. 농업계만 ‘헛물’을 켠 것일까. ‘농업계 패싱’, ‘농업 홀대’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여야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되풀이되는 ‘농업 홀대’는 지난해에 이어 어쩌면 올해도, 내년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농업에는 여야가 없다”는 얘기는 올해 국회 상황을 보면 실소를 불러일으키고도 남는다. ‘묻지마 발목잡기’ 행태를 보이는 자유한국당과 무기력한 대응에 그치는 더불어민주당 간의 정쟁으로 농정 개혁의 중요한 틀을 바꿀 핵심 법안들은 뒷전에 내팽겨진 상태다. 어쩌면 농정 개혁의 ‘골든타임’일지도 모르는 순간들이 속절없이 흐르고 있지만, 애를 태우고 있는 건 농업계뿐이다. 정작 농민들의 눈치를 봐야 할 이들은 정부와 정치권인데 말이다.

6월 13일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코앞이다. 농업계의 역량 결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농정 개혁의 뒤늦은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헌법 개정도, 쌀 목표가격 설정 등의 현안 문제도 앞으로 줄줄이 엮어져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농업을 ‘집토끼’로 볼지 아니면 ‘산토끼’로 대우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농민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제는 농민의 표가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다. 농민 단체들도 갈라서기보다는 힘을 묶어내야 할 때다.

고성진 기자 농정팀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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