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천 상지대학교 교수

공진화, 생태시대 상징 ‘핵심화두’
환경-인간-경제 공진화하려면
친환경 생태순환농업 구축해야


최근 댓글조작사건(일명 드루킹 사건)을 경제적공진화모임이라는 조직이 주도했다는 뉴스 때문에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라는 용어가 갑자기 유명해졌다. 이 용어는 원래 생물진화론 등에서 사용하던 전문용어인데, 최근에는 유기농업, 생태경제학, 경영학 등에서도 널리 응용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공진화는 생태시대를 상징하는 핵심개념이자 화두이다.

공진화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진화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진화는 ‘생물집단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전적 구성이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최초의 단세포 생물이 여러 환경변화에 적응하며 오늘날의 식물과 동물로 진화해 온 것이다. 여기서는 종족번식이나 생존에 성공하면 진화하는 것이고, 실패하면 도태(멸종)된다고 설명한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종(種) 만이 살아남는 것이다. 기린이 목이 길어진 이유는 다른 종들과의 먹이경쟁에서 높은 곳 나무 잎을 먹기 위해 진화한 것이고, 이 경쟁과정에서 기린은 생존하고 먹이를 먹지 못하는 종은 멸종했을 것이다.
진화에 비해 공진화 개념은 좀 다르다. 거대한 생태계 내에서 서로 경쟁자끼리의 경쟁, 공생자끼리의 협조 등을 통해 양자가 생존과 번식을 하며 ‘함께 진화’하는 것을 말하다. 즉, 도태되는 종이 없는 것이다. 포식자와 먹이, 숙주와 기생 생물의 경우에서처럼 서로의 생존을 위해 적대적인 관계에서도 공진화가 이뤄진다. 산짐승이 산삼을 먹고 산삼의 번식을 도와주는 것, 꽃과 곤충이 서로 살아남기 위해 경쟁을 하면서도 함께 진화해 온 것이 그 예이다.

생태계의 공진화의 조건은 바로 다양성이다. 환경문제는 결국 생물종의 다양성을 지키는 문제이다. 생물종은 생태계의 순환체계 안의 먹이사슬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한다. 인간도 마찬가지이고, 당연히 농업도 이러한 체계에 속해 있다. 농업생산에서 화학농약이나 합성화학비료 등 고독성 화학물질을 고투입하면 이 생태적 순환체계는 붕괴되고 공진화의 사슬은 끊긴다. 농약으로 잡초와 병해충을 완벽히 제거하면 생산효율성은 증대하지만 미생물과 생물종은 도태된다. 이는 궁극적으로 인간에게도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적당하게 잡초와 곤충이 공존해야 면역력이 생기고 먹이사슬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기농업에서는 휴경, 윤작 등을 실시한다. 친환경 순환농업, 경축순환 유기농업의 가치가 커지는 것이다.

일반 산업과 농업은 서로 경쟁과 협조 관계에 있다. 일반 산업경제가 발전하면 농업도 함께 발전하지만 비교열위에 있는 농업은 도태(소멸)될 수도 있다. 앞으로 제4차 산업혁명이 진전되면 그러한 경향은 가속화될 수 있다. 농업생태계, 농산어촌과 도시,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는 공진화할 수 있을까? 생태계든 인간세계이든 다양한 관계,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그 속에서 경쟁과 협력을 통해 살아가면 공진화해 왔다. 불교에서는 연기론을 통해 인드라망의 세계라고 설파한다. 모든 것은 하나의 그물 속에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농업 생산자와 소비자는 시장원리에 따라 ‘값싸고 많은 량’을 매개로 서로 경쟁하며 공진화해 왔다면, 앞으로는 생산자-소비자, 도시민-농업인, 도시-농촌이 경제적 이익을 나누는 협조적 공진화의 과정을 도입해야한다. 그래야 농촌소멸을 막을 수 있다. 생협과 직거래운동이 좋은 관계 매개체이다.

농업에서의 공진화의 역사는 1만여년으로 거슬러 울라갈 것이다. 농업은 인간이 야생식물과 동물을 이용(섭취)하려고 하는 데서 서로 대응하며 공진화해 온 과정이다. 농업에서 농업-인간-경제가 공진화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바로 친환경 유기농업, 생태순환농업이 그 대안이다.

화학농자재 무투입, 유기자원 순환, 경종-축산순환농업, 가족농 보호, 생-소 직거래, 지역공동체조직(회사, 단체, 조합 등) 등이다. 우리 농업은 경제(소득, 소비욕구 충족)-환경(순환과 지속가능한 농업)-인간(삶의 질, 생명과 건강)의 복잡한 역학관계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결국 여기서 환경이 가장 우선이고, 인간과 경제는 그 후순위로 가되 이들 상호간의 공진화가 이뤄질 수 있는 사회적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충남 홍성이나 서산, 전남 장흥과 함평, 곡성, 경남 남해, 경북 문경, 충북 괴산과 증평 등의 친환경 논에서 3억년 전 고생대 화석에서 발견되는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긴꼬리투구새우(Triops)가 발견되는 것은 좋은 징표라고 할 수 있다. 예산의 황새 쌀, 강화도 논 습지의 매화마름 쌀도 환경과 인간과 경제의 공진화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인간의 건강과 경제적 이윤은 일시적이지만 환경 생태계는 영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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