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꼼수

윤병선(건국대 교수, 서울시 공공급식위원회 위원장)

기존 <어린이급식지원센터> 활용
취약계층 ‘위생·영양관리’ 골자
국가공공급식관리지원센터
식약처 맡되 경비 전액지원 명시

정부 추진 지역푸드플랜과 배치
서울시 ‘공공급식’도 무력화 우려
‘도농 상생’ 관점 재논의 절실


최근 푸드플랜과 공공급식이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푸드플랜을 통해서 먹거리의 생산과 유통, 가공, 소비, 처리에 이르는 전 과정을 순환적 체계로 구축하려는 노력은 먹거리의 생산과 소비를 보다 통합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추세라고 할 수 있다. 농산물이 생산되는 농촌지역에도 먹거리에 대한 수요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은 지역의 수요에 대해서는 고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도시는 먹거리의 소비처로서의 권리만 생각했을 뿐 소비를 통해서 농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적었던 상황에서 도농상생의 관점에서 먹거리의 생산과 소비를 연결시키려는 노력도 우리 사회에 희망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에 내걸었던 푸드플랜 수립과 공공급식의 확대 등의 공약을 농민단체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들도 지지했던 이유는 푸드플랜 속에 공공급식이 잘 녹아 들어가면 먹거리 사각지대를 해소하여 시민들의 먹거리 기본권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농업의 가치를 확산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공약은 문재인 후보의 독창적인 공약은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완주나 세종 등 여러 기초자치단체는 지역순환에 기초하여 공공급식을 포함하는 먹거리 정책을 추진해 왔다. 여기에 더해서 산지를 갖고 있지 않은 서울시까지 작년 6월에 발표한 먹거리마스터플랜을 통해서 공공급식의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했다. 서울시는 어린이집과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공공급식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가능하면 친환경식재료의 사용을 높이도록 하면서, 산지와 자치구의 직접적인 연결을 매개로 안전성 확보도 기하면서 도농이 상생하는 공공급식사업을 실행하고 있다. 그리고 공공급식사업을 실행하면서 현재 강동구, 동북4구(강북구, 노원구, 도봉구, 성북구), 금천구에 “공공급식센터”를 설치하여 어린이집 등에 식재료를 공급하고 있다. 안전과 관련해서는 산지지자체, 공공급식센터, 급식시설 등 생산·유통·소비단계에서 관리하는 도농상생에 기반을 둔 공공조달체계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하나의 복병이 나타났다. 정부가 전국을 순회하면서 설명회를 개최한 ‘지역단위 푸드플랜’과도 맞지 않고,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도농상생 공공급식’도 무력하게 만드는 법률안이 제출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의 노력이 보다 힘을 받아 체계적으로 실천되고, 더 많은 지역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조례가 아닌 법률을 통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오히려 지자체들의 고민과 노력을 좌절시키는 법률안이 “공공급식 지원 및 관리”라는 이름으로 발의된 것이다.

기동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공급식 지원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은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급식의 영양·안전관리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서 기존의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의 인프라를 활용하겠다는 것을 제안이유로 밝히고 있다.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에 의해서 설치·운영되고 있는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의 사업은 위생관리지원과 영양관리지원 두 가지다. 위생관리지원은 단체급식소 위생관리 실태 파악과 컨설팅, 원장 및 조리종사자, 어린이, 학부모 등을 위한 위생교육이 중심이다. 영양관리지원은 식단작성, 표준레시피 개발, 방문영양교육으로 구성되어 있다.

법률안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가 수행하고 있는 이 두 가지 사업을 그대로 확장해서 공공급식에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 골자이면서 명칭은 유감스럽게도 ‘공공급식 지원 및 관리’로 포장되어 있다.

공공급식에 대한 지자체의 고민과 실천을 담지 못하면서 ‘공공급식관리지원센터’ 설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법률안이 ‘공공급식 지원 및 관리’라는 이름을 내걸고 발의된 것을 과연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지만, 법률안 제13조에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은 공공급식관리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하도록 강제하고 있지만, 제14조에는 식약처장은 국가공공급식관리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할 수 있다고 적시되어 있다. 그러면서 지자체에 대해서는 필요경비의 일부를 보조 또는 지원할 수 있다고 한 반면, 국가센터는 필요한 경비의 전부를 지원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또한, 지자체센터는 “식단 작성 지원”, 국가센터는 “표준 식단 작성 지원”을 수행업무 중에 적시하고 있다. 오히려 표준 식단은 지역의 생산여건을 반영해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지금 정부가 고민하고 있는 지역단위 푸드플랜과도 어울릴 텐데 이를 국가센터가 수행한다는 것이다.        

여러 지자체가 공공급식 영역에서 현재 고민하고 있는 것은 영양과 위생을 넘어서 있다. 보다 안전한 먹거리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생산한 먹거리를, 서로가 상생하는 먹거리를 식탁에 올리고, 그 식탁에 차별 없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법률이 필요하다. ‘공공급식관리지원센터’처럼 먹거리에 대한 관리를 지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먹거리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관리하는 것이 지자체와 국가가 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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