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석 농촌진흥청 농업연구사

일본 정부는 2016년 규제개혁추진회의 농업분과에서 '도매시장법이라는 특별한 법 제도에 근거한 구태의연한 규제는 폐지한다'는 문구를 명기한 다음부터 도매시장법의 폐지 또는 근본적인 개혁을 위한 검토를 진행해 왔다. 이러한 도매시장의 제도개혁에 대해 2017년 중의원선거 당시 각 당에서 내놓은 공약을 보면 집권당인 자민당과 야당 모두가 근본적인 개혁의 반대 또는 유보 입장을 표시했으며, 유일하게 ‘유신의 회(維新の会)’에서만 농산물의 유통비용 절감을 위해 도매시장법의 규제를 폐지하고 자유경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일본에서도 도매시장의 규제개혁에 대해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도매시장의 공익적 기능 때문이다. 대대적인 개혁을 입버릇처럼 떠들던 아베 내각에서도 도매시장은 사정이 다른 모양새다.

일본도 도매시장 규제 폐지 신중

지난해 11월 24일 일본 농림수산성은 시장개설의 자유화와 규제폐지를 골자로 한 급진적인 제안을 발표했고 집권당인 자민당이 강하게 반발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현행 도매시장제도 하에서 도매시장은 공정한 거래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 상당수가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농림수산성과 자민당의 조정을 거쳐 최종 개혁안을 발표했다. 농림수산성이 제시한 개혁안은 다음과 같다.

우선 현행 농림수산대신(장관)의 인가를 받아야만 설립이 가능한 중앙도매시장의 개설권한을 폐지하고, 민간기업도 정부가 제시한 일정 요건을 충족시키면 중앙도매시장의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인정제도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자민당은 민간에 의한 중앙도매시장 개설은 정부의 재정지원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로 인해 시장개설자의 부담이 늘어나면 최종적으로는 시장수수료의 인상으로 이어져 생산자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 반대했다. 최종적으로 일본 정부는 인정제도로의 전환은 유지하되 일정한 규칙을 지키고 기본방침을 충족할 것을 구체화하고 공익적 역할을 부여하기 위한 정부 지원은 유지하는 방식으로 조정했다. 이러한 조치로 인해 중앙도매시장에 대한 실질적인 규제와 국가의 감독이 계속되기 때문에 민간의 실질적인 참여가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 도매시장법인이 중도매인·매참인 이외의 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제3자 판매와 중도매인이 해당 도매시장의 도매시장법인이 아닌 자로부터 농산물을 직접 수집하는 직접 집하, 그리고 상물일치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국가가 전국적으로 일률 규제하던 방식을 시장별로 개설자가 설정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것 역시 현재도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다만 시장별로 제3자와 직접 집하의 허용여부를 결정할 때는 특정 사업자를 우대하는 결과가 초래되지 않도록 공정한 절차를 거쳐 조건을 부여하고 있다.

특정 소매점 과점 폐해 예방 기능

결국 균등한 기회부여를 조건으로 당사자 간의 합의를 요구한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부여한 것은 법령에 의한 법인과 중도매인의 역할 구분과 현장에서의 역할 구분과의 괴리기 있기 때문이며, 법인과 중도매인의 역할 구분은 어떠한 형태로든 유지한다는 의지로 판단된다. 결국 도매시장 개혁은 불필요한 유통단계를 제거한다는 구조 개혁보다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주체별 역할을 인정하면서 그 역할 분담 방식을 개선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같은 일본의 조치는 높은 도매시장 경유율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의 결과이다. 2014년 기준 일본의 도매시장 경유율은 청과물이 60.2%(국산은 84.4%), 화훼 77.8%로 높은 경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높은 경유율은 결국 산지와 소비지가 도매시장의 기능을 평가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규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

우리나라의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은 농수산물 유통을 원활하게 하고 적정한 가격을 유지해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국민생활의 안정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2016년 기준 전국 공영도매시장에서 거래된 청과물 거래금액은 약 11조8000억원이다. 도매시장 유통에 적합하지 않은 가공농산물을 제외한 신선농산물에 한정할 경우 도매시장이 전체 유통되는 농산물의 60~70%를 담당하는 셈이다. 이처럼 도매시장 경유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그만큼 도매시장의 기능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특히 영세한 생산자와 소매업자가 자유롭게 농산물을 판매하고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은 도매시장의 중요한 공적인 역할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열린 시장의 존재가 특정 소매점의 과점화로 인한 다양한 폐해를 예방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공영도매시장의 공적인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는 이러한 규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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