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간 신뢰를 바탕으로
산지 품목별 조직화 추진
농산물 가격결정권 확보
협동조합의 역할도 중요


농업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대한민국. 풍년이 들면 가격 폭락으로 흉년이 들면 물량 부족으로 농외소득 없이 순수 농업 소득만으로는 농가들이 생존하기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농민단체를 비롯한 농업계, 학계, 정치계, 행정 등에서는 매번 식량주권과 농업 생존권을 위해 농업의 발전 방안을 고민하지만 제자리를 멤 돌 뿐 농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과 방안을 찾기 힘든 것이 현재 우리의 농업이다.

한농연제주도연합회는 이에 지난달 8일부터 16일까지 농업 선진국이라 불리는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을 대상으로 ‘농·축산물 수입 개방화에 따른 선진지 견학’을 떠나 서유럽 농업의 생존 모습을 살펴봤다.

우리는 그동안 서유럽 등 농업 선진국의 경우 영농여건이 좋고 정부의 농업 보호의지가 강해 서유럽 농민들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는 현실의 일부다. 서유럽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상기후에 따른 자연재해, 농촌 인력수급 문제, 기계화에 따른 농가 부채 문제 등을 겪고 있어 생산적 차원에서 우리의 농업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서유럽을 농업 선진국으로 만든 것일까? 유럽연합 집행예산의 40%를 차지고 하고 있는 공동농업정책(CAP) 예산의 3분의2를 직불제에 할애하고 있는 정책 부문도 있지만 이번 연수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농가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산지조직화와 가격결정권 확보 등을 통한 유통 부문 농업 소득 확대 그리고 기관과 유대적 협력 관계 유지를 통한 농업 보호와 유지다.

우선적으로 농민 입장에서 현실로 와 닿는 부분은 스위스의 과실생산자연맹(Schweizerischer Obstverband·SOV)과 농산물 유통방식이다. 농민들로 구성된 SOV는 전국에 지역 대표자를 두고 각 품목별 전국 생산량에 따라 협의된 사항에 따라 농산물 가격을 전국적으로 단일화해 공판장에 출하한다. 이는 SOV 즉 농민 스스로가 생산한 농산물에 대한 가격결정권을 갖는 형태로 도·소매를 비롯한 중계상은 SOV가 결정한 가격 이상으로 농산물을 구매·유통하게 된다.

농가들은 공판장 출하물량 이외의 농산물에 대해서는 협동조합인 ‘COOP’에 납품하거나 직거래장터 판매를 통해 농업 소득을 올리고 있다.

서유럽 농가들은 정부의 직불제를 통한 소득 보전과 함께 농산물 가격결정권 확보를 통한 최소한의 소득 보장, 협동조합 납품 및 직거래 장터 등 다양한 유통경로를 통한 농업 소득으로 농업을 보호·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 중심에는 농민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 조직화와 지역농산물 우선 구입을 원칙으로 하는 협동조합과 농민간 협력적 유대가 있다.

이 같은 방식이 우리에게 없는 것은 아니다. 2012년 도입돼 도매시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정가·수의매매와 협동조합인 농협이다. 하지만 정가·수의매매의 경우 농업 관련 기관 등에서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도매인의 참여 저조와 경매가와 비교한 농가의 기대·불안 심리로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협에 대해서도 농민들은 경제사업을 제대로 하는지, 농가 지원을 많이 해주는 지에 대해서만 얘기할 뿐 농협이 농산물 유통과정에서 대형유통업체 납품을 위해 제 살 깎기 경쟁을 하는 모습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어 결국 농협의 경제사업을 위한 부담은 농민들의 소득 감소로 돌아오는 것이 현실이다.

산지조직화는 다른 농민이야 어떻든 혼자 많이 벌고 잘 살면 된다는 일부 농가들의 이기적인 성향이 산지조직화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 모든 상황에는 서로간의 불신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신뢰를 하지 못하는 현 상황이 우리 농업을 위기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우리는 언제나 농업의 발전을 얘기하고 고민한다. 하지만, 불신을 기반으로 한 논의의 결과로는 나아갈 수 없으며, 힘의 낭비일 뿐이다. 이제는 신뢰와 유대로 서로 뭉쳐야 한다.

농민간 신뢰를 바탕으로 산지조직화를 이끌어 힘을 키우고, 조직을 통한 가격결정권 확보와 농협 등 기관과 유대적 협력관계를 통한 유통 부문 농업 소득을 높일 때 농업이 보호, 유지 그리고 생존할 수 있는 방법임을 우리 스스로 각인해야 할 것이다.

김한종 한농연제주도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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