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천 (상지대학교 교수)

추석이다. 추석이 다가오면 미리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를 하고 성묘를 하는 미풍양속이 있다. 독자들 중에는 몇 주 전에 벌초를 하고 온 분도 계실 것이고, 시간이 없어서 못한 분도 계실 것이고, 대행업체에 위탁한 분도 계실 것이다. 필자도 최근 몇 년 만에 벌초를 다녀왔다. 부친께서 연로하셔서 벌초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처음으로 대신 형제들과 간 것이다. 예전에 부친 따라 갔던 묘소 6기를 형제들과 찾아 벌초하려니 참 힘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GPS를 기록으로 남겨 찾아간다는 얘기도 들린다. 실제로 몇 년 만에 가본 묘소 현장은 예전과 너무 달랐다. 번지수가 있고 관리가 되고 있는 공원묘지는 좀 다르겠지만, 옛날 자연묘지는 눈으로 대충 찾을 수밖에 없다. 이장과 개장으로 사라진 묘들이 많고, 자연묘지 주변에 수풀은 우거지고, 주변의 숲길은 밀림처럼 돼 버렸다. 무연고 묘가 눈에 띠게 늘어나고 있다. 부친과 실시간 전화통화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6기 중 끝내 한 기를 찾지 못하고 내려왔다. 이런 불효가 또 있을까. 묘소 주변에서 사라진 묘들은 도시로 나가 납골당으로 갔을 것이다. 간간이 산짐승이 다니는 길은 보이지만 사람이 다닌 흔적은 보기 어렵다. 예전에 다니던 묘소 진입로 자체가 사라졌다. 이러다가는 몇 년 내에 조상의 묘를 찾지 못하는 사태가 많이 발생할 것 같다. 왜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 접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농산어촌지역에서는 산에 올 사람이 없고 벌초가 아니면 산에 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황무지처럼 헐벗었던 산이 이제는 밀림처럼 된 것이다.

예전에는 벌초를 손과 낫으로 했다. 지금은 예초기라는 기계로 한다. 갑자기 산속에 굉음이 울리면서 벌초의 추억은 손과 낫이 아니라 기계의 효율성에 잠긴다. 하루 종일 형제들과 사촌들이 모여 연례행사로 하던 벌초는 이제 풀을 깎는 행위로 격하된 느낌이다. 무덤 속의 조상들은 예초기의 굉음에 심란하시겠지만, 벌초하기 위해 각지에서 모인 자손들의 노동은 한결 가벼워 졌다.

가족공동체의 구심적 역할 벌초

벌초를 하고 마을로 내려온다. 사람이 별로 없다. 만나는 사람들은 주로 노인들이다. 요즘 지방소멸수라는 용어가 관심거리이다. 이 지수를 기준으로 하면 전국 228개 지자체 중 3분의 1 이상은 30년 후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지방소멸위험지수가 0.5미만인 지자체는 85곳이라고 한다. 웬만한 농촌지역은 여기에 포함될 듯하다. 지방소멸위험지수는 고령인구(65세 이상) 대비 20~39세 여성인구의 비중으로 계산한 지수이다. 이 비율이 0.5라면 고령화 인구가 많고 저출산이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임여성지표 말고도 65세 이상 노인인구 대비 15세 이하의 인구비율을 대체해 말하는 지표도 있다. 즉, 15세 이하의 인구가 65세 이상의 고령충에 비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이다.

벌초와 성묘는 유교의 전통적 관례대로 가족공동체의 구심적 역할을 해왔다. 후손들이 조상을 매개로 자기들 가족공동체의 상징이자 원형으로 여겼던 것이다. 경향각지에 살지만 이날은 모두 모여 조상의 묘를 벌초하면서 자신들의 혈연관계를 확인하는 날이기도 했다. 상당히 망자가 중심이 된 가종공동체 문화이다. 망자를 매개로해 후손들이 가족공동체의 구심점으로 삼았다. 여기에 비해 납골당은 불교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산자 중심의 장묘문화로 현대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동차로 쉽게 접근해서 조상을 참배하는 문화로 발전한 것이 납골당 장묘문화이다. 1000℃이상의 불에서 태워져서 아무런 DNA도 남지 않아 산자와 죽은 자의 관계가 물리적으로 단절된 것 같은 상황을 조상이라는 이름으로 납골당에서 마주하게 된다. 납골당을 참배한 경험은 이렇듯 참 생경하다.

농촌 사라지면 벌초문화도 소멸

벌초는 가족공동체의 원형이자 최후의 보루인 것 같다. 최근 가족공동체는 와해되고 변질되고 있다. 국가주의의 강화로 지역(향촌)의 약화, 농경사회 해체로 이농이 심화되고, 상품으로부터의 인간 소외, 상품의 물신화로 인간관계 쇠퇴, 가족공동체 쇠퇴로 이어진다. 가족이 가족 밖의 공동체에서 분리돼 핵가족화 되고, 그 내부에서의 물신화로 가족구성원의 미분화됨으로써 가족 분해, 가족 미결성, 가족공동체의 미분화로 부계 대가족제에서 핵가족화, 모계 가족, 홀 부모가족, 이음가족, 동성가족, 입양가족, 다문화가족, 반려동물가족 등으로 분화되고 있다. 가족공동체의 분화와 벌초문화는 상당히 연관성이 깊다고 생각한다.

농산어촌과 묘 관리 대행 결연을

지금과 같은 매립장 벌초문화와 납골당 참배문화가 어색하다면 그 대안은 조상을 자연으로 보내드리는 것은 어떨까 한다. 수목장이 그 예이다. 대신 조상의 중요유품을 잘 보관하면서 기념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나아가 농산어촌의 자연묘지를 관리할 수 있는 지역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이다. 일본은 농촌관광을 통해 지역의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을 알려져 있다. 농촌소멸을 막아보려는 것이다. 농촌이 소멸하면 벌초문화도 소멸할 것으로 보인다. 농산어촌 현지에서 묘지를 관리해 주는 이음가족의 결연이 필요하다. 도시와 농산어촌의 연계인 것이다. 이것은 농촌지역의 소멸을 막고 국토를 균형 있게 이용하는 방안이기도 한다.

우리민족의 전통적 무형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는 벌초문화가 납골당으로 인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조상의 묘를 벌초하듯이 농사를 짓는 문화가 이제 납골당 문화처럼 수직농장, 식물공장처럼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하는 환상을 해봤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농업은 순환의 원리에 따라 경종과 축산의 순환, 자연자원간의 순환을 통해 영위해왔다. 이것을 더욱 심화한 것이 유기농업이다. 그런데 납골당처럼 식물공장과 같은 것이 대세인 것처럼 득세하면 어떻게 될까 괜한 걱정을 해봤다. 기우이기를 바란다.

대안은 농촌에 사람이 많이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귀농·귀촌의 활성화를 통해 젊은 층이 많이 내려오고, 이들이 농산촌의 자원인 산과 들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나아가 농산어촌에 조상 묘를 관리할 수 있는 대행 기구를 현지에서 결연 방식으로 만들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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