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천 (상지대학교 교수, 한국유기농업학회장)

 

AI, 구제역, 미국 광우병, 친환경 살충제 계란, DDT 계란, E형간염 소시지! 올해만 해도 이와 같은 일련의 파동들이 차례로 휩쓸고 지나갔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시장질서에 묻힌다. 해당농민과 일부식품업계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직격탄을 맞는다. 소비자도 마찬가지이다. 농민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듯하고,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다. 친환경 살충제 계란이라 해서 폐기된 너희들, 너희도 생명인데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몸 하나 마음껏 뒤척일 수 없는 케이지에서 항생제 섞지 않은 사료 먹었다는 이유로 ‘친환경’이라는 수식어를 부여받았지만 일반양계와 다를 바 없는 환경에서 고통스럽게 알을 생산하고 있다.

인증제 한계, 신뢰 한순간 무너져

인간의 이기심, 그것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죄라며 죄다. 인간탐욕과 시장이윤간의 협주곡인 것이다. 국가 관리시스템은 제도로서만 존재하고 현장에서는 시장논리만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AI, 구제역, 광우병, 살충제 계란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바로 공장식 축산과 그 업계의 커넥션이다. 생산성 향상으로 저가의 계란을 대량생산해야 한다. 왜? 소비자가 원하므로.

친환경농산물은 그 품질을 제3자 인증한다. 그 친환경농산물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신뢰’에 기반한 고가의 신뢰재(Credence Good)이다. 투입농자재와 농축산생산물에서 화학물질이 잔류하는지 여부를 검증하는 결과중심의 인증제도다. 어차피 제3자 인증은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를 다 해소하지 못하고 왜곡된 정보도 난립할 수 있다. 그래서 인증제도의 한계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면 친환경농업 전체의 신뢰가 한 순간에 폭락한다. 지난 10년간 경제침체, 보수화, 환경무관심 경향이 있어서 친환경농업이 침체됐는데, 지금은 호전되는 분위기이다. 문제는 친환경농업 내부의 어느 부문에서 언제 어떻게 또 터져 나올지 모른다는 점이다. 우발적이든 인위적이든 말이다.

그렇다면 친환경농산물 신뢰의 지속성을 위한 가치지표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해관계 주체들의 주요 관심사를 살펴보자. 생산자는 소득, 정부는 생산 확대, 기업은 이윤, 협동조합은 상생, 소비자는 가족 건강(안전)일 것이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환경’이라고 하는 주체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모든 주체들이 환경을 뒤에 내세우고 있다. 즉, 환경은 중요한데 생산자의 소득보다는 후순위이고, 환경을 홍보수단으로 활용하지만 이윤이 우선이고, 일단 가족 건강이 환경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환경은 필요하나 나와 직접 관계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것은 인지상정이니 이해할 수 있다. 물, 토양, 공기, 기후, 생물다양성 등이 환경과 농업생태계의 주요 요소들이다. 환경보전 없이 지속가능한 농업은 없다. 각 주체들은 그러한 가치기준을 가지고 시장의 경쟁체제에서 만난다. 그러니 협동조합 간 협동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생협 조차도 마치 일반 판매점 경쟁하듯 해야 하는 실정이다.

생산 확대, 소득, 가족 건강, 이윤, 상생, 환경 등은 서로 상충된 개념이다. 즉, 각 주체들이 앞에 나열된 가치들을 고수한다면 친환경농업의 목적과 가치는 달성되기 어렵다. 물론 각 조직별로 지향하는 전략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원칙과 방향을 통일하면 국민들이 이해하기 쉽고 공감대 형성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친환경농업 신뢰가치는 ‘환경’

어쨌거나 친환경농업 각 이해관계자들이 생각하는 신뢰 가치의 교집합은 환경이다. 공동관심사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다. 인간이 환경을 중시한다는 것은 이타적인 사고이다. 반대로 내 가족의 건강을 우선시하는 것은 이기적 사고이다. 이기적 사고가 항상 자신에게 이로울까? 예를 들어보자. 소비자들이 환경을 중시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면, 생산자는 환경을 생각해서 닭에게 환경에 해를 주는 살충제를 뿌릴 생각을 안 할 것이다. 관계기관의 관리도 엄격해 진다. 그러면 친환경 살충제 계란은 안 나오게 될 것이다. 소비자가 환경을 중시한 만큼 환경은 소비자에게 건강으로 보상을 할 것이다. 나아가 정부는 직접지불금으로 생산자를 보상할 것이고, 품질이 좋아진 친환경 계란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져 유통도 활발해지게 될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환경이라는 주제를 통해 상생 교류도 더욱 활발해지고 신뢰도 깊어질 것이다. 정부가 이러한 가치사슬을 적극 홍보하면 친환경농업의 가치가 전반적으로 올라가게 된다. 결국 환경 중시 태도가 환경은 물론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이롭게 한다. 이것이 선순환이다. 각 이해관계자들의 이타적 사고가 곧 선순환의 원동력이 되고 모두에게 더 큰 이익을 돌려주는 것이다. 이것이 친환경농업이 지향해야할 순환의 원칙이고 상생의 원리이다. 친환경농업에서 나아가 유기농업으로 단계를 높일 수 있다. 반대로 최근 살충제 계란 파동은 바로 그러한 악순환의 사례를 하나 보여 준 것이다. 과거 복숭아밭이었던 곳에다 동물복지 양계장을 일구었는데, 그 밭 토양에 지금까지 DDT가 잔류해서 계란이 오염이 됐다면, 과거에 복숭아는 도대체 어떻게 되었을까?

이제 정부, 생산자, 유통부문, 소비자가 친환경농산물 신뢰의 가치 지표를 환경에 두기로 합의하고 그것을 공동으로 선언해야 한다. 그래야 농업과 국민, 현재와 미래간의 관계 설정이 가능하다. 정부가 친환경농업을 지원할 때도, 국민 세금이 그 만큼의 사회적 가치를 위해 사용돼야 하는 명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몇 농민의 소득, 소비자 몇몇 가족의 건강, 몇몇 유통기업의 이윤을 위해 직불제 지원을 늘리겠다면 공감을 얻기 어렵다.

사회적 가치 국민 공감대 형성

이탈리아의 모데나, 볼로냐 등의 지역에서 세계적인 명품 유기농식품을 생산하는 농민들은 자기지역마다 협동조합을 만들고, 그 협동조합들이 연합체를 형성해 공동체를 형성한다. 여기서 국가인증기준보다 더 강화된 자체 ‘지속가능성 인증기준’ 만들어 농민을 교육하고, 인증을 하며, 홍보를 한다. 이를 통해 명품을 만들어 6차산업화도 하고 있다. 탄소발자국, 물발자국, 생물다양성 관리가 자체 인증의 핵심 요소이며, 지역 공동체와의 연계 협력도 강화한다. 결과보다는 과정과 환경 중심의 인증제 운영을 통해 유기농식품의 신뢰를 지속시킨다.

한국친환경농업협회 등 농민단체가 활동하고 있고, 생협전국연합회 결성을 추진 중이다. 이들이 주도적으로 환경가치 공동선언운동을 이끌었으면 좋겠다. 생산자와 유통부문과 정부, 학계, 소비자가 한목소리로 친환경농업의 신뢰 가치는 ‘환경’이라고 선언하고 실천할 때 국민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과 소득과 생산 확대는 덤으로 따라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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