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란 젠더 & 공동체 대표

 

농촌 현장을 가보면 늘 걱정거리가 있다. 날씨가 가물어서 걱정, 비가 많이 와서 걱정. 흉년이어서 걱정, 풍년이어서 걱정. 이럴 땐 돌아가신 정광훈 전국농민회 의장님의 개사곡이 생각난다. 쌀값을 올리면 보리값 걱정, 깨값을 올리면 고춧값 걱정...어쩌면 걱정농사가 농민들의 삶인지 모르겠다.

나주에서 배농사를 짓는 후배의 SNS에는 날씨가 가물어서 흉년농사 걱정을 했더니만 요즘은 비가 폭우로 쏟아져서 낙과 걱정을 하고 있는 글이 올라온다. 비가 안 올 땐 모양이나 때깔이 곱지 않아서 걱정하다가 요즘은 비오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 그나마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주기만 해도 다행이다 싶어 한다. 이래서 농민들은 자신보다, 자신의 자식보다 과일나무 한그루 벼 한포기에 더 깊은 애정을 쏟고 산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실감난다.

얼마 전 경북의 여성농민들 모임을 갔다. 여성농업인 관련 정책들이 많지만 심지어 여성농업인 간부들 조차도 그것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각 부서에 흩어져서 정책이 추진되는 것이 대부분이고, 지방이양 사업으로 지역별로 정책이 추진되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정책들이 수요자의 직접 신청에 근거한 경우가 많지만 정작 정보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여성농업인들에게 이제 더 중요한 정책은 정책을 만들고 확장하는 것보다 정보전달 체계를 확충하고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정책에서 성별의 관련성을 제대로 반영하는 성평등 농업정책이 시급하게 되었다.

새정부 성평등위원회 구성 선언

문재인 정부는 성평등 정책의 확산을 위해서 성평등위원회를 구성한다고 선언했다. 또한 양성평등기본법에 의하면 여성들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각종 위원회 구성 시 성비를 특정성이 40%가 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농업농민관련 법이나 제도 정책은 어떠할까? 과연 성평등한 농업정책이 이루어지고 있을까? 간단히 진단해 봐도 답은 명확하다. 성평등한 농업정책이 추진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농림부 각종 위원회의 성비는 얼마나 될까? 각 지자체의 농업관련 위원회 여성비율은 얼마나 될까? 그 중에서 특히 여성농업인의 위원회 참여비율은 얼마나 될까? 농업정책에서 여성의 대표성을 생각하면서 왜 마을의 이장은 대부분 남성인지? 마을지도자는 부녀회장을 제외하고 왜 대부분 남성인지? 왜 농협의 대의원은 거의 남성인지? 농기계임대관련 사업위원회의 여성위원 비율은 왜 1명에 불과한지...농업정책에서 여성의 대표성이 제대로 확보되고 있는 곳이 있는지를 찾아보고 또 찾아본다. 그러나 여전히 성평등하지 못한 대표성만을 확인할 뿐이다.

이러한 현실은 여성농업인의 삶속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남편이 동의해야만 농가경영체의 공동경영주가 되는 현실, 평생을 일을 해도 자기 소유의 땅마지기 조차 제대로 소유할 수 없는 현실(여성농업인 소유 평균 면적은 800평에 불과)이 성평등 농업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보여준다. 어떤 여성농업인은 공동경영주 등록하려고 기관을 방문했는데 품질관리원 직원이 공동경영주 제도로 제대로 모른다고 푸념하신다. 담당자도 제대로 모르고 현장 여성농업인도 제대로 모르는 여성농업인 정책이 무슨 유용성이 있을까?

여성농업인 노동가치 보장돼야

성평등한 농업농촌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얼마 전 고속도로 전광판에 쓰여진 글이 생각난다. <아빠, 졸리면 졸음쉼터래요> 말도 안 되는 글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수많은 여성들과 아빠가 아닌 사람들은? 졸려도 쉬지 말아야 하나? 상징적인 말이지만 순간 도로공사의 사고가 얼마나 남성중심적인 사고방식인지 절감했다. <운전습관 아빠로부터 배운다>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아빠차를 타고 다닐 수 있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이러한 구호들은 여성들이 수정을 요구해서 모두 바뀌었다. <졸리면 제발 쉬어가세요, 당신의 운전습관 아이들이 보고 있다> 이렇게 말이다. 7월은 양성평등주간이다. 모든 지자체에서 앞다투어 양성평등 정책실현을 소리 높여 외친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성평등한 농업정책을 실현한다거나 하라는 구호를 발견할 수 없다. 여성농업인 단체조차도 이러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지역여성들 위한 성평등 정책을

새정부의 새로운 농정의 목표는 성평등한 농정이어야 한다. 여성농업인들의 노동가치가 보장되고 농촌에서 일-가정 양립이 실현되고, 여성농업인들이 지역사회 참여와 농업노동이 아닌 농업경영의 주인으로서 참여를 확대하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농정의 방향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농업관련 담당공무원, 유관기관(농협을 포함하여 농어촌공사 등)을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을 의무화하고 농업정책 자금 대상인 농민들, 각종 영농교육 과정에 성평등 교육을 필수강좌로 설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여성농업인 단체들도 여성농업인으로서 이해와 욕구를 실현할 성평등한 농업정책에 대한 스스로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여성농업인 관련 정책 가이드북을 제시하여 모든 여성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정책을 인지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전달 방식이 변화되어야 한다.

바뀐 문재인 정부에서는 성평등 정책의 중요성을 인지한다면 도시여성 중심정책이 아닌 지역여성들을 위한 성평등 정책, 기업만이 아닌 농업의 성평등 정책까지 확장되기를 희망한다. 또한 여성농업인 단체들이 내년 양성평등 주간에는 성평등한 농업정책에 대한 여성농업인들의 활동과 목소리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