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란 젠더&공동체 대표

한국말로 아침 인사의 보통명사는 “밤새 안녕하셨습니까?”이다. 밤새 안녕을 물을 정도로 격동의 한국사를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농촌지역에는 밤새 안녕하셨는지를 물어야 할 계절이 왔다. 일교차가 심해지고 기압의 변동이 많으면 노인들의 체력은 급속히 저하된다. 더욱이 뜨거운 뙤약볕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일사병으로 운명을 달리하는 노령의 농민들이 속출한다. 올해도 뜨거울 것이란 일기예보가 벌써부터 걱정을 자아내게 만든다. 

바쁜 농사철 가사노동 부담 덜어

가뭄 끝에 단비가 조금 쏟아졌지만 농심은 여전히 타들어가고, 쩍~쩍 갈라진 논밭만큼이나 농민들 가슴도 애가 타고 있다. 농사에서 물은 햇빛만큼이나 핵심적인 요인이다. 그래서 벌써부터 흉년수확을 예상할 수밖에 없다. 여성농업인들을 만나면 감자가 밑이 안들었느니, 모종이 타들어가느니 걱정이 태산이다. 

들판의 걱정거리와 달리 요즘 여성농업인들의 더 큰 걱정은 현 정부의 농업정책에서 여성농업인들과 관련한 정책이 적다는 것이다. 며칠 전 여성농업인단체에서 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현 정부의 여성농업인 정책에 대해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에 여성농업인 정책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무엇이 그들을 다급하게 길거리에 서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여성농업인 정책의 부재 때문일 것이다. 대표적인 정책요구는 여성농업인 전담부서 설치와 여성농업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복지정책의 실시이다.  

농번기 공동급식은 농번기 시기 40일 동안(상하반기) 여성농업인들의 가사노동 부담을 덜어주고, 농사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점심식사를 공동으로 제공하는 사업이다. 예산도 많지 않다.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급식비 200만원에 인건비 1일 4만원(160만원)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농사철에는 부지깽이라도 거든다는 말이 있듯이 손 하나가 귀하다. 바쁜 농사철에는 일손하나가 귀하기 때문에 홀로 일하시는 분들은 식사가 부실하기 쉽다. 가장 잘 먹고 건강을 챙겨야할 시기에 오히려 영양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아이들이나 노인들에 대한 식사 역시 챙기기가 어렵다. 멀리 떨어진 논밭에서 아침식사, 점심식사를 위해서 집으로 돌아온 만큼 농사일의 집중도가 떨어지게 된다. 농민들의 건강, 방치되는 돌봄대상자, 농사일에 대한 노동력 집중, 여성농업인들의 가사노동 부담 경감 등 농번기 시기 공동급식의 효과는 일석사조의 효과가 있다. 그런데도 이런 중요한 정책이 전남도의 경우 1000여개 마을에서, 충남도의 경우는 150여개 마을, 전북도는 300여개의 마을, 강원도와 세종시는 어느 곳도 시행하지 않는 등 지역적 편차가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성농업인 대상 수요조사 필수

지차체별로 정책시행에서 겪는 어려움도 다양하다. 어떤 지자체의 경우 왜 시행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수요조사를 했는데 신청이 없다고 얘기하기조차 한다. 이에 대해 여성농업인들은 도대체 누구에게 수요조사를 했느냐는 항변을 한다. 전남도처럼 시행하는 대상 마을이 많은 곳은 신청마을은 많지만 모두 수용할 수 없는 예산의 한계를 호소하기도 한다. 이렇듯 지역마다 예산을 이유로 수요조사를 이유로 공동급식은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 그나마 여성농업인들이 거는 실낱같은 희망은 현 정부가 사회적 경제의 중요성, 농업의 가치가 제고되는 정책을 통한 지속가능한 농업을 얘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번기 공동급식 정책과제의 중요성과 추진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사회적 경제나 마을공동체의 다양한 활동과 연계하여 추진이 가능하다. 또한 공동급식에 대한 수요는 여성농업인들에게 물어야 한다. 이 정책의 중요성에 대해서 인식이 적은 이장들에게만 물으면 안 된다. 농번기 공동급식은 단순히 여성농업인들의 가사노동 부담의 해소를 넘어서 농번기 시기 농민들의 건강, 바쁜 농사로 인해 돌봄에서 방치되는 노인과 어린이들의 식사, 함께하는 밥상을 통한 마을공동체의 강화 등 일석사조의 효과가 있는 정책이다. 이러한 정책이 사회적 경제(마을공동체기업 및 지역급식관련 조직)와 연계한다면 또 하나의 정책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정책이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핵심적인 것은 수요대상자들의 욕구를 반영하는 일이다. 농번기시기 밭일, 들일, 가사일까지 전담하는 여성농업인들의 의견을 물어야 할 것이다. 여성농업인들이 문재인 대통령께 전달하는 정책요구의 핵심이 여성농업인 전담부서를 설치해 달라는 요구는 여성농업인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성농업인의 욕구를 담을 수 있는 정책추진체계의 부재로 인한 정책 소외 때문이다. 공동급식 사례는 이러한 결과를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건강 챙기고 공동체 회복 효과까지

여성농업인들이 체감하는 정책, 농업의 지속가능성이 실현되는 정책, 농촌 여성들의 일-가정이 양립되는 정책, 농사철 농업인들의 건강과 영양이 보호되는 정책, 노인과 아동의 돌봄이 실현되는 정책...지역간 정책격차가 해소되는 여성농업인 정책의 첫 출발로 농번기 공동급식의 정부정책 추진을 간절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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