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천시 월등면의 남균(60세)씨가 우박피해를 입은 복숭아밭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아직 녹지 않은 우박을 보고있다.

“원래는 오늘부터 매실을 딸 계획이었고, 올해는 병해충 없이 작황도 좋아 진짜 열심히 농사 지었는디. 이젠 다 끝낭당께.” 

우박 세례 속수무책…순천 월등 과수단지 폐허로
재해보험 안든 소규모 농가 많아 피해 고스란히
"복숭아·매실나무 등 뼈대만…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순천시 월등면에서 23년째 과수농사를 짓고 있는 남균(60세)씨는 복받치는 감정에 목이 매여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달 31일 19시 40분경 천둥과 함께 쏟아진 우박은 단 30분 만에 월등면의 과수단지를 폐허로 만들었다. 

먹구름이 몰려오자 오랜 가뭄을 해갈해줄 단비인줄로만 알았던 농민들은 날벼락 같은 우박 세례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깨끗하죠. 제가 수확해도 이렇게 깔끔하게는 못 따요.” 복숭아, 매실, 단감 등 마을 주산물이 심겨진 남 씨의 밭은 흔적만 찾을 수 있을 정도. 

과수나무는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열매는 90% 이상 낙과했고 나머지 열매도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 

“이건 백퍼센트라고 보면 돼요. 그나마 달려있는 것도 모양이 온전한 것이 없는디. 어찌 살까 생각하니 걱정이 앞서 눈물이 안나것소.” 

답답한 나머지 새벽부터 우박을 들고 면사무소로 찾아가는 농민들도 속출했다. 쑥대밭이 된 마을주민 대부분은 일손을 놓은 상황. 피해지역엔 수확에 접어든 매실농가들이 집중돼있어 안타까움을 더 했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내년, 그 후 농사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는데 있다.

우박으로 인한 꽃눈, 가지, 잎의 손상은 다음해 착과율과 수량도에 영향을 미친다. 심한 경우 나무가 고사돼 베어내고 새로 나무를 심어야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결국 정상적인 수확을 할 수 있을 만큼 재건하는데 짧게는 3~4년은 걸릴 것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앞으로 생활이 막막하요. 애들 학원도 보내야 되고 그동안 빚내서 농사짓고 있는데 빚만 떠 안게 생겼으니. 이제 은행에서 돈이라도 빌려 줄란지 모르것소.”

지난해 10ha 밭에서 1억3000만원의 조수익을 올린 남 씨는 우박피해로 단 하루만에 1억3000만원을 날린 셈이다. 

“동네 어른신들께 여쭤봐도 그동안 이런 재해는 없었답니다.” 과수농사 23년째인 베테랑 남 씨도 이번 피해는 처음이다. 

남 씨에 따르면 이 일대는 우박피해가 빈번한 지역이 아닌 탓에 재해보험 가입 농가는 극소수다. 특히 월등면은 농작물 재해보험을 가입하지 않은 소규모 과수농가가 많아 농민들이 이번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위기에 처했다.

다음날 오전 피해규모 조사에 들어간 월동면사무소 측은 “앞으로 2~3일 후면 정확한 피해규모가 나올 예정이지만 전체 과수의 80~90%가 피해를 입은 것 같다”고 밝혔다.

정임수 한농연전남도연합회 수석부회장은 “우박피해로 모든 과수가 초토화 된 것은 물론이고 월등면 농민들의 삶의 터전이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며 “농민들이 생업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정부 차원의 특별재난지역선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5월 31일부터 6월 1일까지 7개도 25개 시군에 국지적으로 우박피해 발생했으며, 농작물 피해면적은 8031ha로 파악됐다. 작물별로는 과수 4669ha, 채소 2540ha, 밭작물 380ha, 특용작물 442ha 등으로 집계(6월 2일 20시 기준)됐고, 정밀조사 결과에 따라 피해면적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순천=김종은 기자 kimje@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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