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에 이어 지난 19일 AI도 위기경보가 ‘경계’ 단계로 하향 조정되면서 지난해 11월부터 이어져 왔던 가축질병이 서서히 마무리 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5년 이내 3회 질병 발생 농가의 축산업 허가 취소 등 정부가 축산 농가에 대한 규제 강화를 골자로 한 구제역·AI 방역 개선대책을 최근 발표하면서 축산 농가들은 질병 발생에 대한 악몽에서 깨어날 틈도 없이 또 다시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

가금 농가들이 가장 먼저 서울 상경 집회를 개최하며 정부의 방역 개선 대책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지난겨울 구제역을 겪으면서 질병 발생의 원인 제공자로 내몰렸던 한우 농가들의 불만도 상당한 분위기다.

이에 한우 농가들의 대표 격인 김홍길 전국한우협회 회장을 만나, 지난 구제역 발생과 관련한 농가의 입장과 정부가 최근 발표한 방역 개선대책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한우농가 잘못된 백신접종
구제역 발생 원인 지목 억울
제대로된 검증 후 판단했어야

일부 아닌 전체 농가 대상 
공수의가 직접 백신 놓고 
정부는 무상공급 실시해야

이번대책 포함 '삼진아웃제' 
축산 농가에 심각한 문제 
철회 안되면 투쟁 나설 것


▲정부, 백신 검증 제대로 했나?=지난 구제역 발생 당시, 농림축산식품부를 통해 한우 농가들이 백신접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구제역 발생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많은 한우 농가들이 언론의 표적이 됐다. 김홍길 회장은 정부의 이러한 대응에 할 말이 많은 듯 보였다. 김 회장은 “농식품부가 농가에 유통되고 있는 구제역 백신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한 후 그런 판단을 했었는지 묻고 싶다”며 “유통 경로 문제, 유통 단계에서의 관리 소홀 등의 문제로 인해 농가가 제대로 접종을 했더라도 백신이 효능을 발휘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백신 유통과정에서 이상이 생겼을 수도 있는데도 한우 농가들이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거나 제대로 놓지 않은 것처럼 몰아붙이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것. 김홍길 회장은 “구제역 상황이 심각한 경우 정부가 운영하는 축산연구소에서도 구제역이 나오는데 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도 김 회장은 일부 백신 접종을 기피하는 농가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왜 백신 접종 기피현상이 나타나는지 그 내용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 김홍길 회장의 주문이다. 김 회장은 “유사산 등 백신접종으로 인한 실제 피해 사례가 많다”면서 “백신을 접종한 후에는 소에 따라 39℃에서 43℃까지 고열이 발생하는데, 임신한 소의 경우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구제역 발생 시 살처분 보상금에서 20%가 무조건 감액되기 때문에 그런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백신을 기피하는 농가는 없다”며 “시가 보상 등 정부가 백신 접종으로 인한 피해 보상 대책을 마련한다면 일부 백신 기피 문제도 해결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바른 구제역 백신 정책 방향은=한우 농가들이 구제역 접종을 제대로 했는지의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자, 학계의 수의전문가들 사이에선 수의사조차 쉽지 않은 구제역 백신 접종을 농가에 맡겨온 것이 오히려 정부의 무책임한 처사라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김홍길 회장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건넸다. 김홍길 회장은 “구제역 백신 접종은 오랫동안 한우를 사육해 온 사람도 어려운 작업”이라며 “농가에 구제역 백신 접종에 대한 잘못을 전가하기 이전에 한우 50두 미만 사육 농가처럼 전체 한우 농가를 대상으로 공수의들이 직접 백신을 접종하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백신 접종은 겨울철이 시작되기 이전인 10월에 마무리해야 하고, 전체 사육두수에 대한 백신도 정부 차원의 무상공급을 주장했다.

▲삼진 아웃제 등에 철저히 대응할 것=김홍길 회장은 최근 정부가 발표한 AI·구제역 방역 개선대책에 대해서도 답답한 마음을 전했다. 정부의 방역 개선대책은 농가에 방역 및 질병 발생 책임을 떠넘기고 규제만 강화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라는 것. 김 회장은 “계속 거론 됐던 방역세 도입이 빠진 것은 다행이지만 방역세만이 아니라 방역에 소요되는 재원을 농가에 부과하는 어떠한 움직임도 절대 용납하거나 수용할 수 없다”며 “이는 회장직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방역 개선대책에 포함된 내용 중에서는 5년 이내 3회 질병 발생 농가에 대한 축산업 허가 취소, 즉 흔히 말하는 ‘삼진아웃제’가 한우 농가뿐만 아니라 전체 축산 농가에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김홍길 회장은 “정부도 어디서 질병 바이러스가 유입됐는지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하면서 농가에 질병 발생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면서 “농식품부에 삼진아웃제 시행, 농가에 대한 방역 부담금 부과 검토 계획 등의 철회를 요구하고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언급했다.

김홍길 회장은 정부가 이번 방역 개선대책에서 농가에 부여하는 인센티브로 명시한 시·군별 최초 질병발생 신고 농장에 대한 살처금 보상금 100% 지급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갔다. 김 회장은 “시·군 별 최초 질병발생 신고 농장에는 살처분 보상금을 감액 없이 100% 지급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인센티브가 아니라 당연히 그렇게 했어야 하는 것”이라며 “보상금 감액이 농가들의 질병 발생 신고를 미루게 해 질병 확산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홍길 회장은 이밖에도 “가축 매몰지를 농가에서 선정해 확보하라는 것도 문제가 있다”면서 “매몰 방식에 문제가 있다면 정부가 긴급재난자금을 투입해 렌더링 처리(열처리)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가도 방역에 더 관심 가져야=김홍길 회장은 안전한 축산물을 생산해야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고 인정받을 수 있는 만큼 한우 농가에도 가축 질병에 대한 보다 철저한 방역을 당부했다. 김 회장은 “한우 농가들도 구제역뿐만 아니라 결핵, 브루셀라 등이 발생되지 않도록 조금 더 치밀하게 농장 방역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그는 “정부는 농가에 질병 발생 책임을 돌리고 규제만 할 것이 아니라 방역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정수 기자 wooj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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