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실장·선임기자

 

해마다 4월말이면 충남 예산군 덕산면 충의사 일대는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붐빈다. 4월29일~30일 사이에 ‘매헌 윤봉길 평화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예산은 윤봉길 의사가 태어나 자라고, 상해 의거를 위해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인 23살까지 농민운동과 함께 자주독립의 꿈을 키운 곳이다.

올해로 44회째를 맞는 매헌 윤봉길 평화축제는 일본 제국주의에 타격을 입히고 25살의 나이로 순국한 윤봉길 의사의 상해 의거 기념일인 4월29일을 맞아 (사)매헌윤봉길월진회(회장 이우재)가 주최하는 행사다. 매헌윤봉길월진회와 한국농어민신문은 독립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 농민운동가였던 윤 의사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올해 6회째 ‘매헌 농민상’ 시상식을 갖는다.

매헌은 11살 때 덕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다가 3.1 독립운동에 자극받아 “일본사람이 되라는 학교에는 가지 않겠다”며 1년 만에 자퇴한 뒤 서당에서 19살까지 한학을 배웠다. 서당에 다니던 그는 15살에 결혼하면서 동학혁명에 가담했던 장인으로부터 동학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천도교 기관지인 ‘개벽’ 잡지에서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민족의식과 저항정신을 깨우쳤다고 한다.

매헌의 농촌운동은 농민 스스로 깨우쳐 농민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고 자주독립으로 나아가려는 농민운동이자 협동조합 운동이었다. 농민을 중심에 놓고 세상을 바꾸려는 사상은 그가 야학의 교재로 만든 ‘농민독본’으로 집약된다. 그는 농민독본에서 자주정신과 평등사상을 설파하고 농민도 양반과 같이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인생은 자유의 세상을 찾는다. 사람에게는 천부의 자유가 있다. 자유의 세상은 우리가 찾는다. 개인의 자유는 민중의 자유에서 나아진다”는 것이다.

매헌은 농민독본 3권 ‘농민의 앞길’ 편에서 ‘농민과 공동정신’이란 제목으로 협동정신을 별도의 장으로 다뤘다. ‘독립적 정신이 조선을 살리는 원동력인 것과 같이 농민의 공동정신이 또한 조선을 살리는 긴요한 하나입니다. 남 달리 가진 힘이 미약한 조선의 농민으로서 무엇보다 경우와 이해를 같이 하는 사람끼리 일치공동의 필요를 절실히 느낍니다.’

그가 1927년에 조직한 목계농민회는 두레정신을 바탕으로 농민운동을 펼쳤다. 첫째는 농가소득증대를 위해 증산과 함께 ‘수내제도’라는 독특한 방식을 통해 축산을 장려한 일이다. 수내제도란 돈이 없는 농민들에게 돼지를 사 주고 기르게 한 뒤 새끼를 낳으면 절반은 기른 농민에게 주고, 절반은 또 다른 농민에게 한 마리 씩 주는 제도였다. 둘째는 마을의 공동구매조합을 만든 일이다. 이는 농산물을 공동판매하여 비싼 값을 받고, 일용품이나 비료 등을 공동으로 싸게 구매하자는 것이었다. 목계농민회의 농민운동은 우리나라 근대 농업협동조합운동의 효시로 평가할 수 있다. (자유의 불꽃을 목숨으로 피운 윤봉길, 김상기, 2013년)

연로한 부모를 둔 사람들이 매달 또는 계절마다 회비를 내어 애경사에 대비한 ‘위친계’도 협동정신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매헌은 1929년 4월23일, 그동안 운동의 종합체인 ‘월진회’를 창립하고 자주독립운동과 농민운동, 협동조합 운동을 한 단계 발전시킨다.

윤봉길 의사가 독립투사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가 협동조합 운동을 통해 농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꿈꾼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다. 그가 지역에서 조직한 협동조합 운동이야 말로 농민조합원 본위의 올바른 농협의 원형이다.

서울 서대문의 농협중앙회에 가면 그가 쓴 농민독본의 유명한 구절이 돌비석에 새겨져 있다. ‘농민은 세상 인류의 생명 창고를 그 손에 잡고 있습니다. 우리 조선이 돌연히 상공업 나라로 변하여 하루 아침에 농업은 그 자취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이 변치 못할 생명 창고의 열쇠는 의연히 지구상 어느 나라의 농민이 잡고 있을 것은 사실입니다.’

많은 이들이 비석에 새겨진 문구로 농민의 중요성을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매헌이 꿈꾸던 농협과 지금의 농협은 같은 모습이 아니다. 언제쯤 농협이 농민을 위한 농민의 협동조합이라는, 아주 당연한 평판을 듣는 날이 올 수 있을까. 4월의 하늘만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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