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효중 강원대학교 농업자원경제학과 교수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된 ‘협치(governance)’라는 용어와 의미는 3차례의 산업혁명까지 거의 사장되고 있었던 용어이다. 그러나 경제 불황 및 침체기를 거치면서 회사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로서 선진국에서 사용되어 성공적인 결과를 이루어낸 후에 난제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협치의 의미를 적용하기 시작하여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내고 있다. 협치는 ‘힘을 합쳐 잘 다스려 나간다라는 의미로서 무언가를 결정하기에 앞서 협의와 공감대 조성을 선행하겠다’라고 사전적으로 정의되고 있다. 즉,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모든 의사결정과 그 과정에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그 권한과 책임 및 의무의 크기에 관계없이 모두가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갈등·분쟁 사라지는 ‘협치 묘미’

언뜻 듣기에는 모두가 똑같이 참여하기에 모두가 뱃사공이 되는 모습이 되어서 배가 산으로 갈 것 같은 생각을 들게 하지만, 우리 농업과 농촌에 산재한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을 내 주민들 간에, 마을 간에, 마을과 지자체 간에, 지자체 간에, 지자체와 중앙정부 간에…. 모든 단위에서 협치의 원리를 적용해야 할 때라고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은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필사적으로 경주하고 있다. 그러나 항상 들려오는 얘기는 ‘힘들다’라는 것이다. 수입농산물 때문에 힘들다, 농업노동력을 구하기가 힘들다, 투입재료비가 비싸서 힘들다, 젊은이가 없고 노인들만 있어서 힘들다... 등등 온통 힘들고 어려운 현실 때문에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농업을 포기하고 싶고 농촌을 떠나고 싶지만, 그러면 농사는 누가 짓고 농업과 농촌은 누가 지키냐고 한탄하면서도 의무와 책임감으로 똘똘 뭉쳐있는 농업인들이다. 참으로 멋지고 존경받아 마땅한, 우리 농업인들이다. 이러한 분들은 당연히 훌륭한 리더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농업과 농촌은 보스의 모습에 더 익숙해 있다. 보스와 리더는 같은 것 같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확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보스와 리더는 남들보다 앞서 있거나 위에 있다는 점에서 일견 같은 것 같다. 그러나 목표가 정해지고 어렵고 힘든 순간이 올 경우에 보스는 뒤에 남고 남보고만 가라고 명령하는 반면에, 리더는 본인과 함께 같이 어렵고 힘든 일들을 극복하자고 하면서 같이 간다. 하지만 좋은 자리나 좋은 일이 생기면 보스는 본인이 우두머리이기에 먼저 가야 한다고 하면서 에둘러 먼저 가서 그 과실을 맛보고 소유하는 반면에, 리더는 나보다는 같이 하는 사람들을 우선시 한다. 이렇게 보스와 협치의 의미는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보스와 리더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보스는 ‘자기’ 중심이고 리더는 ‘우리’ 중심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 농업인들은 지금의 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모두 훌륭한 리더로서 우리중심의 생각과 실천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분들이다. 

마을·지역주도 내생적 발전 가능

협치는 사람이 기본이다. 기본인 사람들이 생각과 행동이 올바르지 못하면 협치는 안 하니만 못하다. 그러기에 우리의 농업인들은 협치를 할 기본적인 요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 문제는 무엇인가? 제도적 뒷받침이다. 그런데 이는 아직 요원한 것 같다. 대표적인 예로서 2010년부터 설립을 추진해오고 있는 농어업회의소라는 민간농정기구에 대한 설립 및 운영지원책에 대한 관련법의 국회통과가 아직도 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각 기초지자체단위의 참여가 저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협치로 갈 수 있는 중간과정이 막혀 있으니 아무리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할지라도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혹자는 우리의 농업과 농촌이 협치의 도입을 논하기에는 예산문제, 농민단체 간 이견 등등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이르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식이다. 보스의 마음이다. 협치가 성공적으로 실현되면 마을주도형, 지역주도형 내생적 발전이 가능해진다. 그러기에 보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협치가 도입되면 보스는 사라지고 리더만이 존재하게 되어 본인들의 설 곳이 없어지기 때문에 협치의 도입을 꺼려하는 것은 아닐는지? 선진국의 잘사는 농촌마을들은 어김없이 협치를 실천하면서 마을주도형 내생적 발전을 구현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의 농업과 농촌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잘 살기 위해 도입하려는 협치라는 큰 목표에 동의한다면, 작은 문제들은 큰 어려움 없이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농어업회의소법’ 국회 통과 시급

협치의 정신이 도입되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의 하나인 갈등과 분쟁 또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협치의 묘미이다.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모든 것이 불가능해질 것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보스로서가 아니라 리더의 마음으로서 이제까지의 우리 농업과 농촌 모습을 그려보면 ‘협치’가 절실히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농업과 농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많은 모래가 하나가 되어 돌을 이루었다는 ‘만사일암(萬沙一岩)’을 되새기면서 우리의 농업과 농촌에 협치의 정신이 도입되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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