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농업계에서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이 화두다. 때아닌 경자유전의 발원지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다. 개헌특위가 지난달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등 농민단체에게 헌법 개정사항이라면서 ‘경자유전의 원칙’ 삭제에 대한 의견을 조회하면서부터 경자유전이 쟁점으로 부각됐다. 이날부터 농민단체를 비롯해 학계, 시민사회까지 경자유전의 원칙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기업이 농지 잠식…난개발에 임대차 보편화 불보듯
식량안보 위협, 농업에 대한 특수성 포기하자는 의미

경자유전 원칙 준수, 헌법에 농업 다원적 기능 명시를
“농업·농촌 지속가능성 담보, 농가소득 보장해야” 여론 


#경자유전, 식량안보의 필수

학계에서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삭제하는 데 반대입장을 냈다. 식량안보의 기본이 농지이고, 이 농지는 헌법에 보장된 경자유전의 원칙을 통해 지켜왔다는 이유 때문이다.

김태연 단국대 교수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사라진다면, 농지를 농사짓는 데 이용하는 원칙들이 함께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식량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는 “농업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수입하면 되지’, ‘농촌에서 못살면 도시로 나오면 되지’ 식으로 해선 안된다”며 “농민이 농지를 소유해야만 농가경영이 안정되고, 10년 앞을 내다보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여건이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장 교수는 “국가적으로 농지를 보전해야 하고, 이 때문에 경자유전의 원칙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양승룡 고려대 교수도 “농지는 식량안보의 기반으로써 농지는 한번 망가지면 회복하는데 엄청난 비용이 든다”면서 경자유전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경자유전 원칙 삭제 반대, 왜?

양 교수의 말처럼 경자유전의 원칙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농지축소’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양승룡 교수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대기업 자본의 농업 진출을 억제하는 제어장치로서의 역할을 해왔는데, 그것이 없으면 대기업이 농지를 잠식하는 등 농업·농촌부문의 난개발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장상환 교수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삭제된다면, 난개발은 물론, 임대차가 보편화되고 농지를 마음대로 소유하게 될 것”이라며 “농업의 특수한 성격 때문에 농지법이 존재하고, 그 핵심이 경자유전인데, 이것이 무너진다면 농업에 대한 특수성을 포기하자는 것이고, 결국 농지법도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다”고 우려했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도 경자유전의 원칙을 유지해야 하는 또다른 이유. 여기에 대해서는 시민사회의 주장이 강했다. 최준호 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은 “농업이 식량을 생산하는 것 뿐만 아니라 환경을 보호하는 등 다원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데, 그 기능들은 그나마 경자유전의 원칙이 헌법에 명시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국장은 “스위스는 헌법에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넣었고, 유엔에서도 이를 강조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나라도 경자유전이란 헌법적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헌특위 자문위원인 정성헌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도 “‘지속가능한 사회’를 헌법 개정의 큰 가치로 두고, 생명자원의 공공성을 유지하고 향상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뜻을 문서에 담아 개헌특위에 전할 계획”이라며 “1987년 헌법 개정과정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는데, 지금까지 헌법 개정논의에서 이 같은 내용은 처음 나왔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식량까지 포함한 큰 범주에서 의견을 제시해야 경자유전의 원칙도 함께 지켜질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임정빈 서울대 교수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 그에 대한 보상을 아예 헌법에 명문화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농업·농촌이 다원적 기능과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국가가 농업·농촌에 지원을 해야 한다는 철학이 헌법에 제시돼 있어야 하고, 이는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경자유전의 원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농가의 ‘소득’이 보장돼야 한다는 점도 언급됐다. 장상환 교수는 “농업을 중시하고, 농업을 통해서 생활할 수 없기 때문에 경자유전이란 원칙이 흐트러진 것”이라며 “국가대계를 위해서 경자유전을 유지해야 하고, 농민들도 여기에 동의하게 하려면 직불제 강화 등을 통해 농업소득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조영규 기자 choyk@agrinet.co.kr

 

‘농업법 전문가’ 사동천 홍익대 법학과 교수
“농지 보전은 국가 책무…경자유전 삭제 막아야”

경자유전 원칙에 반하는 현행 농지법 개정
비농민의 상속농지 처분 규정 신설 급선무
주말농장 명목 비농민의 농지 소유도 문제

 

"87년 헌법에 경자유전의 원칙이 들어간 것은 무너지는 농지를 지키려는 강한 사회적 합의의 결과입니다.” 사동천 홍익대 법학과 교수는 개헌 논의에서 ‘경자유전 원칙’의 삭제가 거론되는 것에 대해 ‘막아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농지를 생산수단이 아니라 투기수단으로 보는 세태를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경자유전의 원칙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했다. 민법, 국제거래법 전공인 사동천 교수는 고 황적인 서울대 교수를 잇는 몇 안 되는 한국의 농업법 전문가이다.

그는 농지의 가치와 관련, “농지는 국민의 식량을 공급하는 수단으로 공공재적 성격을 갖고 있다”며 “농산물 무역장벽이 펼쳐질 경우, 중국·인도 등에서 대량 수요층이 발생할 경우, 긴급히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할 것에 대비해 농지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절대적으로 보존해야 할 대상”이라고 못 박았다. 나아가 “농지는 단순히 식량생산의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관보전, 환경보전, 재해예방 등 국민경제 전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농지의 보전은 국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헌법상 경자유전 원칙을 삭제하려는데 대해서는 “농지는 토지공개념(공공의 이익을 위해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규제하는 것)이 적용되는 영역이자 공유재산, 공공의 재산”이라며 “삭제에 반대 한다”고 했다. “농지는 원래 농업의 생산요소로서 농민이 농업생산을 통해 소득을 올리는 것이지, 생산수단인 농지를 기업이나 비농민이 투기수단으로 바라보는 한, 경자유전 원칙의 폐기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헌법상 경자유전의 원칙을 유지하면서, “농지법 등 법령의 개정을 통해 실질적인 경자유전의 원칙이 준수되도록 보완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경자유전 원칙을 삭제할 경우 “농지는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대기업의 농지투기가 우려된다”고 그는 말했다. 뿐만 아니라 “농지의 종합적인 관리가 불가능해지고 농산물 생산 및 수급조정기능이 와해되면서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을 저해하며, 농민들이 지주와 기업 등의 하청업체로 전락하면서 삶의 질이 악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농민들은 금액이 적더라도 소득만 있으면 농사를 짓지만,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에 농지에 투자했다가 이후 그들이 떠나면 농지제도의 근간이 다 무너진다는 것이다. 기업활동을 위한 토지가 필요하면 산업단지나 농공단지가 얼마든지 있는데, 왜 농지를 풀어주느냐고 그는 반문한다.

그는 경자유전의 원칙에 반하는 현행 농지법 등 농지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1948년 제헌헌법은 농지분배에만 관심을 두었고, 이후 농지가 분할되는 것을 제한하는 후속 입법조치가 없었다. 특히 상속으로 인한 비농민의 농지소유와 농지의 세분화는 농업발전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상속으로 농지가 조각나면서 농지의 규모화를 저해하고, 농지임대에 대한 통제장치 미비로 임차인들의 장기 영농계획을 저해한다”는 것. 농지를 쪼개서 상속받은 비농민이나, 그것을 임차해서 농사짓는 임차농이나 모두 그 농지를 생산성 높은 농지로 만들기 위해 추가로 노력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비농민인 상속인에게 농지소유를 허용하는 현 제도를 이대로 둔다면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70%의 농지가 비농민소유로 전락한다고 그는 우려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경자유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비농민의 상속 농지를 처분하는 규정이 농지법에 신설돼야 한다는 견해다. 가령 이농 후 5년~10년 경과시 처분 명령을 내리는 방안이다. 농지은행제도 역시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말·체험영농이란 명목으로 비농민에게 소규모 농지를 소유 할 수 있도록 한 제도 역시 농업발전을 저해하는 제도라고 지적한다. 그는 “어떤 지역은 우량농지 한 가운데 주말농장을 만들어 도시민들이 쪼개서 소유하니까 농지 세분화라는 문제가 생긴다”며 “상속, 주말농장 등으로 인한 농지세분화는 기계화를 어렵게 하고, 생산단가를 높이는 원인”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만 헌법에 경자유전을 명시하고 있다는 주장과 관련, 사 교수는 “각국은 헌법이든 법률이든 경자유전의 원칙을 규정하고 실현되도록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며 “농지보전 역시 관련 규정을 헌법 또는 농지법에 두었냐는 차이는 있으나 실제 농지보전을 위한 노력은 상당하며, 농지의 공익적 기능을 높게 평가하고 국민적 지지를 통해 농지를 보전 한다”고 반박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워낙 이것이 안 되니까 87년 헌법에 강력한 사회적 합의로 경자유전을 규정, 그나마 안전장치로 작동했는데, 이를 삭제하면 잘못된 신호를 줌으로써 농지가 투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단순히 비교법만으로 검토하면 그 나라가 처한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지 않아 이런 오류에 빠진다”는 것이다.

향후 헌법 개정시 농업관련 내용은 경자유전 원칙의 유지와 함께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미 우리나라도 직불금 등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비용이 지불되고 있는 만큼 헌법 개정시에는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관련 규정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상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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