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전용 품종 딸기의 싱가포르 수출량이 줄면서 선별장 가동률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새해 첫날부터 딸기 수출에 참여한 농가는 딸기 물량 감소 문제로 우울하게 시작한다. 최대 수출딸기 시장으로 꼽히는 싱가포르에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 현지 법인이 덤핑 수출했다는 의혹으로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수출전용 딸기는 2주째 저온저장고에 쌓여 있다. 수출농가와 업계는 수출전용 딸기 수급불균형 현상이 지속될 경우 심각한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더불어 이번 사태는 수출딸기의 품종 문제와 연계돼 있어 근본적인 대책 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대과 중심의 설향 아닌 수출물량 대부분이 중·소과
매향보다 저장성 낮아 짓무름 등 이미지 실추 우려

“이러다가 수출딸기 품종간 경쟁만 심화될 것” 걱정
딸기수출협의회 “수출딸기 가이드라인 마련 급선무”


▲문제 발단=본격적인 딸기 수출 시점에 접어들었던 지난해 12월 중순경부터 싱가포르 최대 유통업체인 NTUC 매장에 설향 품종 딸기가 진열됐다. 딸기 상자(250g 기준)에는 자체 브랜드가 붙어 있으며, 4.99~5.55 싱가포르 달러에 판매됐다. 자사 상표에 ‘한국딸기’라고 표기돼 유통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일종의 자체개발(PB) 상품으로 보인다. NTUC는 국영유통업체로 약 200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으며, 시장점유율이 7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 최대 유통매장에 설향 딸기가 수출되면서 매향 딸기 수출은 90% 이상 중단된 실정이다. 결국 NTUC 매장에서 수출에 최적화된 품종인 매향 딸기 수입을 재개하지 않는다면 국내 수출딸기 판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국내 딸기 품종별 재배면적을 보면 설향이 80% 정도를 차지하고, 매향은 7%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국내에서 형성된 설향 딸기 가격대를 보면 싱가포르에 수출 가격덤핑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설향 딸기 가격은 대과 위주로 형성되는데 수출용 딸기 크기가 중·소과 위주여서 저가 수출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의혹을 낳고 있다. 딸기 수출에는 국내 대기업의 현지 법인이 관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농산물 수출전문업체인 ㈜한사랑 김종해 대표는 “매향딸기 수출이 중단돼 급히 싱가포르를 방문해 유통업체 매장을 살펴봤다”라며 “NTUC 매장에 진열된 상품은 내수시장에서 선호하지 않는 크기로 가격덤핑을 의심할 수밖에 없고, 특히 짓무름 현상을 목격했는데 한국딸기의 이미지 실추마저 우려 된다”라고 지적했다.

▲대응책 마련에 고심=매향 딸기의 싱가포르 수출 감소로 딸기생산자조직과 업계는 지난해 12월 하순 대책 마련을 위해 생산 현장에 모였다. 당장 매향 딸기 수출 감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더라도 장기적인 대응책은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날 모임에서 천용태 진주원예수출영농회 회장은 “그동안 설향 가격이 좋았는데 올해 소비둔화 현상으로 하락세를 보이자 수출되는 원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라며 “하지만 수출전용 딸기 매향은 농약안전성 검사를 철저히 거치지만 국내 기준으로 재배하는 설향의 잔류농약 문제가 불거지면 낭패를 입는다”라고 우려했다.
  
또한 장무현 금곡농협딸기수출농단 회장은 “수출 물량 감소로 저장창고에 딸기가 그대로 보관돼 있어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일부 업체가 베트남, 태국 등 물량을 분산시키고 있지만 소량에 불과하다”라며 “저장성 낮은 설향 딸기로 인해 소비자에게 상품성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면 결국 피해는 농민에게 미치기 때문에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문수호 수곡덕천영농법인 대표도 “싱가포르에도 초기에 설향이 수출됐으나 저장성 때문에 매향딸기로 자연스럽게 대체돼 지금까지 왔는데 다시 설향으로 대체되면 소비자 신뢰성만 떨어지게 된다”라며 “굳이 설향 딸기를 수출하겠다면 해외 관광객이 국내에서 처음 맛본 딸기가 설향인 만큼 신규 시장을 중심으로 접근하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문 대표는 “수출딸기는 생산자조직이 철저하게 정기적인 안전성 검사를 추진하는데 반해 설향 딸기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수출 딸기 전체를 관리할 수 있도록 협의체를 만들어 대응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업계 분석=수출업계도 싱가포르 시장이 무너진 이유를 내수 가격 하락에서 찾고 있다. 내수 시장에서 설향 딸기 수요 감소와 예년보다 한 달 이상 가격이 빨리 하락하자 수출로 돌파구를 찾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매향 딸기 수출가격이 내수시장보다 한 상자 당(2kg 기준) 5000~6000원 높다보니 수출시장 진출을 부추겼다고 분석한다. 이로 인해 딸기생산자연합회와 딸기수출협의회는 사태 진전을 위해 수출단가를 소폭 조정하면서 대응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딸기수출협의회는 설향 품종 수출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분석에 대해서는 생산조직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딸기수출협의회 오성진 회장은 “해외 벤더나 바이어는 상품 품질보다 가격을 우선 하는 경향을 보인다”라며 “최근 불안정한 세계 경제 분위기로 인해 국내뿐 아니라 해외도 전반적인 소비둔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어 유통업체의 경우 판매마진을 높이기 위한 저가 상품에 접근하게 된다”라고 밝혔다.

결국 매향 딸기의 우수한 품질 덕분에 지속적으로 형성된 가격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설향 딸기 구매 패턴이 언제든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매향 딸기만 수출하라고 특정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결국 국내 품종 간 경쟁하는 구조는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딸기수출협의회는 정부 차원의 수출딸기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수출딸기 중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는 지역은 홍콩 지역이 유일하다. 홍콩으로 수출되는 딸기는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농약안전성 검사에 통과 돼야만 수출물류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오성진 회장은 “홍콩지역도 해당 정부가 수출용딸기 농약안전사용 지침을 요구했기 때문에 이뤄진 조치다”라며 “설향 딸기 해외시장 진출을 제지할 수 없다면 시급한 것은 우리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모든 수출 딸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적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광 기자 leedk@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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