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로 우리에게 친숙한 보일러 광고가 있다. 광고 효과 때문인지 이 보일러는 날개 돋친 듯 ‘아버님 댁’으로 팔려 나갔다. 보일러가 주는 따뜻한 이미지에 아버님 댁에 보일러를 놔드리는 ‘효자’라는 이미지가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갑자기 이 광고를 꺼내든 이유는 소비자들의 감성을 ‘터치’하려는 식품업계의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를 얘기하고 싶어서다. 해당 광고는 최신 소비 트렌드 중 하나의 특징인 ‘SHOPPER’(구매자)와 ‘USER’(사용자)가 나눠지는 양상을 알기 쉽게 보여주고 있다. 대형 마트에서 유기농 과일을 구매하는 주부(SHOPPER)와 이를 먹는 자녀(USER), 건강기능식품을 사는 손녀(SHOPPER)와 이를 섭취하는 할아버지(USER), 보일러를 놔드리는 아들(SHOPPER)과 그것을 이용하는 부모(USER)가 매칭되고 있는 것이다.

수요가 발생하는 지점과 구매가 이뤄지는 지점이 다르다는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최근 식품업계가 취하는 ‘감성 터치’ 마케팅 전략의 타깃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하나의 단서이기 때문이다. 이런 예들은 올해 열린 식품 관련 박람회 곳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 9월 열린 ‘대한민국식품대전’에선 부엌이라는 요리공간을 엄마의 전유물이 아닌 ‘가족들 또는 손님들’과 함께 문화와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삶의 공간으로 승화시키려는 ‘스마트키친’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가까운 미래에 만나게 될 ‘스마트키친’은 첨단 과학기술의 향연에 그친 것이 아니라 주부들이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부엌이란 공간에 ‘감성’을 입히려는 전자가전업체들의 노력이 돋보였다.

이달 초 코엑스에서 열린 ‘푸드위크코리아 2016’의 지자체 전시관 중 눈에 들어온 브랜드 이름은 전북의 ‘마흔앓이’였다. ‘나만의 삼시세끼’라는 틀 속에 △아점거리 △야식거리 △요깃거리 △혼술거리 △주전부리 △해장거리 등 주제를 나눠 관련 제품을 소개했다. ‘마흔앓이’라는 이름에서 풍겨지는 느낌처럼 40대를 위한 맞춤형 제품이라는 점이 부각됐다. 가장 구매력이 높은 세대이자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은 40대의 감성을 겨냥한 착안했다는 점, 또 그런 40대에 선물하기에도 용이하도록 한 배려 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식품 분야에서 정직하고 품질 좋은 제품의 생산은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자 핵심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국내산’, ‘우리 농식품’ 등 애국심이란 감정에 호소하는 것과는 결이 다른, 갈수록 세밀해지는 소비자의 감성을 어루만질 수 있는 농식품 업계의 노력과 고민이 더해져야 할 시점이다.

고성진 기자 식품팀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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