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연 (단국대학교 교수)

 

농민의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한 수많은 교육과 연수프로그램이 시행되어왔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것, 농업관련 공공기관에서 추진하는 것, 농민단체와 대학 및 기타 민간단체에서 추진하는 것 등 운영기관도 다양하지만, 그 프로그램 내용도 품목별 기술, 경영, 마케팅, 일반교양, 외국사례 견학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변화, 기술변화, 정책변화에 대응하는 농민들의 능력이 과거보다 많이 향상된 것 같지는 않다. 농산물 가격 진폭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이 잘 안되고, 기술변화를 수용하는 농민들은 여전히 소수이며, 정부정책에 대한 농민의 참여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소위 ‘아스팔트 농업’이라고 하는 시위를 통해 농민의 이익을 지키는 방식도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어떻게 하면 농민들이 급변하는 사회에 잘 적응하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잘 보존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농민역량 강화정책의 성과가 미흡하다면 이제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환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농민단체가 전문가 직접 고용·활용

전업 농민이나 생업을 위해 농업과 다른 일을 동시에 병행하는 농민이 통계자료나 정책문헌 그리고 외국의 사례 등을 섭렵하면서 정책담당자나 다른 분야 학자들과 농정현안에 관해 논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FTA 협상과 같이 다른 산업분야에는 이익이 되지만 농민들에게는 많은 손해를 초래할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일 경우는 관련 지표와 문헌에 대한 전문적인 해석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지금까지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한 논의에 주로 농민의 입장을 이해하는 학자들이 정부정책에 대립하여 논의에 참여하는 것을 볼 수 있었지만, 실제 이는 개인적인 활동일 뿐 농민의 이해와 요구를 지속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니다. 그래서 농민들은 다양한 정책적인 사안에 대해서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전문가를 직접 고용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전문가들을 고용하고 활용하는 것은 당연히 농민단체가 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도 한 두 명의 개별적인 전문가가 아닌 분야별로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연구진을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진의 구성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데 농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해관계 조율해 여론 형성 필수

이런 전문가들은 농민단체 내부에서도 활용해야 한다. 실제 농정변화에 따라 모든 농민에게 동일하게 손해를 끼치는 경우는 많지 않고, 이익과 손해를 보는 농민들이 갈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품목별, 지역별, 규모별로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것이다. 최근 김영란법의 적용에 대해 농민단체들이 서로 다른 입장을 표명한 것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종 정부정책에 대해 개별 농민들이 직접 나서는 것은 농민들 간에 또는 농민과 농촌주민 간에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많다. 즉,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다고 주위의 손가락질을 받거나, 아니면 손해를 입을 수 있는 다른 농민이나 주민들의 격렬한 비판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다양한 농민들의 입장에 대한 논의가 농민단체 내부에서 농민과 전문가들 간에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농민들의 각종 이해에 대한 조정이 농민단체 내부에서 먼저 이루어지고 이를 대외적으로 요구하는 단계를 거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일반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만들어서 설득하는 것이 농민단체 소속 전문가들의 역할일 것이다. 강조하자면, 농민들의 농정참여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농민들의 이해를 다룰 수 있는 전문적인 연구자 그룹이 농민단체 내부에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다양한 교육·사업 운영 담보해야

농민들의 전반적인 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농민단체들이 농민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다룰 수 있는 전문 연구진을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개별 농민들에게 직접 시장상황을 교육하거나 마케팅 방안을 교육하는 것, 또는 이러한 사업을 농민단체들이 대행하도록 하는 것은 그 성과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확산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따라서 농민들의 전반적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가 농민역량 강화사업의 주요 대상을 바꾸어서, 농민단체들이 직접 전문가를 고용하여 다양한 교육 및 사업들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단, 농민단체들의 전문적인 역량이 확보되면 해당 농민단체의 생존이나 발전은 그 전문가들의 활동에 의해서 담보될 것이다. 이것이 농업과 농촌분야의 전반적인 능력을 향상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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