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윤 화천귀농학교 교장

 

추석 전 외가 쪽 육촌 동생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았는데 어린 시절 어른들이 밥 드시기 전에 간장을 먼저 찍어 드시는 모습을 그려 놓았다. 그 글을 읽다가 ‘맞아 그땐 그랬지. 얘가 그걸 다 기억하고 있네’ 하고 감탄을 했다. 간장 한 종지가 옛 기억을 떠올리게 했고, 전통 식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없던 시절에는 밥과 간장 하나로 끼니를 넘겼고, 넉넉하게 먹을 때도 체 할까봐 간장을 먼저 찍어 먹던 것이 불과 몇 십 년 전 일이다. 장 담그는 일이 한 해의 큰 일이요, 장맛을 보고 집안의 가운을 점치기도 했으니 간장 된장 고추장은 우리네 살림살이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장을 담그는데 필수적인 재료가 콩과 소금이다. 고기를 먹는 것이 지금처럼 쉽지 않던 시절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제일 좋은 재료가 콩이었지만 콩은 인체 내에서 소화흡수율이 좋지 않은 단점이 있다. 하지만, 이를 발효시켜 된장이나 청국장으로 만들거나 싹을 틔워 콩나물로 먹으면 소화 흡수율이 월등히 높아진다. 소금도 마찬가지다. 사람이나 동식물이나 가리지 않고 모든 생명체에게 필수적인 것이 염분인데 우리는 서해바다의 풍부한 개펄을 이용하여 천연소금을 얻어왔다. 이 소금 속에 남아있는 독성을 없애기 위하여 볶거나 대나무 속에 넣어 구운 죽염을 만들기도 했으나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간장으로 쓰는 것이다. 간수를 뺀 소금을 물에 녹여 메주를 띄웠다가 걸러서 달인 간장은 간을 맞출 때도 쓰지만 그 자체로 약으로도 사용할 정도로 훌륭하다. 이렇게 우리네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오던 만주와 한반도가 고향인 콩과 서해바다의 소금이 만나 최고의 조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일본식 된장·간장이 차지한 식탁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우리는 이 간장을 잃어버렸다. 우리네 전통 간장, 된장, 고추장은 시골 노인네들 항아리에나 있고, 우리 밥상을 차지하고 있는 놈들은 개량과 현대화라는 옷을 입은 일본식 공장상품 들이다. 우리 콩을 삶아 밟고 자연의 다양한 미생물들이 이를 먹이삼아 발효한 메주 대신에 콩의 지방분을 빼 써먹고 남은 수입 탈지대두에다 일본식 종균(코지)을 접종해서 만든 메주로 된장, 간장, 고추장을 만든다. 말로는 위생적이고 맛을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고 하지만 단일 종균을 사용한 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맛을 낼 수도 없고 영양분도 차이가 나는 것이다.

프랑스 와인의 경우 생산된 지역과 생산된 연도마다 다른 맛을 자랑하고, 또 그것을 홍보한다. 동일한 맛을 유지하지 못하고 집집마다, 만들 때마다 맛이 다른 것을 단점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년 매회 똑 같은 맛이 나오는 것을 정상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회사마다 만드는 공장마나 지역마다 날씨 따라 다른 맛을 내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게 다양한 장류가 생산이 되고 집에서 담가 먹을 형편이 못되는 사람들이 자기가 선호하는 회사의 장을 고를 수는 없을까?

지역별 음식맛 천편일률 씁쓸

요사이 각 지역별 특색이 있는 음식을 먹어보면 우습게도 다 동일한 맛이다. 서울 음식이나 전라도 음식이나 다 그게 그거라는 이야기다. 지금 우리나라의 음식 맛을 한마디로 하자면 너무 달다. 단맛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밖에서 음식을 먹기가 정말 괴롭다. 특히 양념이 들어간 불고기 같은 음식은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1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을 가서 제일 힘들어 했던 것이 단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계란말이’ 니 뭐니 모양은 너무 깜찍하지만 내놓는 음식마다 달아서 며칠만 먹으면 고추장 한 숟가락을 그냥 퍼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그런데 이제 우리 음식이 그렇다. 최근 유행하는 설탕으로 모든 맛을 조절하는 TV 먹방프로그램 탓이라고도 하고, 우리 사회의 폭력성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단 맛을 찾는다는 등 여러 가지 원인을 이야기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혹시, 단맛 일변도로 변해가는 이유가 장맛 때문은 아닐까? 우리 음식에서 가장 기본은 된장, 간장, 고추장이다. 이 기본이 되는 장류가 일본식 종균으로 만들어져 단된장, 단간장, 단고추장이니 우리 입맛이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장뿐이 아니다. 우리 전통주라는 막걸리, 청주도 실상은 부끄럽게도 일본식 종균을 이용하여 만든다. 그것도 부족해서 아스파탐 등 감미료를 추가하니 우리 입맛이 단맛에 길들여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면, 일본은 원래 음식을 달게 했을까? 섬나라이고 습하니까 우리보다 짜게 먹는다면 이해가 가지만 달게 먹는 것은 기후나 풍토와 관계있는 것은 아닐 거다. 어쩌면 일본도 근대화 이후 개발해서 보급한 단일 종균(코지)을 이용하면서부터 변한 건 아닐까? 일본과 우리나라 둘 다 공통으로 사용하는 종균 때문에 두 나라의 입맛이 같이 변해간다고 보는 것은 너무 엉뚱한가?

우리 장도, 입맛도 잃어 어쩌나

냄새와 맛은 뇌에 각인되는 것 같다. 어느 날 어떤 음식을 먹다가 갑자기 어렸을 적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이 떠오르는 경험을 다 해보았을 거다. 일제시대 이후 조금씩 우리 식탁에 올라오던 일본식 장이 오히려 해방된 이후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다시 등장했고, 그 시대를 겪은 우리 입맛을 점령해 버렸다. 어릴 적 ‘소유간장, 왜간장’ 등의 이름으로 불렀던 진간장을 이제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냥 ‘간장’이라고 부른다. 정작 우리 간장은 ‘조선간장, 국간장’으로 개명을 당했다. 나라는 광복했다지만 장은 오히려 식민지가 되었다. 부침개를 먹을 때도 칼국수를 먹을 때도 이제 우리는 간장을 쓰지 않는다. 왜간장에 고추 썰어 놓고 찍어먹고 넣어 먹는다. 우렁 쌈밥 집엘 가도 삼겹살집에 가도 우리는 막장, 된장으로 쌈장을 만들어 먹지 않는다. 누런색이 나는 왜된장을 찍어 먹는다. 김밥집에 가도 우리는 된장국을 먹지 않는다. 왜된장이나 미소를 마신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장을 잃어 버렸고, 그래서 우리 입맛을 잃어 버렸다. 옛 어른들은 짜고 맵게 먹어야 독종이 된다고 하셨다. 그래야 웬만한 병도 이기고 어려움도 견뎌 낸다고 말이다. 싱겁게 달게만 먹는 우리는, 우리 자식들은 갈수록 어려워 가는 이 시대를 어찌 견뎌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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