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원도 ‘대표 술’ 선정 논란에 대해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들었던 말이 있다. “도가 나름의 기준을 만들고 추진하고 있는데, 외부에서 사업 기획이 문제가 있다든지 사업 취지가 잘못됐다든지 하는 것은 도 행정에 대한 간섭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왜 뭐라고 하는지 납득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얘기다. 국순당의 신제품이 대표 술로 선정되자 지역 전통주업체들이 사업 취지에 맞지 않다고 비판한 것에 대한 행정 담당자의 ‘변(辯)’이었다.

지자체의 설명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술’이 전통주와는 다른 차원이기 때문에 전통주 관계자들의 지적이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다고 하자. 하지만 지방정부의 술 육성 정책이 지역 전통주산업에 미칠 영향을 감안한다면 전통주 관계자들의 목소리는 단순한 트집 잡기로만 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역 중소 업체들보다 경쟁력을 갖춘 국순당과 같은 전문 업체의 신제품이 정부 시책에 따라 수억원의 예산 지원과 함께 중점적으로 육성된다고 하면, 지역 중소 업체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우려가 한편으론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류 관련 사업이나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선 전통주 산업의 면면을 살펴봐야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에 벌어진 일련의 과정은 전통주 업계의 산업 지형과 파급력 등에는 무지했던, 지방 행정에 ‘전통주’를 찾아볼 수 없었던 하나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중앙정부의 전통주 육성 시책도 크게 다르지 않다. ‘6차산업화’, ‘한식세계화’ 등이라는 보기 좋은 목표 뒤편에는 전통주 분야에 책정된 초라한 예산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최근 5년간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가 배정한 전통주 관련 예산은 매년 평균 4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농식품부의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03% 내외 수준. 전통주 수출과 세계화를 부르짖는 중앙정부의 육성 의지가 관련 업계에 크게 와 닿지 않는 현실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주요 주류업체의 홍보마케팅 예산과 견주어 보면 초라한 처지는 더 두드러진다. 한국전통주진흥협회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하이트진로의 홍보마케팅 예산은 1700억원이 넘는다. 오비맥주 1100억여원, 국순당도 관련 예산이 137억원이나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예산이 협회나 단체 등에서 매년 추진하는 일회성 행사 등에 투입되는 경우가 반복되며, 실로 전통주 분야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인프라 구축 및 R&D 투자 등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것이 현주소다.

전통주 수출 육성 시책 역시 빈틈이 많다. 전통주 업계 관계자들이 꼽는 대표적인 부분이 수출 통계. 전통주 업체들이 해외 진출 차원에서 5000만~1억원 수준의 샘플 제품을 내보내는 부분이 통계에 충실히 반영되기 어렵다는 점을 볼 때 전통주 관련 수출 통계가 제대로 파악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목소리가 많다. 수출 통계 중에서도 막걸리 비중이 많은데, 막걸리가 전통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제외한 전통주 수출 관련 통계를 체계화해야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전통주 장관’이라고 불리는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이 임명되면서 전통주 업계의 기대감은 대단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어떨까. 목표를 이뤄내기 위한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데다 전통주 업계에서 기대한 변화는 아직도 훗날을 기약하고 있다. 전통주 산업 진흥 업무를 담당하는 농식품부 식품산업진흥과의 과장이 최근 1년 새 3번이나 바뀌었다는 부분을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지방정부나 중앙정부에서 그토록 애지중지 외쳤던, 그 ‘전통주’는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묻지 않을 수 없다.

고성진 기자 식품팀 kosj@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