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헌 윤봉길 의사가 상해의거한 지 84주년을 기념하는 ‘제43회 매헌윤봉길평화축제’. 이 축제의 첫날인 29일에 주무대인 도중도에서 매헌농민상 시상식이 열렸다. 시상식에서 앞서 이우재 (사)매헌농민회월진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모처럼 날씨가 화창했다. 비가 세차게 내렸던 지난해와는 다른 모습이다. 2015년 4월 29일, 다들 비를 바라보며, “농민을 주인으로 대하지 않는 데 대한 윤봉길 의사의 눈물”이라 했었다. 올해에는 “그래도 농업이 밝은 미래를 맞았으면 하는 윤봉길 의사의 바람일 것”이라고 표현했다. 비가 와도, 날이 맑아도, 윤봉길 의사의 ‘농(農)’과 연결시켰다. 윤봉길 의사가 독립운동가이기 이전 농촌운동가로서 먼저 발을 딛었다는 데 익숙해져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매헌윤봉길의사 4·29상해의거 84주년’을 기념해 4월 29일부터 30일까지 양일간 충남 예산에서 진행된 ‘제43회 매헌윤봉길평화축제’에서는 윤봉길 의사의 생명창고 사상 등 매헌이 주창한 농촌운동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심포지엄/윤봉길 의사 생명창고 사상 

‘농민이 주인인 세상’ 꿈꾸던 청년
생명농업 가치 실현 정신 이어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밥상으로
‘농의 가치 회복’ 국민 인식 전환을


“농민은 세상 인류의 생명창고를 그 손에 잡고 있습니다. 우리 조선이 돌연히 상공업 나라로 변하여 하루 아침에 농업은 그 자취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이 변치 못할 생명창고의 열쇠는 의연히 지구상 어느 나라의 농민이 잡고 있을 것은 사실입니다.”(농민독본의 제4과 ‘농민’ 중)

매헌 윤봉길 의사가 ‘농민독본’에서 강조했던 생명창고 사상. 그의 농촌운동을 사상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심포지엄이 ‘제43회 매헌윤봉길평화축제’ 전날인 4월 28일 충남 예산 소재 충의사에서 열렸다. 이날 심포지엄은 (사)매헌윤봉길월진회가 주최하고, (사)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가 주관했다.

▲농촌의 아들, 윤봉길=강희춘 (사)매헌윤봉길월진회 부회장은 첫 번째 발제, ‘윤봉길 의사의 농촌운동과정을 통해 본 생명창고 사상’에서 매헌 윤봉길 의사가 걸어온 길을 되짚었다. 생명창고 사상의 발원지를 찾기 위함이다.

강 부회장은 “우연한 기회에 공동묘지 묘표사건을 경험한 윤 의사는 ‘무지하기 때문에 못사는 것이고, 무지하기 때문에 우리 조국의 처지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며 계몽만이 농촌을 살릴 수 있는 지름길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윤봉길 의사는 야학을 시작했고, 이 당시 야학의 교재로 만들어진 것이 ‘농민독본(農民讀本)’이었다.

강 부회장은 “천도교의 농민운동이 전면적인 민중운동으로 퍼져나가게 됐는데, 천도교의 조선농민사에서 발행한 잡지인 농민이 전국적으로 보급됐고, 이 때 농민지에 나온 얘기들을 현실에 맞게 일부분 편집했다”며 “윤 의사 혼자 만들었다기 보다는 여럿이 같이 만들고, 그것을 합해 책으로 엮은 것이 농민독본”이라고 설명했다.

농업에 대한 매헌의 애착은 부인 배용순 여사의 회고록에서도 비춰진다. 1976년 나라사랑 25집에 실린 이 회고록은 배 여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쓴 자신의 얘기이다. ‘농민이 주인인 세상을 만들자’던 매헌의 목소리는 결코 ‘즉흥’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디까지나 평범한 농촌의 아들이었다. 낮이면 들에 나가 농사를 거들고, 밤이면 사랑방에서 책을 붙들고 날마다 밤늦도록 까지 놓을 줄 모르던 사람, 새벽이면 또 어느새 사랑채에 나가 책과 씨름하던 농촌의 지식청년이었다. 농촌부흥운동에 몸을 던지고 나서의 4년은 밤마다 야학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친구들 집에 가서 무슨 논의 끝에 잡지책을 빌려오며 자정 때나 귀가하기도 하는 관계로 해서 남편과 마주대하는 아기자기한 시간이란 결코 없었다.”

▲농의 기능을 살려라=이상국 한살림연합 상임고문은 ‘윤봉길 의사의 생명창고 농업관과 지속가능한 생명가치 농업살림’이란 제목의 발제에서 “지금 우리 농업, 생명창고의 가치가 실현되고 있는 농업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의 답은 ‘아니다’였다. FTA가 확대되면서 국민의 생명줄이 소수의 다국적 기업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점, 농촌이 공동화·고령화돼가고 있다는 점, 밥상에 GMO 유전자조작 물질이 넘쳐나고 있다는 점, 지속가능하지 않는 화학농법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 등이 그 이유였다.

이 고문은 “식량주권 회복, 식량 독립, 식량 해방 등을 바라는 우리농업에는 여전히 매헌의 농촌부흥운동이 요청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고문은 “매헌 윤봉길 의사가 주장하는 ‘농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서는 국민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며 “매헌이 생명창고인 농의 기능을 회복하는 일에서부터 자주·자립·자활의 독립운동, 민족해방운동을 했듯이 지속가능한 밥상을 위해서는 인위적 인간생명 영위의 시작점인 밥을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먹을 수 있는 농의 기능을 살리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고문은 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덧붙였다. 지속가능한 밥상을 위해서는 무엇이 선행돼야 할까. 이 고문은 “농민은 군인처럼 국민의 생명안전망을 일상적으로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직업군인과 같은 대우가 필요하다”면서 △생산지원, 협동판매 등 농협 본래기능 회복 △소비자생활협동조합 등 계획생산·책임소비 위한 직거래 협동조직 활성화 지원 △농업의 다양한 생태적 공공성 기능에 대한 다양한 직불제 도입 △학교 등 공공기관의 친환경 공공급식 확대 △공교육 전 과정에 농의 가치에 대한 교육내용 신설 등을 제시했다.

|매헌농민상 수상자

▲농업권익보호부문/강성중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 사무국장
“농업, 생명적 가치 만들어가는 장으로”

 

강성중 사무국장의 농권운동은 1986년부터 시작된다.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 의성협의회 간사를 맡았던 때다. 간사를 역임하게 된 계기도 강 국장답다.

그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는데, 과목 중 디자인론에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란 단원이 있었다”며 “그런데 당시 고가의 소형녹음기가 처음 나왔고, 노동자들이 한달 월급을 주면서까지 그 녹음기를 사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위한 디자인’은 현실과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 실망감은 그가 산업디자인 대신 ‘농업’을 택하게 만들었다는 것. 강 국장은 “때마침 농권운동을 하면서 농사를 천천히 접하는 게 어떠냐는 권유를 받았고, 그게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 의성협의회 간사였다”고 회상했다.

강성중 국장은 농업의 자급기반을 위한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도농협동운동으로 확장시켰고, 친환경학교급식 실현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는 밑거름을 만들었으며, 유기순환적 농사체계 실현·슬로푸드와 로컬푸드의 결합·남김없는 소비 등 자립 농업을 전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헌농민상은 농업이 나라의 근본이라고 하는 농민독본을 쓴 매헌 윤봉길 의사의 뜻이 담겨있기 때문에 그 어떤 상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밝힌 강 국장은 “이제 농업은 단순하게 먹거리 문제로 국한하기 보다는 종합적인 생명적 가치를 만들어가는 ‘장’으로서의 의미로 확대시켜야 한다”며 “앞으로는 밥상을 바꾸고, 식탁을 변화시켜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상생하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성농업인부문/정희자 한국여성농업인예산군연합회장
“다문화가정 소외받지 않게 배려부터”

 

“다문화가정도 우리 공동체의 일원이잖아요.”

정희자 한여농예산군연합회장는 다문화가정에 관심이 많다. 그들이 농촌에서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서 당당히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점차 다문화가정은 늘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정책적 배려는 제자리라는 정 회장. 그녀가 말하는 ‘배려’는 금전적 지원이 아니다. 다문화가정이 농촌에서 소외받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가 크다. 그래서 정 회장이 다문화가정과 함께 하는 체험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정 회장은 “‘우리는 가족’이라는 인식이 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다문화가정과 농촌주민이 소통하고, 모일 수 있는 장이 있어야 한다”며 “각종 체험을 통해 우리나라의 문화를 그들에게 알려주고, 그들의 고민을 농촌주민들이 해결해주는 선순환의 시작이 바로 체험”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정 회장이 몸담고 있는 한여농예산군연합회에서는 매년 예산군의 다문화가정을 선정해 묵만들기, 고추장만들기, 김장담그기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단순하게 돈으로 지원하는 식에서 마무리되는 다문화가정 정책은 지양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정 회장은 복합영농인이다. 수도작을 비롯해 수박농사, 쪽파농사 등을 짓고 있다. 한여농 회원이 된지도 20여년째. 농사가 곧 보람이라고 믿고 있는 정 회장은 “농업이 어렵다고 다 포기하고 방관만 해서는 안된다”면서 “그럴 때 일수록 서로 대화도 하면서 좀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면서 함께 농사를 지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녀는 “열심히 하면 보람이 있는 직업이 농업”이라고 밝혔다.


▲여성농업인부문/김형애 봉산면 새마을부녀회장
“사라져가는 삭힌김치 지킴이로 남을 것”

 

“어깨가 좀 무겁네요.”

김형애 회장의 수상소감이다. ‘매헌농민상’이 처음에는 생소했는데, 매헌 윤봉길 의사를 알수록 책임감이 커지고 있다는 것. 김 회장은 “지금 하고 있는 게 잘 하는 것인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왔는데, 매헌농민상을 받음으로 해서 걱정을 한시름 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걱정을 놓는 대신 책임감을 어깨에 얹은 셈이 됐지만, 김 회장은 또다른 삶의 원동력을 얻었단다.

김 회장은 예산의 ‘삭힌김치’를 보존하는데 애를 쓰고 있다. 예산의, 예산에서도 봉산면의 향토음식인 삭힌김치. 사라져가는 음식을 재발견하자는 취지에서 추진되고 있는 세계적 슬로푸드 프로젝트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등재되기도 한 삭힌김치. 그러나 이제는 삭힌김치를 만들지 않는다는데 안타까움을 느낀 김 회장이 농촌주민들과 함께 2014년부터 ‘삭힌김치’ 지키기에 나선 것이다. 본격적인 홍보를 위해 김 회장은 식당도 운영할 계획도 내놨다.

2005년에 귀농한 김 회장에게는 고향이 아닌 예산을 선택한 것과 삭힌김치를 접하게 된 것 모두 우연이었다. 이 모든 우연을 인연으로 받아들인 김 회장은 “우리 동네의 삭힌김치를 보호하고, 보존하고, 아끼는 지금의 내 일에 매우 만족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농업에 대해서 자신만의 철학도 확고했다. 김 회장은 “땅을 지키라고 남에게 말하기 보다는 직접 땅을 지키는 게 낫지 않나”라며 “우리 삶의 일부분인 농업을 외면해서는 결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게 평소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조영규 기자 choyk@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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