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중앙대 명예교수,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4월13일로 다가왔는데 전국의 농어민 유권자들의 표정은 계속 어두워지고 있다. 농어촌 지역선거구가 4자리나 줄어들어 국회의원 50명을 뽑는 서울지역 보다 10배가 넓은 공룡선거구(홍천, 철원, 화천, 양구, 인제)에서 단 1명만 뽑는 이상한 지역구 조정 결과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또 수많은 여야 정당들이 공식으로 추천한 비례대표 의원 후보 가운데 농어민 대표가 당선가능권에 배치된 정당이 ‘더불어 민주당’ 한 곳뿐이고, 45명이나 추천된 여당 비례대표 후보 중에는 눈을 씻고 보아도 한 명의 농민대표도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만도 아닌 것 같다.

농민대표 없고 농정공약은 ‘쭉정이’

무어니 뭐니 해도, 공천 후보자와 비례대표 후보자 중에 실생활 면에서나 학문적으로 농정에 해박한 전문성을 갖춘 농어민의 진정한 대변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지못해 각 당이 발표한 ‘10대 정책’ 가운데에는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농정관련 정책이 빠져 있다가 뒤늦게 하위직 당직자들이 나서서 3월21일과 3월17일 농정공약이랍시고 형식적으로 발표했는데 그 내용이 터무니없이 빈약하다. 일부는 실행되지 않았던 대선 때의 공약을 그대로 베껴 내거나 농어민들의 숙원하고는 거리가 먼 구체성이 결여된 공약들이다. 현재의 이 시대 이명박근혜 정권을 살아오면서 우리나라 농업, 농촌, 농민 등 3농 부문이 무분별한 FTA(자유무역협정) 체결로 몰락하고 있는 비참한 현실하고는 동떨어진 쭉정이 공약들뿐이다.

여당의 공천 결과를 보면 일찍이 신석정 시인이 노래하였듯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이다. 진박(진실한 박근혜 사람), 친박(박근혜와 친한 사람)만 남고 비박, 짤박, 탈박들과 농어민 대표는 가라는 것인가? ‘당신들만의 천국’을 만들면 국민은 과연 행복할 것인가!

왜 이같은 농업 소외, 농정 외면, 농어민 경멸현상이 이 땅에 공공연히 그리고 태연히 벌어질 수 있는가? 그것은 나라를 경영하는 최고위 지도자들의 초고도 근시안 난시성 리더십이 제 일 먼저 떠오른다. 그들은 농업 농촌 농민의 존재가 지속가능한 나라와 민족의 유지발전에 필요불가결한 요건임을 애시당초 깨닫지 못하고, 영원할 것 같은 권력만 틀어 쥐고 있다. 박대통령이 대선 때 공약한 쌀 수매가 가마당 21만원 약속이라도 지키라고 데모를 하다가 경찰의 무자비한 물대포에 의해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70)씨의 안부마저 정부관료 중 아무도 찾아가 위로하지 못하는, 측은지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정부가 아니던가. IS 테러리스트로 단정하지 않은 것만도 감지덕지하다.

제 역할 못하는 농민단체 ‘자업자득’

정부나 농협 등 농업관련 기관들의 지원을 받아 현상을 유지하는 각종 농어민 단체와 농업계 학자 교수 연구자들, 어차피 대기업과 국가권력의 하청 하부조직이다 보니 떡 고물이나 더 얻어먹으려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행여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에 발탁이 될까, 공공기관 사외이사 자리라도 맡게될까, 엉뚱한 기대에 정부나 정치권이 농어민의 주장과 희망에 역행하는 조치를 편다해도 감히 덤벼들지 않는다. 그나마의 떡고물마저 끊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자칭 정부권력 장학생인 농업단체들이 부지기수이다. 정부 기관으로부터 보조금이나 용역을 받아 조직을 꾸려나가는 조직들에 의해 무슨 농어업인들의 피땀 어린 고충이 해소될 것을 기대한단 말인가. 오늘날 농정 소외 기피 현상은 어쩌면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이러한 곳에 공자의 논어 위정편의 가르침(人生七十而 從心所慾 不踰矩, 인생이 70에 이르면 마음이 욕망하는 바를 따라도 세상의 법도를 거스리지 않는다.)을 정면으로 뒤엎는 기이한 정치현상들이 우리나라 선거판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생 칠십(七十)이면 세상을 살만큼 살아 온, 그리하여 세상에 자기의 ‘재능과 재산’을 환원하면서 탐욕을 버리고 세상을 밝게 하는데 성심성의를 다해야 할 사람들이 선거 때가 되니 다시 꾸역꾸역 기어 나와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마치 “좀비”로 되살아나 세상을 어지럽히는 꼴불견은 여야 핵심 선거참모들이 최근 보여주고 있는 공천파동 또는 선거캠페인 행태이다. 그들의 전성기에 각인된 관상(觀象)이 강시(좀비)로 비쳐지는 것은 불초만의 착각이 아닌 것 같다. 노욕이 탐욕이 되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과 언행을 흩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생명과 생태, 5천만 국민의 생존권은 아예 안중에 없다. 이들이 현행 선거판을 좌지우지하는 한 나라의 안녕과 평화, 국민의 행복은 발붙일 틈이 없다.

대기업 자본주의 폐해 갈수록 심화

이제까지 정경유착의 대기업자본주의(Coporato-cracy) 정책으로는 민족공동체의 안정과 민생 민주 민권의 신장을 도모할 수 없음이 작금에 우리 사회 그리고 세계 신자유주의 체제 곳곳에서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생명과 생태의 기본가치와 평등과 공평성, 지속가능성을 보듬지 못하는 코퍼라토크라시 일변도의 정치와 정책은 결국에는 불평등과 양극화, 약자의 파멸만을 불러들인다. 일견 가격(price), 경쟁력(competitiveness) 그리고 이윤(profit)의 크기로만 표현되는 이윤극대화 행위와 불공정한 경쟁은 생태와 생명 그리고 지속가능성의 악화만 불러들인다. 경제순환의 악순환이 반복하는 가운데 빈익빈 부익부로 사회 양극화는 심화된다. 농업, 노동자, 중소상공업 등 취약부분이 먼저 무너지고 사라질 뿐이다.

이미 지구촌 경제 메커니즘이 대기업자본주의의 심화로 국가간 지역간 그리고 산업간 균형을 잃고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문화로 대체되기에 이르렀다. 더 크고 경쟁력 있는 대기업 자본주의 논리에 부추김을 받은 WTO(세계무역기구), FTA(자유무역협정), TPP(환태평양무역협정) 등으로 불균형 불평등은 심화되어 국가간 지역간 산업간 균형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것은 결코 평화의 길이 아니며, 공존공영의 인류행복의 길도 아니다.

대기업 자본주의의 파국적인 병폐를 완화시킬 새로운 체제를 인류는 갈망하고 있다. 그래서 북유럽사회로부터 전지구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것이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와 생명주의, 생태주의의 부활이다. 그리고 공생과 공영, 신뢰에 기반한 협동조합 운동이 다시 떠오르고 있는 것도 반(反)코퍼라토크라시 움직임이다.

생명·생태·소농 살리는 정책 나와야

이제 이 지구상의 착한 정부는 그 정책방향을 이윤의 극대화 대신에 사회적 후생의 최대화를 겨냥한다. 생명과 생태의 공존과 상생을 담보할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을 위해 유엔이 앞장서 ‘가족농의 해’, ‘흙의 해’를 연달아 선포하고 올해는 지력도 살리고 환경생태계와 생산성을 공히 살릴 ‘콩의 해’로 지정하였다. 사람이 살고 환경생태계와 뭇 생명을 살리는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는 최근 세계사조의 흐름이며 시대정신이 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3년간 해 놓은 일이 뭐가 있느냐고 질문을 받고 있는데, 앞으로 남은 2년의 임기 기간 중에라도 먼저 “사람을 살리고, 자연을 살리며 경제공동체를 살리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정책 변화를 시도한다면 그의 아버지 박정희 시대를 뛰어 넘는 위대한 지도자로 영원히 기리어질 것이다. 국민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이며 어떠한 경제 사회체제가 그 목표를 담보할 것인가 심각히 고민해야 할 때이다.

구체적으로 생명과 생태 그리고 소농을 살리기 위해서는 농업부문이 수행하고 있는 다양한 공익기능에 대한 보상차원에서도 직불제를 확장한 농가기본소득제를 스위스와 북유럽 국가들처럼 기초단계부터 실시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생태와 생명을 살리는 근혜노믹스에 대하여 새로운 논의를 활발히 할 때이다. 화학농법, 공장식 농업, 대기업 단작농법에서 벗어나 환경생태계와 생명을 중시하는 친환경 유기농법이 날개를 달 수 있도록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하여 집중 토론해야 한다.

지금까지와 같이 대기업 위주의 수출 경제성장 일변도 정책에 매달릴 것 같으면 박근혜 정부의 임기는 차라리 빨리 끝날수록 국가와 국민에 도움이 될 것이다. 총선을 계기로 진박, 친박 정권 정당도 그리 오래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 대한민국은 “당신들만의 천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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