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사카청과로 출하된 딸기 소포장을 우리나라 도매시장법인 및 농업인들이 관심있게 살펴보고 있다.
▲ 오사카청과의 직원들이 출하물량과 가격 등을 확인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모습.


일본에서 생산되는 채소와 과일의 도매시장 경유율이 매년 감소세에 있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직거래나 인터넷 판매 등 다양한 유통경로의 출현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도매시장법인들은 다양한 유통 주체들과의 경쟁은 물론 도매시장법인들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일본 오사카 중앙도매시장의 청과법인인 동과오사카청과(이하 오사카청과)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시도들을 살펴보고 국내 도매시장법인들의 역할을 조명해 본다.

요리법 제공 ‘제안형 판매’
식재료 함께 진열, 소비 유도
인터넷 통신판매 자회사 설립
인터넷업체와 협력관계 구축

기상이변 대응 생산기술 제공
산지 작황 안정화 모색도

시장 중심으로 한 신뢰 든든
재건축 설계 도매법인에 맡겨
사용주체 고려 효율성 제고


▲일본 도매시장의 상황=도매시장법인의 역할은 농산물의 집하와 분산, 출하주에 대한 가격정산, 정보전달이 주요 기능이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도매시장법인들 사이에서 이 같은 법인들의 주요 기능에 변화가 일고 있다. 예를 들자면 농산물의 집하와 분산기능이 점차 떨어지고 가격정산 기능도 중도매인들의 도산으로 법인이 대금결제를 하지 못해 도산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 일본 내 여러 곳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도매시장을 경유하지 않고 다양한 유통경로를 통한 농산물 유통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로컬푸드와 같은 직매장이 늘어나거나 농산물 택배 회사의 매출이 매년 증가하고 인터넷 등 통신판매가 늘어난 것이 단적인 예다.

그러나 이 같은 유통경로들이 유통비용 절감에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일본 현지의 분석이다. 실제로 직매장의 경우 농가에게 받는 수수료는 무려 15% 달하고 개별 택배의 경우 물류비가 많이 드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유통경로가 다양화 됐다고 농가들이 많은 소득을 올리고 소비자는 저렴하게 농산물을 구입하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새로운 유통경로가 늘어나는 원인에 대해 신카이 시게끼 오사카청과 IT·마케팅팀장은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유통경로가 확산되는 이유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마음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이지 유통비용의 문제는 아닙니다.”

기존의 유통경로는 산지에서 소비지로 단순히 상품만 이동하는 구조로 이뤄졌고, 이렇다 보니 소비지의 목소리가 산지로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직매장이나 인터넷 통신판매는 산지와 소비지가 소통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구매패턴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

이런 점을 볼 때 도매시장은 산지와 소비지의 정보가 가장 많이 축적돼 있어 법인들은 이 축적된 정보를 활용해 사업방향을 세우고 있다.

▲마케팅 방식의 변화=오사카청과는 생산자와 소비자는 물론 농식품 관련 모든 정보를 유통시키는 중심지 역할을 지향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도매시장법인이 농산물 수집, 분산을 넘어 농산물 판매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오사카청과가 농산물 판매에 사용하는 대표적인 마케팅 방안이 이른바 ‘제안형 판매’다.

이 제안형 판매는 1차 농산물 판매에서 벗어나 농산물을 활용한 요리법을 제공해 농산물과 식자재를 함께 판매하는 형태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정월에 당근을 이용한 음식을 먹는다. 이 기간에는 당근의 소비가 급격히 늘어난다. 하지만 정월이 끝난 후에는 소비가 급격히 감소해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판매의 어려움을 해소키 위해 오사카청과는 식초 제조업체와 협력해 식초를 이용한 당근 요리법을 제안해 소비를 끌어 올렸다.

이러한 사례는 일본 내 슈퍼마켓 과일과 채소 판매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도매시장법인들이 과일 및 채소를 이용한 요리법을 제공하면 슈퍼마켓에서는 이들 식재료를 함께 판매하는 형식이다. 이럴 경우 과일 및 채소, 가공품을 각각 판매하는 경우 보다 매출이 크게 올랐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소요되는 시식 등 마케팅 비용은 조미료 생산업체에서 부담하게 된다. 도매시장법인은 농산물과 조미료 등 가공제품의 판매를 늘릴 수 있는 판매방식을 제안하고, 마케팅 비용은 가공품 제조업체에서 부담하는 형식인 셈이다.

신카이 시게끼 팀장은 “이러한 활동들은 법인 간의 경쟁이 워낙 심하기 때문이다”며 “법인의 직원들이 산지와 소비지의 정보와 트렌드를 취합해 소매점에 알리고 미래의 소비문화를 제안하는 형태가 현재 일본 내에서의 추세”라고 설명했다.

▲도매시장법인의 진화=오사카청과는 직매장이나 인터넷 통신판매 등 신유통 경로가 도매시장과 경합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상의 전환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오사카청과는 2003년 인터넷 통신판매를 할 수 있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이 자회사를 통해 판매 역량은 뛰어나지만 농산물 수집이 힘든 인터넷 판매업체들에게 물량을 공급하고 있다. 그 결과 도매시장법인은 농산물 수집으로 인한 수익을 내고 인터넷 판매업체는 판매로 수익을 내는 협력 관계 구축이 가능하게 됐다. 이러한 자회사 설립이 가능한 것은 매매참가인을 자회사로 설립할 수 있도록 법에서 허락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오사카청과는 산지의 생산기술을 제공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기상이변이 심해 과거의 생산기술로는 안정된 농산물 생산이 불가능해 졌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법인이 산지의 문제를 정부나 민간 연구소에 알려주면 이들 연구기관이 해당 문제를 연구과제로 채택해 연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산지에 적용하고 있다. 실례로 물 빠짐이 좋지 않은 밭에서 생산이 가능한 고구마 품종이 개발되면 집중호우가 발생할 경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예다. 이러한 시도가 가능했던 것 역시 도매시장에 작황 등 산지의 정보가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일본 도매시장법인의 시사점은=일본 도매시장법인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우리나라 유통 전문가들과 도매시장법인들은 풀어야 할 숙제이면서 방향성의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더욱이 일본의 도매시장 관련 제도에서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할 수 있는 것은 시범적으로라도 도입해 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는 우리나라도 다양한 유통경로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도매시장법인들도 일본과 같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방안을 찾을 수 있는 일종의 비상구를 마련하자는 의미에서다.

아울러 일본 도매시장법인들이 다양한 사업전략을 구상할 수 있는 배경에는 시장을 중심으로 한 이해 당사자들의 신뢰가 바탕이 됐기에 가능한 만큼 우리나라도 상호 간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도 급선무로 지적됐다.

권승구 동국대학교 교수는 “일본의 법인들이 가능한 것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유통 주체들의 신뢰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며 “우리도 유통구조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아이디어를 만들어야 하다. 그에 앞서 유통 주체들의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신뢰는 오사카청과의 시설현대화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오사카청과는 2013년에 시설 재건축을 마무리 지었다. 이 과정에서 오사카청과는 오사카시에 시설 재건축에 소요되는 예산 범위 내에서 도매시장법인이 설계를 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이는 시장 사용의 주체가 법인인 만큼 이용자의 사용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따라서 예산 범위 내에 시장배치와 어떤 시설을 넣을 것인지 등 기본계획을 법인이 수립했다.

이를 두고 국내 한 지방도매시장법인의 대표는 “일본의 사례를 보면서 시장 관리 주체가 일을 하는 사람을 편하게 하고 필요한 쪽으로 방향성을 잡아 주는 것이 부러웠다”며 “우리나라는 관리 주체에 따라 시장의 방향성이 결정되는 구조인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도매시장법인 대표는 “일본의 도매시장법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다양한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법인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매우 제한적이다”며 “일본 도매시장법인 관계자가 ‘법인은 출하주를 대변해 좋은 가격을 받아주고 잘 팔아주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우리나라 법인들이 이러한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돼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 오사카=김영민 기자 kimym@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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