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총선을 목전에 두고도, 여전히 선거구 획정안은 안개속이다. 현재까지 ‘지역구 의석수를 253석까지 늘린다’는 것 외엔 합의된 내용이 없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2월 임시국회에서 선거구 획정안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이것저것 따질 시간이 없어진 국회는 결국 의석수만 조정하는 선에서 선거구 획정안을 확정할 공산이 커졌고, 이렇게 만들어진 선거구 획정안은 20대 총선에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이로써 16개월여동안 농어업계가 주장했던 사안들 무용지물이 됐다. 2014년 10월 30일에 헌법재판소가 최대인구 선거구와 최소인구 선거구의 지역구별 인구편차 비율을 2대1로 개선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자마자, 농어업계에서는 “농어촌 지역구가 축소될 우려가 있다”면서 “인구수만을 기준으로 선거구를 획정한다면, 농어촌 지역의 민심을 대변할 국회의원들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농어업·농어촌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해 지역선거구를 획정할 것을 강력히 주문한다” 등을 강하게 외쳐왔다. 농어업계는 단순히 의견을 내놓는데 그치지 않고, 전국 26개 농어민단체, 261개 농·축협, 67개 농어촌지자체가 참여해 지난해 5월 ‘우리농어촌지역지키기 운동본부’를 출범시키는가하면, 국회에 직접 ‘농어촌 특별선거구제 도입’과 같은 구체적인 대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농어촌 지역구 사수’는 실현되는 듯 싶었다. 농어민단체의 이 같은 움직임에 국회도 꾸준히 힘을 보탰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9월 23일에는 수 십명의 국회의원들이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가 개최한 ‘한·중 FTA 대책 수립 촉구 및 농어촌지역지키기’ 농업인 총궐기대회에 참석해 “농어촌 지역구를 지키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국회의원들은 자기들이 내밀었던 손을 하나씩 거두기 시작했고, 그 손을 농어촌 지역구가 아닌 자신의 지역구를 향해 흔들었다. 12월을 전후해서는 농어촌 지역구가 선거구 획정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됐고, 지금 현재, 여·야는 당초 농어업계가 반대했던 ‘인구수 기준’을 적용해 지역구 의석을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이 같은 논란이 20대 총선에 이어 21대, 22대, 23대 등 매 총선 때마다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인구수만을 기준으로 선거구를 획정할 경우 당연히 농어촌 선거구는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때마다 농어업계는 국회와 또다시 힘겨루기를 해야 하고, 농사만 짓기에도 빠듯한 농어민들은 소모적인 논쟁에 지쳐갈 뿐이다. 지금부터라도 농어촌 지역구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16개월여간 제기됐던 농어민들의 목소리를 곱씹는 게 그 출발점이 될 듯하다. 최소한 19대 국회에서 ‘농어촌 지역구가 왜 유지돼야 하는지’를 같이 인식한 후 20대 국회에서 중장기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수순은 어떨까.

전북의 한 농민이 건넨 말로 맺겠다. “우리들이 지역에서, 또 국회 앞에서 16개월간 뭐했는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허송세월이 아니었길 바랍니다. 우리가 그동안 어떤 얘기를 했는지를 국회에서 살펴봤으면 해요. 분명, 그 안에 대안이 있을테니까요. 19대가 늦었다면, 20대가 있습니다. 19대 못봤던 희망, 20대 국회에서는 봤으면 합니다.”

조영규 기자 choyk@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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