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유유자적 시골생활? 꿈도 꾸지마라”

 

백승우. 1969년생. 강원도 화천 용호리 이장이자 올해로 귀농 19년차인 농부.

그가 얼마 전 <까칠한 이장님의 귀농귀촌 특강>이라는 제목의 책을 한 권 냈다.

귀농귀촌 붐을 타고 최근 서점가에 예비·초보 귀농귀촌인들을 겨냥한 서적들이 심심찮게 출간되고 있지만, 이 책은 여느 책들과 결이 좀 다르다. 책 머리에 밝혔듯 “이거저거 심어 대박 나세요”류의 기술서도 아니고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류의 코칭서도 아니며 “이런 거는 이렇게, 저런거는 저렇게”류의 단순 정보 모음집도 아니다. 저자는 스스로 이 책을 <농의 사회학> 혹은 <농의 인문학>으로 분류했다.

고군분투 생생한 경험담 속에
농업·농촌·농민의 현실 고스란히
맘 고생 줄이면서 정착하려면
로마법보다 강력한 ‘시골법’ 알아야


그가 생각하기에 귀농·귀촌하려고 마음을 냈거나 혹은 이제 막 귀농·귀촌해 시골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로마법보다 더 강력하다는 ‘시골법’이다.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시골사회, 시골에서의 삶, 시골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부푼 꿈을 안고 내려왔다 마음고생만 실컷 하고 돌아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가 ‘좌충우돌 허겁지겁 위태위태’ 십수년을 경험하며 깨달은 시골마을 이야기를 책 앞부분에 먼저 풀어놓은 이유다.

 

읽다보면 내 돈 주고 산 내 땅을 왜 마을길로 내놓으라하는지, 내 농사에 왜 마을사람들이 감 놔라 대추 놔라 훈수를 두는지, 내가 필요해 면사무소에 민원 넣는데 왜 반장, 이장을 거쳐야하는지, 농사짓기 좋은 번듯한 시골 땅은 어째서 매물로 잘 나오질 않는지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지금이야 ‘이장’ 감투를 쓸 만큼 마을에서 인정받는 농부가 됐지만 그의 귀농생활도 결코 평탄치 않았다.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던 그가 귀농을 결심, 직장에 사표를 던진 건 1997년 5월. 스물여덟 왕성한 혈기에 두려울 게 없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해 결행한 귀농은 경북 울진에서도, 전남 화순에서도 실패한다. 2000년 서울로 돌아와 어렵게 직장을 다시 구했지만 5개월이 한계였다. 아내를 서울에 떼어놓고 춘천시 사북면으로 다시 귀농, 4년을 버텼다. 결국 그는 2004년 영농후계자가 됐고 지금의 화천 용호리에 자리를 잡았다.

배추농사, 무농사, 깻잎농사, 감자농사, 고추농사 등을 지으며 그가 겪은 일들을 쫓아가다보면 도시민들은 미처 모르는 농업·농촌·농민의 현실을 만날 수 있다. 풍년이면 농산물값이 떨어져 서럽고, 흉년이면 팔아먹을 게 없어서 애통하다. ‘자발적 가난’을 꿈꿀 필요 없이 그냥 ‘저절로 가난’해지는 시골살이와, ‘콩 심어도 풀 나고 팥 심어도 풀 난다’ 할 만큼 생명력 강한 풀들 앞에 몸을 낮추는 법부터 익혀야 함을 깨닫는다.

“귀농귀촌이란 단순하고 무미건조한 도시를 떠나 웬만한 건 몸으로 때워야 하는 복잡하고 불편한 곳으로 제 발로 찾아들어가는 것”이라며 “지긋지긋한 세상살이에서 멀찍이 떨어져 나 혼자 유유자적 같은 건 꿈도 꾸지 말라”는 그의 조언은 그래서 지극히 현실적이다.

농민기본소득보장제의 필요성이나 값싼 수입농산물의 문제점, 농업·농촌·농민이 왜 우리사회 약자들을 위한 마지막 사회안전망인지를 설명하는 대목에선 그가 책상머리가 아닌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치열하게 얻어낸 공부의 내공을 엿볼 수 있다.

자, 귀농·귀촌을 마음에 품었으나 여전히 겁도 나고 두려운가. 그렇다면 이 책부터 펼쳐보시라. 조심스럽게 몸과 마음을 낮추고 이미 살고 계신 분들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갖는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이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