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확보! ○○억도 국회에서 끼워넣었습니다.’

경기도의 한 지역에 걸려있는 현수막 문구다. 보통 ‘○○억원 확정!’, 이런 식이 대부분인데, ‘끼워넣었다’고 자신있게 썼다. 굳이 이 표현을 써야 했을까. 국회에서 예산 심사가 진행될 때마다, ‘끼워넣기 예산’, 일명 쪽지예산에 대한 비판이 거센데도, 아랑곳하지 않은 듯하다. “원래 없었던 예산인데, 제가 노력한 덕분에 이 예산을 얻어냈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이번 총선에도 저에게 표를 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표를 위해서라면 쪽지예산의 흔적도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쪽지예산은 불법은 아니지만 부적절한 처사다. 정부의 예산안이 무시된 채, 국회의원의 힘에 따라 좌우되는 예산이다. 어느 때부턴가 관행인 듯 치부된 쪽지예산. 예산 심사과정을 잠깐 들여다보자. 일단 전부는 아니라는 전제다. 예산 심사를 위한 문서들 위로, 여러 개의 쪽지들이 오간다. 액수만 써 있는 경우도 있고, 사업명만 써 있는 경우도 있다. 어떤 쪽지는 별표까지 쳐 각인시킨다. 관련예산이 왜 필요한지는 크게 중요치 않다. 누가 예산을 요구했고, 이 예산으로 누가 혜택을 보는지 정도만 알면 된다. 혜택이 국민들이라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떳떳한 예산이라면 왜 쪽지로 주고 받을까.

국회의원이 쪽지예산을 처리해야 한다는 판단이 들면 곧바로 밀어붙이고, 안되면 현장에서 떼를 쓴다. 으름장도 놓는다. 이미 심사가 끝나 확정된 예산의 일부를 다시 떼어내기까지 한다. 쪽지예산 몇 장에 정부가 제시하거나 소관 상임위가 의결한 예산안이 조각난다. 전체 예산이 있고, 없는 예산을 넣으려면 뭔가 조정이 필요하니, 그 후의 결과는 뻔하다.

경기도에서 본 한 문구. 여전히 우리나라 예산심사 과정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예산은 바로 세워져야 한다. 예산을 마치 퍼즐 맞추듯이 빼고 넣어서는 안된다. 블록을 쌓았다가, 한 쪽을 빼면 당연히 기울어진다. 쪽지예산, 결국 피해보는 쪽이 생기기 마련이다. 예산 블록에서 무너진 쪽이 농업일지도 모른다. ‘국가 전체예산 증가율 만큼 예산을 올려달라’는 농업계의 얘기에는 절대 흔들리지 않던 이들도 ‘이것은 꼭 반영해 달랍니다’란 쪽지에는 즉각 반응한다.

결국 표다. 표가 없는 농촌은 예산에 허덕이지만, 표가 많은 도시는 예산에 허우적댄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농업예산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표에 의존한 쪽지예산을 줄이는 일, 농업예산을 점차 늘려가는 첫걸음일 수 있다.

조영규 기자 choyk@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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