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민영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이사장

4.15 총선이 막을 내렸다. ‘탄핵책임론’과 ‘거대여당견제론’, ‘수구부패’와 ‘친북반미’ 등 총선을 앞두고 벌어졌던 사생결단식 당파간의 정치 싸움이 국민의 표에 의해 심판되었다. 이번 총선과정에서 있었던 선거법 위반 사건들은 그 처리를 예의주시할 일이지만, 아쉬움은 우리가 소망했던 ‘정책선거’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탄핵이란 대형 사건이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총선공약에 기초한 정책 대결보다는 국민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부정적인 선거판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새로운 선거법, 그리고 정부의 강력한 단속으로 금권 혼탁 부정선거가 많이 사라져, 우리도 깨끗한 선거문화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사실이다. ○감성 정치에 묻힌 ‘정책선거’우리는 이 시점에서 지난해 WTO/DDA협상, FTA협정의 국회비준 과정에서 농민단체들이 목표로 내세웠던, 소위 반농업·농민적 후보들에 대한 ‘낙선운동’이 얼마나 성과있게 진행되었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 그동안 농민단체들은 농민들의 권익실현을 위한 정치행위로서 선거때만 되면 농민의 표로서 의정활동의 책임을 묻겠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역대 선거에서 보면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더욱이 선거과정에서 농민진영의 단결된 ‘심판 운동’이 제대로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선거 후에도 이에 대한 지속적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농민들의 노력도 부족했지만 노력에 비하여 효율적이지도 못했다. 이제까지 농민단체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각 정당이나 후보자들도 선거때만 되면 장밋빛 공약을 봇물터지듯 쏟아놓았지만 결과적으로 농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농가부채의 누적이요, 파산의 위기였다. 그것은 그동안 우리의 선거가 보스중심의 정당 구조와 지역주의에 갇혀‘묻지마’식 투표 행태를 보여온 데 원인이 있다. 이번 4.15총선도 역대 선거의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농민의 비중이 낮은 점도 농업·농촌을 홀대하는 원인이지만, 농민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수준이 아직 취약한 것도 이유다. 우리는 이러한 한계를 지난해 한·칠레FTA 국회비준과정에서 수없이 확인하고 보아왔다. 농민단체와 함께 대안 없는 국회비준 반대를 약속하고서도 당론 앞에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 다수의 국회의원들을 통해 말이다.○새 국회가 풀어야할 농업현안그런 의미에서 민주노동당과 연대한 전농·전여농 간부의 제17대 국회 진출은 비례대표이지만 의미가 있고, 한농연 출신의 열린우리당 비례대표의 국회 진출 역시 한농연이라는 농민조직의 대표성과 여당의원이라는 위치 때문에 기대가 매우 크다. 그러나 환상은 금물이다. 그만큼 오늘의 농업·농촌문제가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WTO/DDA협상이 그렇고, 쌀재협상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한·칠레 FTA 후속조치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들 문제는 우선적으로 농업·농민의 이해 관계를 고려한 협상이어야 하고, 협상과정에서 야기될 제반 상황을 농민들과 함께 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은 농업과 농촌의 가치가 크고, 이를 담당하는 농민에 대하여 적정한 사회적 보상차원에서도 그렇다. 농협개혁의 문제도 새 국회에서 확실하게 매듭을 짖고 넘어 갈 일이다. 최근 농민 조합원과 농협간의 갈등 현상은 정말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농협개혁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핵심 현안이다. 농정개혁의 시작은 협동조합을 개혁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런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농민지도자들의 현명한 지혜와 농민단체간의 농정개혁을 위한 보다 높은 차원의 연대활동이 필요한 때이다. 매사 그렇듯이 농정의 주체는 농민이다. 농민들이 조직에 적극 참여하고 활동하는 것이야 말로 농민문제 해결의 첫걸음이고, 농민들의 정치행위의 기본이다. 새로운 농정변화에 대응하려면 농민단체 구성원의 발상과 자세의 전환도 있어야 한다. ○농민단체간 강력한 연대를농민의 권익은 농민의 힘과 정비례한다. 농민의 운명을 바꿀만한 강력한 힘은 농민들이 요구하는 정책대안의 합리성과 현실성, 그리고 실천성이다. 이의 실현을 위해서는 의식화되고 조직화된 농민의 단결된 힘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4. 15총선을 마무리하고 새 국회에서 해야 할 일들을 철저히 준비하자. 농민들의 구체적 힘, 실천적 노력만이 농정이 개혁되고 농민의 운명을 바꿔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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