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서 오신 손님들이 들깨밭의 풀을 베고 있다.

매미소리 요란한데 느티나무 밑에 할머니들은 십 원짜리 고스톱에 빠져있다. 혼자서는 온전히 걸을 수 없어 보행보조기를 밀고 날마다 느티나무 밑으로 모이신다. 하루 한나절은 마당에 풀 뽑고 집안일 하시고 저녁나절엔 나오셔서 친구들과 놀이를 하신다. 옆에서는 할아버지들이 담소를 나누며 짚 풀 공예를 하시는데 풍경이 그림이다. 느티나무 밑에 앉아서 우리 집 돌아가는 상황을 깨알같이 꾀고 계신다. 오늘은 누가 이겼냐고 바싹 다가앉았더니 “오늘은 새댁이 여기 나올 시간이 다 있네.” 하시며 반가워하신다.

신랑이 다쳐서 모가지까지 다 익은 고추는 어떻게 따느냐 저 깨밭은 풀이 산더미인데 어떻게 하느냐 묻지 않으신다. 그냥 지켜보시고 내가 이야기를 꺼내면 잘했다고 칭찬만 해주신다. 저 지난주 헛골에 나보다 더 큰 풀을 낫으로 다 치고 엊그제 고추를 다 땄다고 자랑했더니 등을 쓰다듬으며 칭찬해주신다.

버스정류장 옆 300평 고추밭을 이틀 만에 다 따기가 만만치 않았다. 첫물이라 양도 많아서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 수만큼 얼굴은 퉁퉁 부어오르고 손마디는 쥐어지지도 않는다. 8월의 농 작업 중에 고추 따는 일이 제일 힘들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제일 더울 때 하는 일이라 그럴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제일 즐거운 일이 고추 따는 일이다. 비료부대로 그득그득 쌓이는 고추를 수확하는 맛이 최고로 재미지다.

고추를 건조기에 말리면서 오늘은 풀 속에 있는 들깨를 구하기 위해 서울서 오신 손님들이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농사일은 뭐니 뭐니 해도 일꾼 있을 때 후딱 해치워야 한다. 일하기 편한 몸빼로 갈아입고 장화를 신고 용감하게 풀 속으로 들어선다. 아~ 정글이다. 그 속에 들깨와 참깨가 살아있다. 어젯밤 비바람에 풀이 누웠다. 차근차근 뿌리를 찾아서 엉기지 않도록 풀을 베고 헛골에 가지런히 깔아야 다음 풀이 나오지 못한다. 풀로 풀을 막는 멀칭 방법이다. 그러면 가을에 누런 깻잎장아찌를 담글 수 있을까?

들깨는 참 요긴하게 쓰인다. 어린잎은 깻잎김치로 담아서 여름날 밥 맛 없을 때 파릇하게 먹고 가을에 잎이 누렇게 익으면 소금물에 삭혀서 저장용 김치를 담는다. 두 가지 다 맛있지만 충청도 사람은 파릇한 들깨향이 살아있는 생김치를 더 좋아한다. 깻잎을 다 따먹고도 고 작은 알갱이들을 덤으로 얻는다. 생 들깨는 요리할 때 즉석에서 갈아 고명으로 쓰면 눈요기도 좋지만 그 풍미는 단연 으뜸이다. 특히 샐러드 소스로 쓰일 때 빛이 나서 주재료에 새로운 옷을 입히는 역할이다. 어떤 허브보다 좋은 향이다.

들깨 꽃 피면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창문열고 즐긴다. 마당건너 텃밭에서 훅 들어오는 들깨 향이 참 좋다. 묘하게도 고향으로 순간이동이다. 마루에 앉아서 밤늦도록 깻잎을 개키던 어머니 무릎이 생각난다. 같이 개키다가 심술 나면 깻잎김치는 이렇게 많이 담가서 뭐 할 거냐고 투정부렸다. 언니 오빠들 다 나누어 주려면 함지박이 넘치도록 씻어서 담가 보냈다. 시골 사는 어머니가 곱게 차려입고 서울나들이 가는 몇 안 되는 날이었다. 버스타고 또 버스타고 용산역에 내리면 마중 나온 언니들이 제일 먼저 반겼던 깻잎김치 통이었다. 언니들도 나도 올케언니까지 모두 어머니 솜씨를 이어받아 조카들까지 다 좋아하는 우리 집 메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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