뙤약볕이 쏟아졌다가 한줄기 소나기가 퍼부었다가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날씨다. 습한 건 또 얼마나 습한지 셔츠가 쩍쩍 달라붙는다. 하루 세 번씩 씻고 옷을 갈아입어도 땀으로 목욕이다. 옥수수 밭에서 하루 종일 땀 흘리고 있는 이불 동지는 자연 다이어트 중이다. 수확하고 가을 작기 모종 키우느라 더위에 지쳐서 입맛도 없고 날씬해지고 있다. 

올해 가뭄이 심해서 옥수수가 제대로 크질 못했다. 하루 한 날 똑같이 모종해서 밭으로 나갔는데 들쭉날쭉하다. 영글어서 먼저 따내야 하는 놈이 있고 아직도 일주일은 더 여물어야 딸 수 있는 놈도 있다. 아롱이다롱이라 작업은 더 힘들다.

그래도 어쩌랴… 그 가뭄에 살아 있어줘서 고맙고 알은 좀 작지만 저도 얼마나 힘들었겠나싶어 위로해줄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건 작년까지 벼가 자란 논이라 수분을 담고 있었다. 양수기로 퍼서 두 번 물을 대줘서 그나마 성적이 좋은 편이다.

봄에 감자를 심으려고 싹을 다 잘라놓고 기다려도 도대체 마르질 않아 포기한 밭이다. 할 수 없어 감자를 다른 밭에 심고 조금 시기가 늦은 옥수수를 논으로 보냈다. 가뭄이 심한 밭에는 옥수수가 반도 못자라 아예 수확을 포기한 밭도 있는데 천만 다행이다.

옥수수 베어내고 메주콩을 심어야 한다. 오랜만에 형제들이 모여서 밥해 먹고 콩 씨를 넣어주고 갔다. 시기가 좀 늦어서 걱정이지만 지금 심을 수 있는 건 콩 뿐이다.

콩 씨를 넣고 있는데 후배가족이 깜짝 방문했다. 아이들 셋을 데리고 논산에서 괴산으로 연수를 온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콩씨 넣기 작업을 하는데 배꼽이 빠질 뻔했다. 다섯 살 막내는 일을 놀이로 한다. 세알씩 넣으라 해도 지 맘대로 넣는다. 세알도 넣고 다서알도 넣고 맘대로 넣고 웃는다. 콩을 넣을 차례에 상토를 넣기도 하고 옆에서 하는 오빠들을 방해하며 온몸에 상토가 달라붙어 눈이 맵다고 난리다. 어떻게 심든지 간에 콩 심은데 콩 나겠지...

콩 심을 때 싹이 잘 나라고 기도하면 더 잘 나지 않을까, 했더니 10살 세현이가 반박을 한다. “억지로 하면 콩이 싫어할 거 같은데요?”라면서 자기는 그냥 콩을 넣겠단다. 하하하. 아이들의 의견이 이렇게 분명할 수가 없다. 그렇지. 억지로 ‘잘 자라라’ 말해 보아야 콩의 맘이 있을 테니 콩 맘이겠지.

아무튼 둘이서 하면 한나절을 해야 할 일을 여럿이 거들어서 일찍 끝냈다. 아이들은 이내 싫증이 났는지 물고기를 잡으러 가자고 보챘다. 페트병을 잘라 어항을 만들고 된장을 조금 넣어서 냇가로 떠났다. 한바탕 어질러진 집을 치우다보니 후배가족은 밥해 먹일 겨를도 없이 수박한 쪽 먹고 떠났다.

논산에서 딸기와 벼를 심는 후배에게 ‘괴산 대학찰옥수수가 별미다’, ‘괴산에 오면 꼭 들르라’했더니 후배는 못 오고 아내가 아이들과 들렀다. 멀리 살지만 마음은 늘 함께 하는 후배다. 서울학교에서 만난 인연인데 서로 귀농한 이유로 더 따뜻한 선후배가 되었다.

암튼 고맙다, 후배야. 너희 아이들 조막 손으로 심은 콩은 잘 나겠지. 메주 쑤고 장 담글 때마다 멋진 후배님 생각이 날테지. 지난 번 보내준 100년 된 씨간장 덕분에 된장 맛나다고 까다로운 고객님들 칭찬이 대단하단다. 우리 힘내서 농사짓고 콩 타작 끝내고 한 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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