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새해 새아침이 밝았다. 어제 아침 떠오른 해가 다시 떠오른 것인데도 우리는 새해, 첫 아침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완주하면 1년 365일이 걸리는데 그 시작을 새해 새 아침이라고 부른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았는데도 사람들이 사는 처지가 바뀌지 않고 그대로 있거나 더욱 나빠지면 새해 새 아침의 의미가 하나도 새로울 게 없다. 그냥 똑같은 아침일 뿐이다.

10년내 식량자급률 15% ‘걱정’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20년간 지속된 농산물시장 개방 압력, 50여개 농업강대국들과의 초고속 FTA협상 타결, 지난 2년 내내 거의 전 품목에 걸친 농산물가격 폭락, 연이은 농업소득 위축으로 10년 전 수준으로 떨어진 농가경제,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의 절반에 불과한 농가소득, 열악하기 짝이 없는 농촌 교육·의료·복지·문화 수준을 뻔히 보면서도 “국민행복 시대”에 농업·농촌·농민들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묻는다는 것은 너무 민망할 것 같다. “농업이 미래 성장산업이다.”, “농산물 수출로 창조적인 농업을 일으키자”는 구호가 대다수 농민대중에겐 강 건너 불이요, 그림속의 떡이다. 어느 별에서 온 그대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단지, 농업문제는 선거 때만 존재하는 매표용 홍보사항일 뿐이다. 보통 때는 3농이 어떻게 되든, 무슨 정책이 행해지든,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서 지난 정부이후 계속되는 농업경시 정책환경이 이대로 계속될 경우, 앞으로 10년 안에 우리나라 식량(곡물)자급률은 현 23% 에서 15% 이하로 뚝 떨어져 세계에서 최하위 영구적인 “식량 식민지”로 전락할지 모른다고 경고해도, 최고통치권자를 포함한 정치사회 지도자들은 눈 하나 꿈쩍을 안한다. 이미 나라의 식량주권이 미국 등 극소수 수출국들에 넘어가고 있는데도 한가하게 “창조농업, 미래성장 산업” 운운하며 경제영토가 확대됐다고들 모두 황홀한 말잔치에 젖어있다.

국민 안위 위협할 대폭퐁 예고

말 따로, 실천 따로의 농정으로 우리 국민들은 다음과 같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첫째, 악화일로의 지구촌 이상기후로 세계식량 수급사정이 악화돼 제 때 부족한 식량을 수입해 오지 못할 날들이 가까워지고 있다. 둘째, 세계 곡물수급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몇 안되는 초국경 다국적 대기업들이 담합하여 식량수출을 정치적 무기로 악용했던 지난날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셋째, 중국 인도 등 식량부족 신흥국가들의 경제발전에 따른 육류 수요의 급증으로 곡물수요가 지금보다 몇배 늘어나 국제곡물시장이 만성적으로 불안정화 돼가고 있다. 넷째, 한편에선 곡물의 공업용 전용이 크게 증가하는 반면, 일부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기아인구는 가파르게 늘어나 국제 정치사회가 대혼란에 빠질지 모른다. 이런 상황은 불확실한 가정이 아니라, 현재 진행되고 다가오고 있는 실제 현상, 즉 최악의 대폭풍(Perfect Storms)현상이다. 바야흐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위협할 대폭풍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현란한 신조어나 남발하는 이 정권에 무엇을 기대할 것인지 난망하다.

OECD는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타결이 임박하자 농축산업의 절대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농업의 다양한 공익기능(Multi-functionality)”을 회원국 전원의 이름으로 선포하였다. 농업이 단지 식량과 섬유를 생산해 내는 일차산업적인 기능만이 아니고, 환경생태계를 보전하며, 문화와 전통을 보존하고, 지역사회 공동체를 형성하며, 식품의 안전성과 국민 생존권을 보장하는 등 다원적인 공익기능을 수행하는 기본산업임을 천명한 것이다. 이어 UR(WTO)협정문에 농업의  다원 기능을 “비교역적 관심사항(NTC: Non-Trade Concerns)”으로 만천하에 공지하였다. 그래서 각국의 사정에 따라 UR협상에서 농축산업이 품목별로 예외를 인정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한국, 일본, 노르웨이 등 6개국은 ‘NTC그룹’을 꾸려 WTO 발족 후 2000년 까지 긴밀히 공동 대응하였었다.

우리나라에서도 UR협상 타결을 전후하여 농진청 농업과학원의 김모, 오모 박사팀이 처음으로, 나중엔 진흥청 프로젝트로 우리나라 ‘논농업의 다원적 공익기능’을 계측하는 연구를 수행하였다. 산림청에서도 공식적으로 산림의 다원적 공익기능을 계측 발표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교역 상품으로서의 쌀값 보다도 논농업의 다양한 비교역적 관심사항(다원적 기능)의 평가액이 3-7배의 가치를 국민경제에 가져다주고 있음이 밝혀졌다. 산림은 NTC가 목재생산액의 13배의 가치를 나타냈다. 

쌀의 경우, 교역 상품으로서의 평가액이 10조원으로 계측 되었던 해의 논농사의 다원적인 공익기능이, 논농사의 홍수방지 효과+수질정화 및 지하수 공급효과+산사태 방지효과+이산화 탄소 흡수 및 산소배출 효과만 계량화 하더라도, 최소 30조원에서 70조원으로 계측되었다. 여기에는 계량화하기 어려운 문화와 전통의 보전 가치, 농촌 지역사회 발전 및 경관 가치, 식량안전 및 안보효과를 계상하지 않았는데도 그러하다.  

이상의 논리로 여타 밭작물과 과수 및 축산업 그리고 농기자재 등 농업관련산업의 전방 효과와 농산물 제조 가공 유통 무역 등 후방효과를 평가에 포함하여 계량화한다면, 현 농산품 가치인 약 35조원의 몇십배에 달하는 다원적 공익기능(NTC)을 추가하여 우리 국민경제에 기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꾸어 말해, 쌀 등 우리나라 농축산물의 시장가격이 비싸다고 무조건 수입개방에 의존할 경우 가격경쟁에서 탈락한 액수만큼의 우리 농축산물이 단순히 우리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동안 국민들에게 공짜로 베풀어 주었던 다양한 공익적인 기능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짐을 뜻한다.

선진국, 농업의 다원적기능 보상

일찍이 EU 미국 캐나다 등 구미 선진국들과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은 이같은 농업의 비교역적 다양한 공익가치의 국민적 인식을 바탕으로 어떤 방식, 어떤 형식으로건 우선적으로 농업생산력 주체인 농업인들의 기본소득과 권익보장에 정부가 앞장서고 있다. 선진국들은 그 백성들이 농촌 농업에 종사하면서 인간의 삶을 유지발전 하는데 필수적인 ‘기본소득’이 보장되고 교육·문화·의료·복지·민권 등에 차별이 없도록 배려하는데 정책의 중점을 두고 있다. 농업에 종사한다는 이유 때문에 소득수준과 의료 복지 교육 등에서 불이익을 받도록 방치하는 정부는 존재의미와 존재가치를 상실한 가짜 정부이다.

그래서 우리 정부도  공공기관 은행 기업들이 국가경제가 총체적으로 부도가 난 IMF 치하에서도 그리고 서슬시퍼런 WTO의 감시 하에서도 친환경농업 직접지불제, 논(쌀)농업 직불제, 조건불리지역 직불제, 이어서 최근 밭농사 직불제도 등을 도입 실시하였다. 물론 건당 지원규모가 당시 상황 하에서 낮고 한시적일 수밖에 없었으나, IMF 통치체제를 졸업한 이후의 역대 정부 하에서도 그 배려수준이 갈수록 미약하여 2013년 현재 직불금 지원은 농가평균소득의 4.3%에 불과하다. 일본은 7.9%, 미국은 12.2%, 영국은 19.5% 수준이다. 다른 자료에 의하면, EU의 평균 공적 지원액은 농가소득의 40%~60%에 달한다. 미국은 40% 언저리다. 캐나다는 아예 최저 농가소득을 보장한다.

‘월50만원’ 기본소득 보장해야

우리나라에서 농민들이 최저 생활수준을 유지하는데 어느 정도의 소득수준이 보장되면 적정할 것인가에 대한 관련 연구결과는 없다. 다만 편의상 법정 최저임금소득의 50%를 농가에 보충 지원한다고 가정할 경우, 농가 호당 약 월 50만원, 연간 600만원이 계상된다. 이 기본소득 수치를 전국 농어가 120만호에 일괄 지급한다고 가정할 경우 연간 총 7.2조원 정도가 소요된다. 그 재원은 1)기존의 각종 직불금 예산액(단, 친환경 직불금은 제외) 합계, 2)농어가 120만호 대비 근 10%에 달하는 중앙정부, 지방정부 및 농진청 등 농관련 공공기관과 농축수협과 산림조합 등의 중앙 지방조직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개혁으로 절감한 비용, 3)현 농림수산 예산액 중 비농어민 조직과 대기업에 지원되는 각종 비농업적 지원비 전용, 4)기존의 농림축수산식품 예산과 기금 및 농특세(UR 사후 대책) 예산액 중 일부 불요불급 항목예산의 전용, 그리고  5)신규 FTA 무역이득공유제(신설)의 수익금 등을 상정하여 정밀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국가의 기본 기간 기초산업에 종사하는 농업인들이 그들이 수행한 교역적, 비교역적 다양한 공익기능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받을 때 현대판 “농자 천하지 대본”의 국가와 민족의 백년대계가 확고해질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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