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기농페스티벌을 찾은 아이들이 천연염색을 하고 있다.

몇 년 전 황토방 앞에 마당으로 옮겨 심은 감국이 노랗게 피었다. 들꽃도 제자리가 있을 테지만 그 조그맣고 앙증맞은 감국은 도톰하고 노란 국화와는 다르다. 달밤에 하늘거리며 창문으로 들어오는 감국향기가 너무 좋다. 꽃이 다 피고 질 때쯤 따서 한 소금 쪄서 말리면 내년 여름까지 그윽한 향기에 빠져들 수 있다. 예부터 문살에도 꽃을 말려서 창호지 사이로 비치는 코스모스를 눈으로 즐기고 향기를 잡아두고 싶었던 여심은 예나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달초 이곳 괴산에서는 제1회 유기농 페스티벌이 열렸다. 전국의 유기농을 지키고 응원하는 소비자들과 이곳의 유기농 농부들의 뜻 깊은 만남이다. 군청 앞 잔디광장에서 하루 종일 시끌벅적 체험하고 노래 부르고 떡메치고 짚풀 공예를 배우고 어른과 아이가 하나 되고 소비자와 농부가 서로 엉겨 살을 맞대고 게임하고 놀았다. 장구치고 북치고 꽹과리 장단에 맞춰 농악대를 따라 돌고 멍석 말고 대동놀이를 하면서 하나가 된다.

농사만 지어도 소비자가 없으면 소용없으며 아무리 좋은 농산물을 먹고 싶어도 이 땅을 지키는 정직하고 우직한 농부가 없으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이번 잔치는 점심을 흙사랑 영농조합 언니들이 맛깔스런 유기농 식단으로 준비하고 괴산군 유기농업 단체들의 젊은 청년들이 행사진행을 맡아서 일사천리로 짜임새 있게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지역의 일꾼들이 밤마다 모여서 연습하고 갈고닦은 민요공연은 으뜸이었고 젊은 부부가 함께 연주한 대금연주의 하모니는 그 넓은 운동장의 관객들을 모두 무대 앞으로 모이게 했다. 도시처녀와 먼저 귀농한 청년이 마을에서 혼인하고 두 아이 낳아 잘 기르면서 함께 연주하고 호흡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동행이란 단어가 이들 부부에게 딱 들어맞는다. 이웃집 잔치에 마음을 내어준 이웃사촌 문경 풍물패의 찬조공연 또한 보기 좋았다. 잔치란 여럿이 함께하고 함께 나누어야 기쁨도 두 배로 늘어나는 것.

지난밤 늦도록 치자를 삶고 거르고 핏물처럼 붉은 소목을 펄펄 끓이면서 불앞에서 생각에 잠겼다. 괴산군에서 행사 때마다 천연염색을 담당해온지 10년, 매번 물들이는 시간보다 염료를 준비할 때가 더 좋다. 아이들이 예쁜 고사리 손으로 손수건을 물들이고 빨래 줄에 널면서 이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상상할 때가 더 좋다. 10년째 써서 낡고 부러진 고추말뚝으로 불을 지폈다. 우리 집 고추농사의 역사인 부러진 말뚝을 불태우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간다. 타닥타닥 아궁이로 빨려 들어가는 불빛은 얼룩진 마음까지 따뜻하게 덥혀주고 고슬고슬 바삭바삭 말려주니 가을밤 국화향기 맡으며 불명상으로 참 좋다.

언제나 체험현장에는 천연염색코너가 인기 짱이다. 하루 종일 황톳물에 치자와 붉은 소목에 아이들 손이 붉게 물들었다. 얘들아 어여쁜 아이들아 조물조물 쪼물락 거려야 더 예쁜 색으로 나온단다.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노랗게 노랗게 물들여라. 멀리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언니오빠들도 생각하면서 그리고 가을하늘처럼 예쁜 너희들 마음속 깊이 이 가을을 붙잡아두려무나. 팔랑팔랑 빨랫줄에 널어둔 너희들 마음을 고이접어 넣어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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