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여 긴 싸움 끝…제설제 피해 첫 인정 결실

한국도로공사와의 기나긴 싸움 끝에 승소하자 서현옥 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피해목을 베는 것이었다. 사진처럼 고속도로 바로 옆에 위치한 과수나무 모두가 피해를 입었다.

사과·복숭아나무 고사, 열매도 적어
한국도로공사 배상액 2260여만원

“묘목을 수 년이나 키워야 농작물 출하가 가능하기 때문에 나무가 고사하는 건 정말 가슴이 무너지는 일입니다. 늘어나는 자연재해에 농업인들의 고충이 가중되는데 제설제로 인한 피해는 충분히 예방이 가능한 일이에요. 이번 결정으로 약자인 농업인들이 잃어버린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가슴이 타들어가는 4년이었다. 지난 2011년 한국도로공사가 매연·제 설제로 인한 과수피해를 인정한다는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의 판결에 번복, 수원지방법원을 통해 항소했다. 순식간에 원고에서 피고가 된 서현옥 씨는 공공기관인 한국도로공사와의 싸움이 길어질 줄은 알았지만 또 한해를 넘길 줄은 몰랐다. 그러나 설날마저 편하게 보내지 못한 서 씨에게 날아온 소식은 그간의 고충과 눈물, 피로감을 날려주는 것이었다. 지난 13일 한국도로공사와의 긴 싸움 끝에 승소한 것이다.

서 씨는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일대에서 사과·복 숭아를 재배하는 여성농업인이다. 영동고속도로와 접해 있는 서 씨의 농장은 지난 2010년 폭설이 내리면서 한국도로공사가 뿌린 제설제로 인한 피해를 봤다. 농장과 고속도로의 간격이 불과 1~2m 밖에 되지 않는데다 내리막길인 탓에 길가에 뿌려진 제설제가 서 씨 농장의 과수묘목에 달라붙었다. 결국 도로와 인접한 나무 중 사과나무 10주, 복숭아나무 29주가 고사했고 상품판매율이 5%도 안되는 피해목까지 합하면 총 220주에서 피해를 봤다. 2011년 11월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서 씨의 피해를 인정, 88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재정결정을 내렸지만 같은해 12월 한국도로공사가 항소를 하며 기나긴 싸움이 시작됐다.

이번 소송의 관건은 한국도로공사가 제설제로 인한 피해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데 달려있었다. 입증책임전환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개인인 피고가 손해 발생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는 어렵지만 한국도로공사처럼 기업이나 공사는 기술·경 제적으로 용이하다는 데서 시작한다. 결국 고속도로와 가까이 위치해 있는 과수나무가 왜 고사했는지, 열매가 맺어졌어도 상품판매율이 정상 나무 95%에 비해 왜 5%밖에 안됐는지를 도로공사가 밝혀내야 했다. 도로공사는 그간 여러차례 재판을 지연시켜가며 제설제로 인한 과수피해가 첫 선례로 남을까 전전긍긍했지만 결국 재판부는 농업인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미국 전문가의 연구에 따르면 제설제로 인한 염화물의 피해가 높이 15m, 주변 100m까지 나타나고 그 피해는 내리막 경사지에서 더 크다는 점, 고속도로와 가까운 곳에 식재된 과수목에서 생산된 과수의 상품판매율은 5%에 불과한 반면 3열 이후는 95%에 달해 과수 피해가 뚜렷한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원고(한국도로공사)가 사용한 제설제의 비산에 의한 것”이라며 “한국도로공사는 영동고속도로의 관리자로서 피고의 재산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에 따라 한국도로공사가 서현옥 씨에게 지급해야 할 배상액은 2011~2012년 피해를 기준으로 총 2260여만원이다.

이에 대해 서현옥 씨는 “아파트 주변 고속도로에는 당연하게 설치된 방음벽을 농장 주변에는 설치하지 않는 한국도로공사가 농업인의 입장 역시 고려해주길 바란다며 “제설제로 인한 과수피해가 처음 인정된 만큼 같은 피해를 입은 농업인들께 좋은 본보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 씨의 변호를 맡은 이경환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 따라 앞으로 도로공사시 농장과 적정한 이격거리를 두고 방음벽을 설치하는 등 조치가 잇따를 것”이라며 “피해가 발생했을 때는 제설차량이 제설제를 뿌리고 지나간 흔적을 사진으로 찍거나, 눈이 많이 와서 제설제를 뿌렸다는 기사 등 증거를 확보해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효정kang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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