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가의 시간 도둑질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는 판타지 소설이지만 일반적인 판타지 소설과는 다른 영역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이 상상을 통해 즐거움과 꿈을 갖게 하는 것이 목표라면 모모는 판타지를 통해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사회를 현실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모모와 회색 신사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은 ‘시간 전쟁’이다. 회색 신사들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절약하게 하고 그렇게 절약된 시간은 회색신사들이 시간은행을 통해 뺏어간다. 모모는 사람들이 빼앗긴 시간을 다시 찾아주기 위해 모험을 떠나게 된다. 자본주의가 자리 잡는 시점에 세계 어디든 거대한 시계탑이 광장의 중심에 자리 잡는 경험을 한다.

우리 아이는 어릴 때 시계의 ‘시’는 이해했지만 한참이 지나도 ‘분’을 계산하지 못해 엄마와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아이들이 시간 개념을 이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침·점심·저녁 정도의 시간 개념을 갖던 아이가 12개의 숫자로 나눠진 시간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했다. 이런 시간 개념을 받아들여야 사회에 들어올 수 있었다.

자본주의 모든 사회는 시간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시간을 어떤 속도로 다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개인의 노동 능력 차이였다. 자본가는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시간 차이를 조금씩 시장에 넣었고 그 차이만큼 이익을 얻었다. ‘시간 도둑질’을 한 것이다. 거기다 자동화라는 명목으로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하면서 기계를 이해하고 다루는 시간에 대한 비용은 지불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한쪽은 점점 더 돈이 쌓이고, 한쪽으로는 돈이 흐르지 않게 됐다. 이런 흐름은 눈에 딱 보이는 적대적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효율화되고 편리해졌다는 생각까지 불러일으킨다.

모순이 효율을 동반하면 저항할 수도 없다. 우리는 사회가 효율적으로 움직이도록 인터넷 통신을 하고, 은행에 가지 않고 전자 금융을 이용하고, 돈으로 안내고 교통 카드를 사용하는 등 어떤 행동을 하는데 그렇게 효율성을 높인 나의 일은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내가 은행에 가서 직원을 만나 금융거래를 하는 대신 전자 금융으로 돈을 보내면 나도 좋고 은행도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데 거기서 발생하는 이익을 은행만 갖는 것이다.

이 구조는 중간 역할을 했던 노동자에게 가장 불리해서 ‘고용 없는 성장 사회’가 만들어졌다.

‘시간 전쟁’에서 조금씩, 조금씩 시간을 뺏어갔던 회색 신사들이 완전한 승리를 거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전 세계 청년 실업률이 수치가 아닌 실제 상황을 기준으로 할 때 거의 50%에 가깝다. 돈이 없어진 청년들이 지하철도 안타고, 은행 거래도 안하고, 먹는 것도 생존할 정도만 먹고, 가능한 아무 것도 안 하고 지내면 자본주의는 돈을 벌어들일 곳이 없다. 무엇보다 그런 상태에서 생겨나는 분노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돈이 든다.

스위스에서 기본소득법안이 발의됐다. 직접민주주의제도를 운영하는 스위스에서는 10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으면 국민이 법안을 발의할 수 있다.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위한 스위스 시민단체는 1년 반 만에 12만6000명의 서명을 모아 연방의회에 제출했다.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위한 국민발의안은 이후 연방정부와 의회 검토를 거쳐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성사될 경우 스위스는 2019년 초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세계 첫 번째 나라가 된다. 자본주의가 시민의 생활을 위해 돈을 나눠 주지 않으면 안 될 정도 상황까지 온 것이다. 기본 소득은 시간 전쟁으로 뺏어갔던 시간을 시민들에게 다시 돌려주는 장치이다.

모든 노인들에게 20만원을 지급하는 노인기본소득이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듯, 모든 국민에게 기본 소득을 지급하는 것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

/김재형 죽곡농민열린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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